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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 무장 경찰 Feb 22. 2024

강력팀의 두 가지 불문율

신입 강력  형사가 겪은 두 가지 법칙


내가 강력팀 형사를 시작했던 건 2016년, 내 나이 서른세 살 때였다. 운 좋게도 좋은 팀원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팀에는 내가 모르는 불문율이 하나 있었는데, 그걸 듣고 있자니 꽤나 흥미로웠다. 인사 발령으로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면 반드시 신고식을 치르게 된다는 거였다.


그 신고식이란 강도나 살인처럼 중요 사건을 의미했다. 즉 신임 형사인 내가 큰 사건을 틀림없이 몰고 온다는 거였다. 미신 따위 믿지 않는 나였기에 그럴 리 없다고 말했지만 선배 안형사는 어디 한번 두고 보라며 코웃음을 쳤다.


매년 2월이면 초, 중, 고등학교 모두 졸업식이 한창이다. 그런 곳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데 한 중학교에서 딸의 졸업식을 축하해 주러 온 엄마가 소매치기를 당했다고 했다.


요즘 세상에 누가 소매치기를 당한다고...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어디서 분실한 건 아닐까.


하지만 피해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모두 같은 학교 졸업식에 간 학부모였다. 그들 모두 핸드백을 들고 있었는데 백 뒤 쪽이 기다랗게 찢겨 있었다. 흔히 말하는 면도칼 같은 걸로 찢고 지갑을 꺼내간 게 틀림없었다.


피해자가 더 나오고 나서야 우리 팀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당직 근무를 마치고 퇴근도 못한 채 학교에 찾아갔다. 일단 CCTV부터 봤지만, 수백 명이 왔다 갔다 하는데 누가 범인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범인은 차치하더라도 피해자도 보이지 않았다. 보통 피해자를 보고 범행 장면을 확인하면 그 범인을 추적한다.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보는 내 눈만 아파왔다.


"이형사가 CCTV를 저장해서 사무실로 가서 확인해 봐. 이상한 행동하는 사람 있는지." 선배 안형사가 말했다. 그는 강력팀장을 보고, "저와 김형사는 주변 현장 좀 살펴보고 특별한 거 있으면 연락할게요." 하고 말했다.


우리는 조를 나눠, 안형사와 김형사는 현장을, 나와 팀장과 부팀장은 사무실에서 CCTV분석을 하기로 했다.






사무실 내 자리에서 CCTV를 돌려봐도 특별한 게 나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찾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 4배속, 8배속으로 보지만, 이건 1배속으로 봐야 했다.

운동장 한가운데를 비추는 CCTV 화면에는 어마 어마한 인파가 가득해 한 명, 한 명을 주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은색 패딩입은 사람은 왜 그렇게 많은지...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음이 쏟아졌다.


내가 자는 걸 봤던 건지, CCTV 결과가 궁금한 건지 팀장이 내 잠을 깨웠다.


"이 형사. 뭐 좀 나오는 거 있어?"


"아뇨. 아직...... 더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때 현장 조가 사무실에 왔다. 어지간히 추웠는지 둘 다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김형사는 손에 지갑을 하나 들고 있었다. 선배 안형사는 뭔가 할 말이 있다는 표정이었다. 팀장은 두 사람을 반기며 말했다.


"추운데 고생들 했어. 어때? 뭐 나온 거 있어?"


"학교 반대편 시장 입구에 이게 떨어져 있었어요." 김형사는 들고 있던 지갑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거 피해자 지갑이에요. 돈만 빼고 지갑은 버렸어요."


 "오 그래?" 팀장은 아까보다 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안형사가 거들었다.


"지갑 떨어진 길에  CCTV를 어렵게 구했어요. 이거 한번 보시죠." 그는 검지손 한 마디 크기 USB를 보여주며 말했다.





"졸업식 시작부터 우리가 지갑을 발견할 때까지 이곳을 통과한 사람이 15명이야. 그런데 벽에 가려져 지갑 버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대체 누가 범인이지?" 안형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안 그래도 작은 눈매가 더욱 날카롭게 느껴졌다.


