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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무장 경찰
Feb 26. 2024
하드보일드 형사
나의 첫 번째 침입 절도 사건 수사
신임 순경은 의무적으로 지구대 근무를 해야 한다. 보통 1년 정도 하게 되는데 최일선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라는 경찰청 지침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 서류 인계 차 경찰서 갈 일이 있었다. 여러 부서를 가는데 딱 하나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었다.
바로 형사과였다. 형사들의 터프함과 텃새가 내심 견디기 싫어서였다.
형사당직실에 들어가면 정면에 책상 다섯 개가 나란히 있고, 오른쪽에 범인이 앉는 - 수갑을 채울 수 있는 곳이다 -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같은 공간은 지구대도 있지만 형사당직실이 규모가 훨씬 컸다.
형사들은 자기 자리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범인을 조사하곤 했는데 다들 바빠 보였다.
그러다 내가 들어온 걸 알고는 일제히 고개를 들어 어색하게 서 있는 나를 쳐다봤다. 차갑고 세 보이는 인상을 풍겼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알 수 없는 무거운 분위기가 나를 짓눌렀다. 내가 주눅 들기에는 충분했다.
게다가 그들은 서류를 받으며 미소 한번 보인 적이 없었다. 왠지 지구대 직원인 나를 무시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는지, 당시 내 동기들 모두 형사과 가는 걸 싫어했다.
하지만 내가 형사과에서 지내보니 생각과는 다른 점이 꽤 많았다. 감성적이고, 잘 웃고, 잘 삐치기도 하는 형사들이 있었으니까.
막내로 들어간 강력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와 동갑내기 김 형사는 태권도 선수 출신에다 경찰특공대를 거친 강철 체력의 소유자이다. 무슨 – 내가 알지도 못하는 - 스포츠 대회란 대회는 전부 출전해 왔다.
그런 그도 반전이 하나 있다면 멜로드라마를 병적으로 좋아했다는 거였다. 매일 같이 드라마 여주인공 이야기를 나에게 하곤 했다. ('또 오해영'이란 드라마가 기억난다)
바로 위 선배인 안 형사는 합기도 유단자에다, 무도 사범 출신이다. 큰 키의 날카로운 인상. 그리고 해병대 교관 같은 목소리까지 갖추고 있었다. 실제로 두 사람은 해병대 출신으로 자부심 또한 대단했다.
선배 역시 흥미로운 반전은 있었다. 누구보다 냉철한 그가 우는 걸 나는 두 번이나 보게 된 것이다. 한 번은 친구 장례식장에서, 또 한 번은 강력팀 사무실에서였다.
내가 사무실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을 때였다. 내 맞은편에 앉은 선배는 핸드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사무실을 급하게 나갔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다른 한 손으로는 코와 입을 가린 채 부리나케 뛰쳐나갔다.
순간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잠시 후 선배가 사무실에 왔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내심 웃음보가 터져 미칠 지경이었다. 그의 눈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인즉슨 한 유튜브 영상에서 불치병으로 딸을 잃은 엄마가 AI로 만든 딸을 만난 영상을 보고 울컥했다는 거였다. 두 딸의 아빠라서 감정 이입했다며 쑥스럽게 말했다.
누가 이 감성적인 남자들을 보고 비정하다 할 수 있을까.
두 사람과 근무하다 보니 재미난 일이 참 많았었다. 지난번 있었던 '바나나 우유 전설'도 그렇고.
한 번은 다세대 주택에 도둑이 들었다는 침입 절도 사건을 수사한 적이 있었다. 내가 강력팀 들어와 처음 수사한 침입 절도였다.
핸드폰이나 지갑을 훔친 게 단순 절도라면 침입 절도는 말 그대로 집에 들어가 훔친다.
만약 안에 사람이 있다면 절도범은 언제든 강도로 돌변할 여지가 있다. 그래서 절도 중에도 심각한 범죄에 속한다.
범인은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을 전부 헤집고 다녔다. 일부러 이런 집을 노린 것 같았다. 피해당한 가정만 다섯 곳이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니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자고 있는데 모자 쓴 남자가 창문을 열고 들어오려 했어요."
"옥상에 널어 둔 브래지어와 반바지가 없어요."
"누가 들어올 거라 생각 못해 문을 열었는데 웬 남자가 들어왔어요. 놀라서 소리 지르니 급하게 도망갔어요."
실로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이건 초범의 짓이 아닌 게 분명했다. 피해자들 이야기의 공통점은 범인은 키가 크고 모자를 쓴 남자라는 것이다.
이것 말고는 단서가 없었다. 골목이라 제대로 된 CCTV 하나 보이지 않았다. 발로 뛰어야 하는 강력팀 입장에서 빌라나 주택가 침입 절도 사건 수사가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다행히 근처에 관제센터에서 관리하는 CCTV가 하나 보였다. 우리는 CCTV를 분석해 보기로 했다.
새벽 2시쯤, 집과 집 사이를 비추는 CCTV에 뭔가 움직이는 게 포착됐다. 검은 형체가 집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나는 영상을 멈추고 그 장면을 확대해 봤다. 검은 형체는 여전했지만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모자를 쓴 사람이 분명하다는 거였다. 범인이 틀림없었다!
우리는 그 모자 쓴 사람을 추적했다. 그가 지나간 길을 살펴봤다. 좁은 골목에서 대로변으로 나올만한 길목을 전부 찾아봤다. 그러자 딱 세 군데 정도로 좁혀졌다. 모두 하나씩 가보기로 했다.
첫 번째 선택한 길을 가보니 편의점이 보였다. 입구에 CCTV까지. 만약 범인이 이곳을 지나쳤다면 영상에 남았을 게 분명했다.
선배가 확인하겠다며 편의점에 들어갔다. 형사들이 우르르 편의점을 들어갈 필요는 없었으니까.
편의점 앞에서 기다린 지 3분 정도 지났을까, 선배가 나왔다. 바로 나온 걸 보니 알아낸 것이 없나 보다. 살짝 실망감이 들었다. 남은 두 곳을 가려고 할 때였다.
“핸드폰으로 영상 보냈으니까 한번 볼래?" 선배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 그놈 여기에 제대로 나왔다!"
우린 각자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봤다. 범행 직후에 편의점 앞을 지나가는 한 남자가 보였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모자와 옷 모두 검은색이었다. 수사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는 다세대 주택을 떠나 옆 동네로 갔다. 그리고 또 옆 동네로 갔다. 이미 두 지역을 넘어간 것이다. 그것도 걸어서. 보통 버스나 택시를 타고 도망가는데 그의 행적은 기묘했다. 무작정 걷기만 했다.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패턴도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골목을 통해 직진만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모습이 그만의 수법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싫어하는 절도범 중 하나가 '뚜벅이'다. 뚜벅이란 차도 타지 않고 걷기만 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이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당최 끝을 알 수가 없었다.
이 뚜벅이는 범행 현장부터 무려 세 개 동을 – 버스 정류장 7곳이 넘는 거리 - 걸어서 이동했다.
오후 4시가 돼서야 그 끝을 보게 되었다. 그가 빌라 단지 쪽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 이곳이 또 다른 범행 장소가 아니라면 그가 사는 집이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 많은 빌라 중 그가 들어간 건물을 찾을 수가 없었다. CCTV라는 게 우리가 원하는 방향을 비추는 건 아니다 보니. 대한민국에서 사람 하나 찾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이젠 모두 지쳐서 기진맥진했다. 팀장이 커피를 사준다고 했는데 별로 먹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범인 찾는 게 이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강력팀에 오지 않았을 터인데. 나의 선택에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 목요일에 이어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