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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 무장 경찰 Mar 04. 2024

오해가 부른 충격적인 비극

여자를 감금한 남자의 변명


월요일 오전 10시. 평소라면 회사에 있어야 할 시간, 상현은 여전히 집이다. 외출이라고는 근처 편의점이 전부.

그곳에서 소주와 안줏거리 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50이 갓 넘은 한창 일할 나이지만 그는 일정한 직업이 없다.



불과 1년 전까지 상현은 지금과 다른 사람이었다. 나름 잘나가는 사업가로 돈도 꽤나 갖고 있었다.

그러나 사정이 어려워졌다. 직원 월급은 고사하고 빚만 늘어가게 되었다. 이제 자신감 넘치는 사업가의 모습은 온대, 간데없이 사라졌다.


사업 실패한 상현은 매일 같이 술에 젖어 있었다. 술기운에 잠들고 일어나면 다시 술에 의지하는 그런 비루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날 상현은 오후 8시가 다 되어 잠에서 깼다. 숙취 때문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속이 쓰렸다. 문득 현관 쪽에서 인기척을 느껴 고개를 돌아보았다. 상현의 아내였다. 그녀는 막 외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나 좀 나갔다 올게. 술 좀 그만 마셔.”


그의 아내가 말했다. 법적인 아내는 아니고 사실혼 관계였다. 상현은 신발을 신으며 나갈 채비하는 아내를 쳐다봤다.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차림을 보고는 “어디 나가는데?”라고 물었다.


“누구 좀 만나고 오려고 해. 그럼 안되는 거야?” 오늘따라 아내의 말투가 더욱 퉁명스러웠다. 상현은 아내가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한다고 느꼈다.


“애는 어디 있는데?” 그가 다시 물었다.


“하··· 친정에 맡겼잖아. 이젠 기억도 나질 않나 봐? 그리고 언제 관심이나 있었어?” 하고 그녀가 대꾸했다.


그러고는 몸을 휙 돌려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매몰찬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상현은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상현은 3년 전, 자기보다 10살은 더 어린 아내를 자주 다니던 BAR에서 처음 만났다.  처음엔 손님과 직원 사이었지만  어느새 연인이 되었다.


그녀는 유치원생 딸을 키우는 이혼녀였는데, 상현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상현은 그녀를 아내로, 그녀의 딸을 자기 친딸처럼 키웠다.


하지만 1년 전부터 사업이 기울었다. 평소 자존심 강했던 상현은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늘어가는 빚더미에 그만 자포자기하고 말았다.

항상 술에 절었던 남편이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건 당연한 이치였다. 친밀했던 가족 관계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상현은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자기 몰래 나가서 전화를 받거나 밤늦게 들어오는 일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기 처지 때문에 참아왔는데 이제는 보란 듯이 외도하고 있다.


증거?


평소 쓰지 않는 향수, 애 엄마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옷차림까지. 게다가 를 무시하고 늦은 밤까지 돌아다니는 건 또 어떻고.


상현은 더는 참기 힘들었다. 아내가 나가자, 그는 냉장고에서 남은 술을 전부 꺼내왔다.





같은 날 관내 지구대 소속 김 경위는 야간 근무 중이었다. 퇴직까지 7년 남았지만, 여전히 현역에서 뛰었다. 그만큼 일을 미루거나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사람이 좋아 후배들도 편하게 생각했고, 누군가에게 미움받을 짓을 하지도 않았다.



그날은 친한 신임 여경, 이 순경이 파트너였다. 그녀도 성격이 좋아 두 사람은 죽이 아주 잘 맞았다. 자정이 못되어 막 출출했는데 이 순경이 빵까지 갖고 왔다.


야식을 즐기지 않는 경위지만 후배 정성을 거절하기 어려워, 빵을 한 점 먹어보기로 했다.



지구대 회의실 책상에 빵과 우유를 펼치고 먹고 있을 때였다. 112신고를 지령받았다.

신고자가 집에서 남편에게 감금당했다는 내용인데, 문자 신고였다. (112신고는 문자 메지도 가능하다) 지령실에선 위험한 상황이니 전화는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는 이 순경과 함께 신고 장소로 출발했다. 지구대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빌라였다. 호수는 102호. 시설이 낙후된 곳인지 공동현관도 열려 있어 건물로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두 사람은 현관문 앞에 섰다. 빌라처럼 소음에 취약한 곳이라면, 소리가 들려오기 마련인데. 아무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102호 안에 사람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김 경위가 왼쪽 귀를 문에 가까이 대보았다. 12월 겨울, 차가운 철문에 귀가 닿자 순간 소름이 돋았다. 역시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허위신고인가?”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엔 초인종을 눌러보았다. 하지만 고장인지 먹통이었다.


“안에 계십니까!” 그는 문을 두드렸다. 몇 분 동안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포기하고 나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신데요?”


걸쭉한 남자 목소리였다. 김 경위는 다시 문 쪽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경찰입니다. 문 좀 열어주실래요?”


“하··· 지금 시간이 몇 신 줄 알아요? 자고 있는데·····”


“아··· 그게 말이죠. 별건 아니고요. 소음 신고가 있었어요. 안에서 시끄럽다고······” 김 경위는 단순한 소음신고인 척,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그런 거 없으니 그냥 가보세요.” 남자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지 마시고 잠깐 문 좀 열어주시죠. 아시잖아요. 우리도 이런 거 불편한데 신고받으면 어쩔 수 없이 확인은 해야 해서 말이죠······”


경위의 설득에도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 아무 일 없다고요! 그냥 가세요. 좀!” 남자는 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김 경위는 남자의 태도 때문에 더욱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이 순경, 신고자 이름 뭐였지?” 김 경위는 후배를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김선영이에요.”하고 후배도 같은 톤으로 대답했다. 김 경위가 다시 문을 두드리며 대화를 시도했다.


“혹시 거기 선영 씨라고 살고 있나요?”


······제 와이프인데. 왜요?” 남자가 말했다.


“아. 선영 씨가 아내였군요. 선영 씨 안에 있죠? 잠깐 얼굴 좀 볼게요.”


갑자기 문 안쪽에서 아무 말이 없었다. 김 경위는 “여차하면 강제 개방해버리자.”라고 후배에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현관문에 귀를 가까이 대보았다.


안에서 뭔가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까지 대화한 걸쭉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이질적인 소리······ 이건 여자의 목소리였다.


대화를 알아들을 순 없지만, 남자가 여자를 다그치는 듯한 말투인 건 분명했다. 작은 목소리 주인공은 신고자가 틀림없다! 김 경위는 그렇게 생각했다.



"경찰관 지원해줘!"


그는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곧바로 후배에게 "테이저건 준비해. 혹시 모르니까."하고 말했다.

이 순경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긴장했는지 얼굴이 굳어 있었다. 오른쪽 옆구리에 있는 테이저건을 꺼내고 카트리지를 앞에 끼웠다.


 “문 열어! 문 열라고!” 김 경위가 소리쳤다. 12월 겨울밤 그의 목소리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건물 안으로 울려 퍼졌다.


“살려주세요! 도와줘요!


 “가만히 있어. 이X아!”


비로소 두 사람의 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왔다. 신고자는 살려달라고 애원했고, 남자는 그녀를 위협했다. 두 사람의 격한 소리는 현관문 하나를 두고 울려 퍼졌다.


필시 문 앞에서 여자는 나가려고 하고 남자는 그녀를 붙잡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김 경위는 직감했다.




- 목요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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