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인드 무장 경찰 Feb 15. 2024

경찰에 대한 불쾌한 기억

경찰에 서운한 건 당신 만이 아닙니다.


2023년 여름, 지구대 상황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오래간만에 조용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침부터 푹푹 찌는 더위를 이기지 못했는지 동료들도 순찰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서로 떠들기만 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이 분위기를 깨는 사람이 등장했다. 그것도 점심식사를 곧 앞둔 시간에. 



한 민원인이 지구대로 들어왔다. 마흔 댓살쯤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경찰관들을 차례대로 훑어봤다. 술에 취한 건지 게슴츠레한 눈이었다. 

모두들 자리를 피하거나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보통 민원인이 아니란 걸 눈치챈 모양이다. 나도 따라서 자리를 피해보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내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기 신고 좀 하려고요. 아들이 납치됐어요." 그녀가 얼굴을 내쪽으로 갖다 대며 말했다. 간의 술냄새가 다. 표정을 보니 납치 신고자 치고는 담담해 보였다. 어떤 면에서는 여유마저 보일 정도였다. 


나는 허무맹랑하다고 느꼈지만 그래도 자세히 들어보기로 했다.



"누가 납치했죠?"


"남편이요."


"아들이 몇 살인가요?"


"19살. 고등학교 3학년이에요"
 

"예......"
 

"빨리 찾지 않고 뭐해요?"
 

"혹시 어떻게 납치된 건지 알고 있나요?"
 

"하......"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늘 제 아빠를 만나러 나갔는데 아직 들어오질 않아요. 연락도 받지 않고요. 남편이 납치한 게 틀림없어요."


그녀에게서 능청스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도저히 납치 신고하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중년 여성에게 아들의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걸어봤다. 아들은 부모님 이혼하고 엄마와 살았다. 가끔 아빠를 만나곤 했는데, 최근 그 횟수가 더 많아졌다. 원인은 엄마의 알코올 중독이었다.


그는 당분간 부친과 지내겠다는 말을 끝으로 통화를 끝냈다.



나는 아들의 말을 그대로 여성에게 전했다. 그러나 그녀에게서 돌아온 건 비난뿐이었다. 아까보다 술냄새가 더 진하게 풍겨 나왔다. 한 여름 습한 날이라 그런지 취기가 더욱 올라오는 듯했다.


그녀는 얼굴까지 빨개져서, "그러니까 사람이 다치거나 죽기라도 해야 경찰이 도와준다는 거네요." 하고 따지듯이 말했다.

내가 아무 말을 하지 않자, 뚫어지게 나를 쳐다 보고는, 이내 몸을 휙 돌려 지구대를 나갔다.
 


동료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팀장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나는 이 여성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분명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었다.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어봤다. 그러다 문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래전 일이 떠올랐던 것이다.


나에겐 별로 좋지 않았던 그런 기억이었다.









2010년 7월, 지금처럼 습한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경찰 수험생이었다. 오래간만에 아침 일찍 도서관에 나와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아마도 영어 문법 동영상 강의를 듣고 있었던 것 같다.


오전 10시쯤, 여자 친구(지금의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 이 시간이면 침대에 누워 있거나 마지막 아침 드라마를 챙겨 보고 나갈 채비하는 중이었겠지만, 이날만큼은 아니었다.

나는 오래간만에 호기로운 목소리로 - 성실한 수험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온  여자친구의 목소리는 전혀 호기롭지 않았다.


"자기야......어떤 남자가 차로 나를 치어 죽이려고 했어. 혹시....지금 와줄 수 있어?" 여자친구는 반쯤 우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소리인가!


나는 전화를 끊고, 책을 도로 가방에 넣었다. 열람실을 나와 뛰어서 계단을 내려갔다. 발소리만큼 심장도 뛰었다. 도서관을 나오니, 오른쪽 사거리에서 택시가 오는 게 보였다. 택시를 잡아 타고 30분 거리를 달려 여자친구를 찾아갔다.

여자친구는 그녀가 사는 아파트 경비초소에 있었다. 잠옷 차림으로 CCTV를 보는 중이었다. 나를 보자, 또다시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위로하며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자세히 들어봤다.
 