우리 모두는 안형사 뒤에 서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때 부팀장이 끼어들었다. 그는 20년 이상 강력팀에서 근무한 배테랑이었다.


"안 형사. 저기, 저 놈이잖아. 파란 등산복. 저놈이 범인이야."


나는 파란 등산복 입은 사람이 나오는 장면을 재빠르게 재생했다. 50대의 노숙자 풍의 남자였다. 허름한 등산복에 팔자 걸음걸이. 겉모습으로 판단해선 안되지만 걸음걸이며 옷차림이며 그는 범죄자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겨났다.


"아. 형님..... 저 사람이  범인이라고 생각하세요?" 안형사가 부팀장의 말에 반박했다.


"저기 지갑 떨어진 곳 지나간 놈이잖아."


"저 사람만 지나간 게 아니잖아요."


"아니야. 안형사. 저 파란 등산복 저놈이 맞아. 생긴 게 꼭 범인 같잖아."


"무슨 근거로요?"


"너 나 몰라? 내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저 놈이 범인이라고......." 부팀장은 확신하며 말했다.


감수사도 수사 방법 중 하나이긴 하다. 게다가 20년 넘게 강력팀 근무만 했던 부팀장이니,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지금 와서야 CCTV가 널렸지만 그가 수사할 당시에는 CCTV조차 없었을 터, 결국 탐문 수사와 감 수사를 했을 게 분명했다. 그만큼 감수사엔 탁월한 능력이 있을 거라,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안형사 생각은 달랐다.


"형님 지금까지 지나간 사람이 15명이에요. 한참 았는데 범인 아니면요? 그럼 헛고생이잖아요." 안형사는 목소리 톤까지 높이며 말했다. 나는 이러다 둘이 싸우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지. 안 그래?"


"저도 범인은 15명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파란 등산복 남자가 무조건 범인이라고 하기엔 좀...... 뭔가 더 확실한 게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막내인 나는 숨 죽이고 가만히 듣기만 했다. 잠깐의 침묵을 안형사가 깨뜨렸다.


"저희는 다시 현장 나가볼게요." 그는 패딩을 주섬주섬 입었다. 파트너인 김형사도 따라서 나갈 채비를 했다. 부팀장은 기분이 상한 건지 고개를 돌리며 모른 체 했다. 나와 팀장만 어색하게 인사를 받아줬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현장에 나갔다.


나는 분위기가 적응되지 않아 학교에서 가져온 CCTV를 마저 보기로 했다.






한참 CCTV와 지루한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안형사에게 전화가 왔다.


"예. 형님. 말씀하세요."


"이형사야. 내 말 잘 들어."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너의 역할이 가장 중요해."


선배 형사의 의미심장한 말에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스타크래프트 알지?"


"예? 스타요? 게임 말하는 거죠?" 그의 엉뚱한 질문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스타크래프트 보면 '커맨드센터' 있잖아. 지금부터 너는 커맨드센터야. 네가 지시하는 대로 우리가 현장에서 움직일 거야. 쓰레기통이라도 뒤질 테니까. 학교 CCTV에서 반드시 뭐라도 찾아야 해. 내 말 알겠지?"


"예...."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겨울에 고생하는 사람 때문에 심적 부담은 더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다. 속 쓰림을 참고 커피를 마셔가며 CCTV에 열중했다.


전화를 끊고 10분, 아니 2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단체 SNS방에 CCTV 사진이 올라왔다. 현장조가 전송한 사진이었다. 그 사진으로 15명 중 용의자는 8명으로 좁여나갔다. 이젠 나도 마음이 급해졌다. 뭐라도 찾고 싶었다. 나는 남은 8명의 용의자 사진과 CCTV를 번갈아봤다.


파란 등산복 남자. 스포츠머리 남자. 자주색 코트 할머니. 그리고 또....... 잠깐! 자주색 코트?


