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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 무장 경찰 Feb 08. 2024

8월의 어린 망자

한여름의 어린 망자

  

지금 생각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었어요······”
 

형사팀 사무실에서 조사하던 여성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녀는 한여름인데도 오한을 느꼈는지 양팔을 손으로 몇 번이고 쓸어내렸다.


나는 뜨거운 믹스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이제 괜찮으니까, 진정하세요. 천천히 말해도 좋습니다.”


그러고 나서 모니터에 진술 조서를 – 수사 기관에서 조사를 위해 문답 형식으로 작성하는 서류 – 띄웠다.
 





30대 후반인 이 여성은 평범한 회사 경리였다. 평소 경찰서는 온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형사 앞이라 긴장한 건지, 못 볼 걸 본 것이 충격이었는지, 아직도 진정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녀를 진정시켜 보려는 내 의도와는 달리 당사자는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당시 현장 상황은 어땠나요?” 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아. 너무 무서웠어요······ 형사님. 제가 본 건 말이죠······”





여성은 회사에서 경리 업무 말고도 직원들의 출퇴근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어제 직원 한 명이 회사에 나오질 않았다. 평소 지각 한번 하지 않은 사람이라 다들 의외의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그는 6살 남자아이와 단둘이 사는 아빠이기도 했다. 그런 성실한 사람이 오질 않자, 걱정돼서 전화를 걸어 보았다. 하지만 신호음만 들려올 뿐,  받지 않았다.


남자는 다음 날에도 결근했다. 아무런 통보조차 없었다. 그가 빠지자, 생산 작업에도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병가나 휴가를 냈을 테지만, 그는 연락도 없고 받지 않았다.


결국 공장장 지시로 이 여성이 남자의 집에 가보기로 했다. 마침 남자와 가까운 곳에 살기도 했고, 개인적인 친분도 있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아파트 1층.


남자의 집 앞에서 여성은 초인종을 눌러보았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번엔 문을 두드려봤다.


성훈 아빠. 안에 있어?”


굳게 닫힌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8월의 무더운 날씨에 남의 집 문 앞에 서 있자니 여성은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마와 목덜미에는 땀이 송글 송글 맺히다 이젠 흐르기까지 했다.


집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돌아설 때였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문에 귀를 대고는 신경을 집중했다.


“아······ 성훈아······ 어떻게 하니······”


성훈 아빠의 목소리였다. 우는 소리처럼 들렸다.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 여성은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성훈 아빠! 안에 있지? 문 좀 열어봐! 무슨 일 있어?”


그녀의 노력에 보답한 건지, 드디어 문이 열렸다. 성훈 아빠가 나왔다. 그는 후질근한 나시티와 반바지 차림이었다. 머리는 부스스했고, 얼굴은 여전히 울상이었다.


11시가 넘었는데 여태 집에 있으면 어떻게 해?”

 

여성은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러나 성훈 아빠는 말없이 거실로 들어가 소파에 푹 주저앉았다. 그러곤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기만 하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응? 성훈 아빠!”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성훈 아빠가 답답했다. 그러다 혼자서 집안을 휘 둘러보았다.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소주병과 이름 모를 흰색 약통이 있었다.


“아이고. 술 마신 거야?” 그녀는 잔소리 하면서 계속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문득 한 곳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성훈 아빠. 그거 뭐야? 혹시 피야?”


남자의 왼쪽 손목에 묻은 붉은 색 액체를 보고 만 것이다.


그러고 보니 붉은 색 액체는 소파와 탁자 위에도 있었다. 탁자에는 눈에 띄는 게 또 하나 있었는데 날카로운 쇠붙이 같은 거였다. 그것에도 붉은 액체가 묻어 있었다. 성훈 아빠 손목에 묻은 것과 같은 것이 분명했다.


여성이 본 날카로운 건 과도였다.


순간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힌 여성은 머뭇거렸지만, 이내 용기 내서 말했다. 사실 남자보다는 6살 성훈이가 보이지 않아 걱정됐기 때문이다. 


“성훈이는? 성훈이는 어디 있어? 유치원 갔어?”


“······”


여성은 성훈이 방문을 활짝 열었다.


“유치원 가방도 그대로 있잖아.”


말없이 우는 남자를 보자불길한 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계속해서 그녀는 화장실을 보고, 베란다까지 가 보았다. 하지만 성훈이는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안방 앞에 섰다. 방문은 반쯤 열려 있었는데 그 틈으로 침대 모서리가 보였다. 여성은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아니 굳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성훈 아빠······


성훈이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녀는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린 것이다. 


방 안에 더블 사이즈 침대가 보였다. 그 위에는 정리되지 않은 너저분한 이불이 있었다. 그리고 이불 속에서 뭔가 삐져 나온 게 보였다. 길고 자그마한 무언가가.


자세히 노려보니 더욱 또렷해졌다. 그건 사람의 다리였던 것이다.