"나 자고 있는데, 전화가 온 거야." 그녀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받았지... 받았는데 대뜸 남자가 욕을 하는 거야. 차를 이따위로 주차했냐면서..."


"차를 어디 주차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어디긴,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지. 거기 차가 많아 이중 주차하잖아. 나도 똑같이 했지. 물론 사이드브레이크도 잠가놓지 않았어." 그녀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말했다. "하도 욕을 하길래. 왜 욕을 하냐고 했더니...."


"그랬더니....?"


"차 당장 빼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거야...." 그녀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그래서 다친 데는 없어?"라고 물었다.


"차를 이동하려고 나갔어. 내 차 앞에 웬 험상궂은 남자가 있는 거야. 팔에 문신도 있었어. 그 옆엔 여자도 있었고. 나를 보자마자, 때릴 듯이 욕하면서 손을 올리는 거야."


"뭐라고?"


"다행인 건 옆에 있던 여자가 말렸어. 그러더니 빨리 차 좀 빼달라는 거야. 해코지당할까 얼른 차를 이동했지. 그런데 남자가 계속 욕을 하는 거야...... 정도가 너무 심해서 나도 그만하라고 한 마디 했어. 그랬더니....... 그 남자가.."
 

"그 새끼가 어떻게 했어?" 나는 이제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차로 나를 막 칠 것처럼 엑셀레이터를 밟는 거야! 무서워서 뒷걸음질했어. 그런데 계속 내 쪽으로 다가오는 거야. 거기 계단 올라가는 입구 알지? 거기까지 내몰렸단 말이야!" 그녀는 놀랐는지 손을 가슴팍에 갖다 댔다. 잠시 숨을 고르고는, 

"옆에 탄 여자가 몇 번을 말리고 나서야 주차장을 나갔어... 이거 어떻게 해야 해?"

여자친구 눈에선 금방이라도 또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내가 뭐라도 해주길 바라는 그런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권한 없는 수험생일 뿐이었다. 그래도 이 사건이 특수협박에 - 자동차라는 흉기로 협박 -해당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우리는 경찰에 신고하기로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112 신고란 것을 해봤다.







잠시 후 두 명의 제복 경찰이 왔다. 선임 경찰관은 거대한 몸집과 부스스한 흰머리를 한 남자였다. 곧 정년퇴직을 앞둔 것처럼 보였다. 불룩 나온 배와 작아 보이는 경찰조끼가 그 모습을 더욱 강조하는 듯했다.

후임 경찰은 순경 계급장을 달고 있는 남자인데 선임 못지않은 풍채를 가지고 있었다.


"그건. 우리가 도와줄 수가 없겠네요." 선임 경찰관이 말했다. 도와줄 수 없다고? 왜 안된다는 걸까.


그는 팔짱까지 끼며 말했다.
 

"신고자분 이야기 들어보니, 차로 운전해서 치려고 했다는 건데요. 제가 법률 검토해 보니 아무 죄가 되질 않아요."


조금 전까지 울고 있던 여자친구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게 아무 죄가 아니라고요?" 그녀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렇죠. 만약 차에 치였다면 특수폭행으로 가중 처벌할 수 있어요.

그런데 칠 것처럼 행동했다? 이건 죄가 되질 않아요." 그는 전문가처럼 확신 있는 어조로 말했다. 뒤에 있던 순경은 선임경찰이 맞는 말을 했다는 듯이 고개를 두 번이나 끄덕였다.


이게 죄가 되질 않는다니. 내가 배운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실무에선 이렇게 처리하는 건가. 나는 묻고 싶은 게 많아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꾹 눌렀다. 괜히 현직 경찰에게 밑 보일까 겁이 났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뒤에 선 젊은 순경 놈이 더 얄미웠다. 폭행은 아니라도 협박은 되고도 남을 터인데. 법공부 했다면 당연히 알 것을 뭐가 맞는다고 고개를 끄덕인 건지. 여하튼 얄미웠다.


여자친구는 "그러지 말고 CCTV 한번 봐주세요. 제가 봤는데 이거 범죄 맞아요."하고 다시 한번 부탁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배불뚝이 선임 경찰이 말했다. "신고 출동 때문에 CCTV 볼 시간이 없네요. 정 그러시면 경찰서 가셔서 고소하시는 게....."


