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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 무장 경찰 Feb 29. 2024

하드보일드 형사(완결)

강력팀 막내 시절 첫 번째 침입절도 수사


전편에 이어서 갑니다!


https://brunch.co.kr/@7615295/39



나는 범인이 빌라 단지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보인 사거리로 다시 나왔다. 혹시 내가 놓친 게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한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2층 작은 한의원.

운영하는 곳인지 의심될 정도로 허름한.


창문에 붙은 한의원 이름도 지워져 있었다. 나는 그 창문 위 벽에 붙은 작은 CCTV 카메라를 주목한 것이다.


건물로 들어가 보았다. 한의원 내부는 밖에서 본 것과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기다리는 손님들이 바글바글했다. 꽤 나 유명한 한의원이었나 보다.


간호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CCTV를 봤다. 영상은 마지막 범인이 보인 사거리를 정확히 비추고 있었다.


다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묘하게 흥분이 돼서 정신이 또렷해졌다. 이 기분이라면 뭐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진료실 컴퓨터로 영상을 봤다. 덕분에 진료를 잠시 중단하게 되었지만.


모자 쓴 범인이 보였고, 내 눈은 범인을 따라갔다. 그는 사거리에서 방향을 바꿔 빌라 단지로 들어갔다. 숨을 죽이고 집중했다. 그러자 그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실수한 건 아닌지 몇 번 돌려봤지만, 건물로 들어간 게 확실했다!



나는 영상을 보면서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지금 한의원 CCTV 보고 있거든요. 범인 빌라로 들어가요.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정말이야? 알았어! 확인되는 거 있으면 바로 연락해.” 내가 전한 소식에 기운이 생겼는지 선배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범인이 빌라로 들어간 건 맞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A동과 바로 옆에 있는 B동 중 어디로 들어간 건지 식별이 되질 않는 거였다. 나는 핸드폰으로 영상을 촬영해 선배에게 전송한 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유심히 영상을 본 선배가 “음··· 이 형사. 실시간 화면으로 볼래?”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대로 실시간 촬영하는 영상을 봤다. 빌라 입구에 내 손가락 크기의 우리 팀 사람들이 보였다.


“보내준 영상 보니까 범인이 이쯤에서 빌라 단지로 들어갔어.” 그는 범인이 걸어간 방향에서 똑같이 빌라 단지를 향해 걸으며 말했다. "맞지?"


“예. 맞아요.” 나는 화면으로 선배 모습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여기부터 범인 걸음 수가 하나, 둘, 셋, 넷······” 그는 되도록 범인과 보폭을 똑같이 맞추며 빌라로 향했다. 그러고는 걸음을 멈췄다.


다시 CCTV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는 “이 형사 이놈 딱 열다섯 걸음이야. 여기야. 첫 번째 빌라.”하고 말했다.


나는 다시 범인의 모습을 확인했다. 정확히 선배가 서 있는 곳과 일치했다. 그가 들어간 빌라는 A동이 맞았던, 것이다!

     



 


잠시 후 김 형사가 갈색 서류 봉투를 들고 왔다.


“주민센터에서 빌라 세대원 조회했어요.” 그는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며 말했다. "여기 범인 얼굴 나왔습니다. 와 이놈 빵잡이네요."


그는 이미 범인 얼굴까지 대조하고 전과는 물론 수법 조회까지 마친 상태였다. 범인은 20대 중반 남자로 얼마 전 교도소에서 출소한 상습범이었다. 이전 수법도 이 사건과 같았다. 역시 뚜벅이였다.



우리는 그의 집으로 갔다. 1층에만 8세대가 사는 곳으로 원룸이나 고시텔 수준이었다. 빌라라고 하기엔 초라했다.


문 건너편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아무래도 잠복해야겠지?" 팀장은 고생하는 팀원이 안쓰러웠는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시죠. 이놈 오늘 놓치면 도망갈지 몰라요." 선배가 말했다.


우리는 빌라 입구가 잘 보이는 사거리에 스타렉스를 주차하고 안에서 잠복했다. 전날 당직 근무 여파인지 다들 피곤해했다.







오후 7시쯤, 누군가 빌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모자는 쓰지 않았지만, 키가 제법 큰 게 범인과 비슷해 보였다.


"형님! 지금 들어간 남자 한번 따라가 보죠."


우리는 다시 범인 문 앞에 서서 인기척을 확인해 봤다. 여기 빌라가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문 위에 환풍기가 달려 있다는 거였다. 환풍기 사이로 형광등 빛이 보였다. 내 눈에만 그런 건지 그 빛이 상당히 눈이 부셨다.


안에서 뭔가 소리도 들려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며, 치이익 하는 소리며 음식을 조리하는 듯했다.


부팀장이 목소리 톤을 낮추고 말했다.


"일단 이 형사와 나는 창문 쪽에 있을게. 혹시 도망갈지 모르니까. 나머지는 문 쪽에서 대기하자고."


