내가 그 아이를 알게 된 건 6개월 전, 작년 가을쯤이었다. 지금 근무하는 지구대로 오고 한 달이 지나고 나서다. 이제 18살밖에 안 된 여자애였다.
그녀는 지구대에서는 이미 유명 인사였다. 60명이 넘는 경찰관들이 한 번쯤 그 아이 집에 갔었다고 했다.
내가 의아했던 건,동료들 모두 그녀를 만나고 올 때면 질려 있거나, 경악을 금치 못한 표정을 보였던 것이다.
경찰관들에게 주목받아 온 문제의 그 아이 이름은 예지였다.
18살이면 고등학생이지만, 예지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 아니 스스로 자퇴했다. 부친은 죽은 건지, 집을 가출한 건지 같이 안 산지 꽤 오래였고, 지금은 백발에 몸이 불편한 할머니, 그리고 엄마와 살고 있다.
예지 엄마도 정상은 아니었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보였다. 볼 때마다 술에 절어 있었다고 했다.
예지가 자퇴한 이유를 듣자니 꽤 흥미로웠다.그녀는 SNS에서 꽤나 유명했다. 한마디로 인스타그램 셀럽이었다. 협찬은 물론이고 광고비까지 받는다고 했다.
할머니야 노령 연금이라도 받지만, 예지 엄마는 무직이었다. 예지가 SNS로 활동해서 버는 수익으로 3명의 가족이 먹고살았다. 사실상 이 집의 가장은 예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예지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다.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는 게시물마다 이상한 댓글이 달렸고, 개인 메시지까지 왔다. (주로 그녀를 협박하거나 비난하는 글이었다)
한 집의 가장으로 지낼 만큼 돈을 벌 정도면 상당히 유명했던 게분명했다. 반면에 그만큼 적이 많았는지 예지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악플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심지어 식당, 커피숍, 병원에서도 예지를 알아보고 악플을 달았다. SNS 공격으로 정신이 피폐해진 예지는 결국엔 스스로 자퇴했다. 주변 친구마저 자기를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사회에서, 학교에서 고립을 자처했다.
그래도 SNS는 포기할 수 없었는지 활동을 이어 나갔다. 정신과 치료까지 받으면서.
그런 예지의 상태는 차도가 있었을까?
아니. 그녀는 더욱 심한 우울증을 겪고야 말았다.진짜 문제는 그녀가 다니던 정신 병원에서 일어났다.
병원 직원이 예지의 인스타그램을 해킹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의심이었지만,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자신에게 보인 불친절한 태도는 예지로, 하여금 직원을 더욱 의심하게, 만들었다.
예지가 겪고 있는 해킹 문제가 자퇴까지 이르게 할 정도라면 심각성은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예지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112로 전화를 걸어, 피해를 호소했다. 병원 직원이 인스타그램을 해킹한다고 하며······
마침 주간 근무하던 내가 가보기로 했다. 사이버팀 근무한 경력도 있었기에, SNS 해킹은 내 전문 분야이기도 했다. 게다가 예지의 집은 지구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예지가 사는 곳은 빌라 단지가 모인 곳에 딱 하나 있는 아파트이다. 건물 밖에서 벨을 누르자, 말없이 문을 열어줬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닫히고 있어 달려가 미끄러지듯이 들어갔다.
좁은 엘리베이터에 먼저 와있던 아주머니는 경찰 두 명이 달려오자 상당히 놀랐는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조용히 미소로 답하고 예지가 사는 층까지 올라가길 기다렸다.
드디어 예지가 사는 집 앞에 갔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현관문 앞에 유모차와 고물, 그리고 쓸모없는 – 재활용도 하지 못할 정도였던 - 물건이 쌓여 있었다.
아파트 현관 앞이야 그 세대 사는 주민 공간이라지만 너무할 정도로 쓰레기가 많았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곧 생각을 고쳤다. 예지가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해 그런 거겠거니, 하고 이해하기로 했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고 백발에 등이 굽은 70대 여성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어서 50대로 보이는 여성도 따라 나왔다.그들은 예지의 할머니와 어머니였다.
나는 그때 문틈으로 슬쩍 내부를 엿보았다. 그리고 더 큰 의문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문틈으로 본 거실은 내가 생각하는 가정집의 모습이 아니었다. 현관문 앞에 있던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더 많은 쓰레기가 집 안에 가득했다. 단순히 집을 치우지 못한 거라 치부하기 어려웠다.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었다.
“아이고, 경찰관님 오셨어요?”
“예지 할머니시죠?”
“예. 경찰관님.”
“예지는 어디 있나요? 좀 만날 수 있을까요?”
“그게 말이죠······ 경찰관님. 지금 만날 수가 없어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예지가 신고했는데 만날 수 없다니요?”
“우리 손녀가 글쎄, 병원 직원 나쁜 년이 해킹하고······ 그 뭐냐 스토커?”
“스토킹이요?”
“예. 예. 스토킹까지 해서 손녀가 지금 정신적인 문제가 많아요.”
“그래서 제가 도와주려고 온 거예요. 손녀분 이야기를 들어봐야 도와줄 수 있어요. 좀 만나 볼게요.” 나는 예지 할머니와 어머니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며 말했다.
“아이고 참. 예지가 만나려고 하지 않을 텐데······” 예지 할머니는 마지못해 몸을 틀어 비켜줬다. 내가 들어가는 걸 바라지 않는 건가.
예지의 집은 거실부터 주방까지 온통 고물과 쓰레기가 가득했다. 마치 어릴 때 TV에서 본 고물 수집가의 집을 보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였던가. 이런 환경에서 사람이 산다는 게 신기했다.
'진짜 수상한 곳이네.' 나는 기묘한 생각에 사로잡힌 채 예지가 있는 방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