어느 누가 들어도 경찰서에 떠넘기는 듯한 말투였다. 나는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의 말대로 경찰서에 직접 가보기로 했다.


여자친구는 순찰차로 걸어가는 경찰관을 향해 말했다.
 

"그럼 내가 차에 치었어야 경찰이 도와준다는 거네요...." 그녀의 표정에선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우리는 CCTV  영상을 CD에 저장해서 바로 경찰서로 갔다. 건물 중앙에 들어가자 여경이 우릴 맞이했다. 그녀는 우리를 1층 어느 사무실로 안내했다.


그곳엔 사복경찰이 있었는데 다리를 꼬고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50대 정도의 남자였는데 키가 커 보였다. 앉은 모습에서도 나보다 크다는 것이 느껴졌다. 긴 다리만큼 얼굴도 길었는데 제법 인상도 날카로워 보였다. 그에게선 노련한 형사 이미지가 물씬 풍겼다.


우리는 사복형사로부터 원하는 대답을 들을 거라 기대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두 가지 이유를 대며 사건을 받지 않았다.


"이거 사건 접수하면 남자친구분이 곤란해질 수 있겠는데요?" 하고 사복형사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런 사건이 아실지 모르겠지만, 남자들 싸움으로 번지기도 하거든요." 그는 황당해하는 나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여자친구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여자친구분도 곤란해지지 않겠어요?"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인가! 뭐?

내가 싸운다고?

남자끼리 싸움이 번진다고?

저런 말하는 게 경찰이 맞는 건가?


나는 그의 의중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여자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남자친구인 나에게 피해가 올까 봐 수긍하는 듯했다.


있는 대로 짜증이 났던 나는 "아뇨. 그런 일 없으니까 사건 접수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증거자료 가져왔으니 보세요." 하고는 CD를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사복형사는 고개를 저으며, "정 사건을 접수하고 싶다면 현장에 가서 112 신고하세요. 지구대 직원이 나와서 접수해 드릴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시 우리를 지구대로 떠넘긴 거였다.


"형사님. 우리 지구대 직원 만나고 오는 길인데요? 그 사람들이요. 아무것도 해준 게 없고, 범죄도 되질 않는다고 했어요. 그리고 경찰서 가라고 해서 여기 왔죠. 그런데 또 지구대로 가라는 말인가요?" 이번에 여자 친구가 나서서 반격했다.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그 모습이 조금 전에 만난 지구대 선임경찰관과 결코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서 들려온 말은 더욱 실망감을 주었다.


"그런 생각 말아요. 지구대 직원을 믿어야죠."


나는 화가 나서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목구멍에서 험한 말이 막 튀어나오려고 할 때였다.


"됐어요! 우리 그냥 가자!" 여자친구가 내 팔을 잡아끌며 일어났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그녀를 쳐다봤다.


"뭐 해 안 일어나고?" 여자친구는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갔다. 나도 곧 그 뒤를 따라 나갔다. 그녀는 나에게서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데리고 나온 게 분명했다.


건물 중앙을 지나며 아까 그 여경이 우리에게 인사했지만 모른 체했다. 솔직히 모두가 원망스러웠다.

내가 이런 경찰이 되려고 지금껏 고생하는 건가.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도 지키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자기 밥 안 먹었지?"


"으응...." 나는 미안한 마음에 여자친구 얼굴도 제대로 보질 못하고 대답했다. 그녀는 그런 내 손을 꼭 잡고는 말했다.


"배고프지? 밥 먹으러 가자. 나도 아침부터 신경 썼더니 배고파." 눈물, 콧물로 엉망이 된 얼굴에서 다시 미소가 보였다. 내가 왔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놓였던 건가. 우리는 그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밥을 먹었다.



많은 사람이 경찰을 향해 서운한 마음을 내비치곤 한다. 그러나 경찰에 서운한 건 당신 만이 아니었다. 다시 생각해도 형편없는 경찰관들이었다.


이미 10년도 더 지난 일이니, 지금은 이렇게 처리하는 경찰은 없을 거라 본다. 최소한 내 주변에선 보질 못했으니까.

허위 납치 신고한 중년 여성의 한마디 말 때문에 오래전 일을 다시 떠올리고 말았다. 불쾌했던 기억을.
 


이전 07화 8월의 어린 망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