순간 자주색 코트 입은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한 70대는 족히 넘어 보였다. 핸드백을 엑스자로 걸친 할머니. 분명 낯이 익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영상을 돌려봤다. 그러다 기억이 더욱 또렷해졌다. 분명 학교 CCTV에서 스치듯 봤던 할머니였던 것이다! 


나는 속도를 높여 영상을 봤다. 뒤로. 더 뒤로. 더...... 기억을 떠올리며 영상을 돌렸다. 그리고 한 장면에 이르러서야 영상을 정지했다. 역시  자주색 코트에 핸드백을 메고 있는 할머니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녀가 범인이라 단정하기에 일렀다. 사실 아무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손자 졸업식을 찾아온 사람일 수도 있으니 신중해야 했다. 그러나 강한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할머니의 행적을 따라가 보았다. 그러자 의심은 확신으로 변해갔다. 그녀는 학교에 들어가고 30분이 지나 다시 나왔다. 그러고 나서 한참 만에 다시 정문을 통과해 들어갔다. 마지막에는 졸업식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다시 학교를 나가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더욱 이상한 건 그녀가 혼자라는 사실이었다. 생각해보자. 졸업식날 학부모가 가족도 없이 혼자서 왔다 갔다 한다? 그녀의 행적은 나의 상식을 벗어났다. 나는 그녀가 범인일 거라고 강하게 직감했다.


즉시 안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말을 들은 선배는 할머니의 행적을 쫓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기묘한 할머니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쫓으면 쫓을수록 할머니의 행적은 뭐라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학교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는 불과 두 정거장 지나서 내렸다. 그러고는 지갑이 버려진 시장 골목을 통과했다. 이때 지갑을 버린 게 분명했다.


시장을 가로질러 반대편 입구로 나와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CCTV로 그때그때 본 그녀의 표정은 이상하리만큼 무표정이었다. 이번에 탄 버스에서도 몇 정거장 가지 않고 내렸다. 결국에는 택시를 타고 그 동네를 유유히 떠나고 말았다.

할머니는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교통수단을 번갈아타는 치밀함을 보이기까지 했다.


여기까지가 사건 발생 일주일 동안 알아낸 사실이었다. 그간 추위에 떨고, CCTV 보러 갔다가 문전박대당하고, 억울한 일 투성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왠지 더 잡고 싶었다. 이 할머니가 전문 소매치기범이란 사실을 우리 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가 탄 택시 GPS 확인을 위해 택시 업체 방문만 몇 차례, 드디어 내린 곳을 알아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희열감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사람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는지 결국 동선이 끊기고 말았다.


택시는 손님이 있을 때 갓등을 끈다. 반대로 없으면 등이 켜져 있다.

범인이 탄 택시는 갓등이 꺼진 채 모 지역 하이마트 앞에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다시 유턴하고는 그대로 옆 동네로 넘어갔다. 그곳에서 갓등이 켜졌다. 승, 하차 내역도 일치했다. 그럼 갓등이 켜진 옆동네가 할머니가 내린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린 바로 그 동네를 갔다. 은행, 노래방, 안마방 할 것 없이 CCTV가 있는 곳은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자주색 코트 할머니는 보이질 않았다.
수사 시작 열흘이 넘어갔는데 사건이 미스테리에 빠지자, 슬슬 지쳐가기 시작했다. 정말 불문율처럼 내가 사건을 몰고 온 건가.


"오늘은 다들 퇴근해야 하니까 들어가고 내일 해보자. 어제 당직하고 잠도 못 잤는데. 좀 쉬어야지." 팀장이 말했다. 우린 다음 날을 기약하고 현장에서 해산하기로 했다.


팀장과 부팀장이 먼저 떠나고 나도 가려고 할 때였다. 안형사가 나와 김형사를 붙잡으며 말했다.


"우리 해장국이나 한 그릇하고 가자. 점심도 지났는데."
 