나는 고양이 걸음으로 건물 뒤쪽으로 가봤다. 역시 창문이 하나 보였다. 불도 켜져 있었다. 그런데 여긴 도저히 사람이 나올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큰 키의 범인이 이 작은 창문으로 도망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선배 안 형사 생각도 나와 같았다.


그는 부팀장에게 말했다.


"형님 그냥 들어가시죠."

"야! 그러다 도망가면 어쩌려고 그래?"


"저기 창문으로는 못 나가요. 크기 보셨잖아요. 저렇게 작은데······"

"만에 하나 나가기라도 하면······?"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해요? 그냥 들어가자고요. 형님!"


두 사람의 기싸움이 다시 시작됐다. 이번엔 팀장이 중재하고 나섰다. 그도 빨리 끝내고 싶었는지 부팀장보다 선배 안 형사 편을 들었다. 부팀장은 서운했는지 혼자 밖으로 나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는 생각보다 잘 삐치는 성격이었다.



결국 우린 문 앞에서 그를 나오게 하기로 했다. 낮에 김 형사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이곳은 범인 말고 또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우린 그 사람 친구인 척, 해보기로 했다.


 쾅! 쾅!.


 "계세요?" 안 형사가 해병대 교관 목소리로 문에다 대고 외쳤다. 잠시 후 "누구세요?"라는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형사는 "아. 저 보현이 친군데요. 보현이, 만나러 왔어요."하고 말하며 다시 문을 두드렸다.

갑자기 안에선 아무런 대꾸가 없다. 치이익 하는 음식 튀기는 소리만 들렸다. 성격 급한 선배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제야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보현이 형 지금 없는데요······"


"아······ 짜증 나네." 선배는 심기가 불편했는지 혼잣말을, 했다. 그는 다시 "아니 보현이가 뭐 좀 가져가라고 했어요. 문 좀 열어봐요!"하고 말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고 이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나는 안 형사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문 위에 환풍기 사이로 뭔가 휙 하고 지나갔다. 잠깐이지만 나는 그게 뭔지 알 수 있었다.


범인이었다. 그가 환풍기 사이로 우릴 쳐다보고 있던 것이었다! 순간 귀신인 줄 알고 놀라버렸다.


나는 바로 정신 차리고는, "우리 들켰어요. 저기 환풍기로 우리 다 봤어요. 어떻게 하죠?"하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안 형사는 갑자기 얼굴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 씨·····"하고 또다시 혼잣말하고는 발로 문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야! 문 열어! 너 지금 안 나오면 가만두지 않는다!" 하고 반협박성 멘트까지 날리기 시작했다. 문을 걷어차는 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내 마음마저 시원했다. 팀장은 그를 말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성난 짐승 같은 선배를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이윽고 안에서 문이 열렸다. 반팔티와 반바지 차림의 범인이 나왔다. 그의 표정을 보니 이미 자포자기한 듯했다. 나는 괜히 마음이 짠해졌다. 그러나 선배는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갔다.


"미안한데 신발 좀 신고 들어갈게요. 괜찮죠?" 그는 범인 대답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고는 신발을 신은 채 척척 안으로 들어갔다.


방 하나와 거실 뿐인 작은 원룸. 짐 정리도 되지 않아 방엔 여행 가방 두 개가 그대로 있었다. 오른쪽 주방 프라이팬에는 음식이 익어가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치이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그 위로는 연기까지 자욱했다.


집 안에 음식 냄새도 가득했는데, 프라이팬을 보니 삼겹살이었다.

어릴 때 자주 먹던 대패삼겹살. 이제 거의 익어가고 있었다. 곧 타버릴 것 같았다.

지금 먹지 않는다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는 외출하고 들어와 삼겹살을 먹으려고 했던 거였다. 운 나쁘게도 그때 우리가 덮치고 말았다. 다시 내 맘이 짠해졌다.


"너. 문 열라고 그렇게 소리쳤는데 왜 안 열었어? 한번 해보자는 거야?" 선배는 범인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범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대꾸도 하지 못했다.


불쌍했다······


우리는 집안을 수색해 범인이 훔친 속옷과 현금을 찾아냈다. 이제 그를 데려가야 할 차례. 그런데 삼겹살은 어떻게 해야 할까. 범인은 구속에 징역까지 충분해 보이는데 밥 먹을 시간 정도는 줘도 되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다시 범인을 동정하고 말았다.


"이 형사는 피해품 챙기고, 김 형사 이놈 수갑 채워. 경찰서 들어가자." 선배가 말했다.


나는 훔친 물건을 챙기며 선배에게 물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형님. 저거 삼겹살 어쩌죠?" 나는 연기가 나는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선배는 "아, 저거?" 하고 말하고는, 주방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나와 범인은 그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연기 때문에 죽는 줄 알았네!" 하고 말하고는 가스레인지 손잡이를 돌려 꺼버렸다.

치이익 소리와 연기가 허공 속에서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고요했다.


선배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고개 숙인 범인을 데리고 먼저 나가버렸다. 역시 그는 비정한 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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