그러고 보니 당직 근무하고 아침 식사도 못해 속이 쓰렸다. 배가 고프기도 했고.


우리는 동네 유명한 해장국집에 들어갔다. 각자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릴 때였다.


김형사가 안형사를 보고 말했다. "형님! 우리 그거 한번 하시죠!"


그러자 안형사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무슨 신호인 건지 말을 마친 김형사가 식당을 나갔다. 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잠시 후 김형사가 들어왔다. 오른손에 검은 비닐을 들고서. 그는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비닐 속에 있는 것을 꺼내지도, 말해주지도 않았다. 선배 안형사와 둘이서만 눈치를 주고받으며 킥킥대기만 했다. 괜히 소 왜 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윽고, 뚝배기 그릇이 비워지고, 김형사가 검은 비닐을 식탁에 올렸다. 나는 호기심 반, 기대감 반으로 비닐 속을 쳐다봤다. 그리고 바로 실망했다. 비닐 속에서 나온 건 다름 아닌 바나나우유였던 것이다. 어릴 때 목욕탕에서 먹던 그 항아리 모양의 바나나맛 우유 말이다.


"뭐야? 나 우유 먹으면 소화 안 돼서...." 나는 김형사가 주는 우유를 애써 거절하며 말했다.


"아냐. 지금 먹어야 해." 김형사는 선배 안형사를 쳐다보며 말했다."그렇죠? 형님?"


"김형사 말이 맞아." 그는 내가 김형사에게 건넨 우유를 다시 내밀었다. 그러곤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전에 진짜 잡고 싶은 범인이 있었어. 그런데 말이야. 오늘처럼 단서가 없는 거야. 막막했지...... 마침 담배도 떨어진 거야. 그래서 마트에 들어갔어. 나는 분명 담배만 달라고 했는데, 아주머니가 바나나우유도 주셨거든. 고생한다고 그냥 마시라는 거야. 아무래도 내가 불쌍해 보였나 봐."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선배를 쳐다봤다. 하지만 선배의 표정은 아까보다 더 진지해졌다.


"그 바나나우유를 마셨는데 어떻게 됐을 것 같아?" 그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기적 같이 범인 단서를 찾게 된 거야!"


"그래서 잡았어요?"


"당연히 잡았지!" 김형사가 대답했다. 그는 바나나우유에 빨대를 꽂으며 "그때부터 정말 힘들 때 있잖아? 그럼 바나나우유 마시면 이상하게 답이 나왔다? 신기하지?" 그는 두 볼이 쏙 들어가도록 빨대를 입으로 쪽쪽 빨아댔다.


범인에 대한 단서가 없을 땐 바나나 우유를 마셔라. 반드시 항아리 모양의 바나나우유여야만 한다. 황당하지만 우리 팀의 두 번째 불문율이었다.


역시 미신 따위 믿지 않는 나지만 바나나 우유를 마셨다. 달달한 음료가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들어가니 기운이 나는 듯했다. 내친김에 우린 조금 더 수사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형사라는 사람들이 이런 순수한 면을 가지고 있다니. 그들을 따라가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더 황당한 건 우린 그날 범인의 동선을 알아냈다는 거였다. 그리고 기어코 그녀가 사는 집까지 찾아내고 말았다. 정확히 3일 후 체포영장을 들고 가서 자주색 코트 할머니를 검거했다.


그녀는 10대부터 유명했던 소매치기범이었다. 얼마 전 출소하고 딸과 손녀와 살고 있었는데 그 도벽이 다시 도져버린 거였다. 



"바나나우유의 전설"을 들어 버린 팀장은 박수를 쳤다. 그 후로 사건이 터졌다 하면 우리에게 우유를 사다줬다. 그러나 너무 자주 먹어서 그런 건지 더는 바나나 우유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사실 인사발령으로 강력팀에 온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팀장도 강력팀이 처음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사건은 나중에 치른 팀장 신고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툭하면 칼부림 사건을 몰고 다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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