성인의 다리는 아니었다. 그녀는 다리만 보고도 그게 성훈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가냘픈 다리의 주인공은 바로 6살 성훈이었다. 8월의 한여름, 가엾은 어린 망자였다.





나는 아이가 심정지로 사망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갔다. 문 앞에서 먼저 도착했던 소방관이 나오는 게 보였다. 그에게 상황을 묻자,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이미 사망했어요”라며 그곳을 떠났다.


거실 소파에 성훈 아빠가 고개를 숙인 채 아이 이름만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아까 그 소방관이 상처를 치료했는지 왼팔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피가 뭍은 칼과 식탁에 있던 소주병, 그리고 알약 통이 내 눈에 비쳤다. 나는 조심스레 안방으로 갔다. 마침 먼저 온 과학수사팀이 감식하고 있었다.


“죽은 지 좀 됐네······”


과학수사팀 직원이 말했다. 비록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안타까운 표정이 드러났다. 6살 아이는 이미 차갑게 굳어 있었다.


나는 아이의 부친, 성훈 아빠에게 물었다. 아이가 사망한 이유에 대해서. 그러나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가끔 입을 열 때면 “성훈아!” 하고 아이 이름만 부를 뿐이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형사팀이었던 나는 성훈 아빠의 동료, 이 사건을 처음 발견하고 신고했던 경리 직원을 참고인으로 조사하기로 했다. 성훈 아빠는 강력팀에서 조사하기로 했다.





“현장을 보니까. 과도와 알약이 있었는데, 혹시 보셨나요?”


“예. 당연히 봤죠. 제가 성훈이 보고 놀라서 주저앉았을 때였어요.” 그녀는 다시 두 팔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성훈 아빠가 갑자기 칼로 손목을 긋고 있는 거예요! 너무 놀라서. 제가 말렸죠.”


“본인이 직접 신고했나요?”


“성훈 아빠를 말리고는, 순간 더는 집에 있기가 싫어졌어요. 소름 끼쳐서······ 바로 그곳을 나왔어요. 그리고 신고한 거죠.”


여성은 떨리는 손으로 커피가 들은 종이컵을 입게 갖다 댔다. 그러고 나서 “이거 어떻게 되는 건가요? 설마 성훈 아빠가······ 아니죠?”


“음. 그건 조사를 더 해봐야 해요.” 나는 그녀에게 비교적 형식적인 대답을 했다.


6살 어린 망자는 어째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걸까. 대체 언제, 누구에 의해 싸늘한 주검이 돼버린 걸까.




성훈이에 대한 사건은 수사가 진행되며 그 진실이 하나하나 드러나게 되었다. 초임 형사였던 내게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경찰인 나도 놀랄 만한 일을 경리 직원인 여성은 얼마나 놀랐을지, 그 심정을 사뭇 이해할 수 있었다.
 


성훈 아빠는 몇 년 전 아내와 이혼했다. 엄마 없이 아들을 키우며 살아왔다. 주변 지인들 보기엔 성실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었을테지만, 속으론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문드러졌을지 모르겠다.



어느 날 그는 세상을 떠나고 싶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깊은 괴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우울증이었다.


결국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수십 알이나 되는 수면제까지 준비했다. 맨정신에 죽는 건 두려웠는지 소주 몇 병도 샀다.

아들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목욕도 했다. 먼저 아들을 깨끗하게 씻기고, 자신도 씻었다.


이상한 건 그날따라 성훈이의 입에서 "엄마가 보고 싶다"고 했다는 거였다. 아들의 말이 그가 더욱 극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아이를 먼저 웠다. 침대에서 곤히 자는 아이를 두고 준비해둔 수면제를 소주와 함께 꿀꺽 삼켜버렸다. 그러고 나서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는 계획대로 아이를 먼저 살해했다. 버둥거리는 아이가 축 늘어진 것을 보고 나서야 자신도 그 옆에 누웠다. 그리고 잠을 청했다. 자신도 곧 아이가 있는 곳에 갈 거라는 기대감을 품고서.


그러나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남자는 눈을 떴고, 옆에는 차갑게 죽어 있는 아이만 보였을 뿐이었다. 수면제가 약했던 건지, 그의 목숨이 질긴 건지 기어코 눈을 뜨고야 말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다급하게 주방에서 과도를 꺼내왔다. 거실 쇼파에 앉아 칼을 왼쪽 손목에 갖다 댔다. 동맥을 끊으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붉은 선혈과 칼날이 피부를 베는 고통만 느낀 채 그는 죽지 못했다. 아니 죽기 싫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같다. 차마 손목에 큰 상처 내는 게 어려웠던 거였다. 


아이는 그자리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가엾은 아들을 살해한 무정한 아빠는 구속됐다.


일가족 자살 사건이나, 부모가 자식을 살해한 후 따라서 죽는 일은 우리에게 더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뉴스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초임 형사였던 내게는 다소 충격적인 – 처음 경험했기에 –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자신이 왜 죽음에 이르게 된 건지 아이는 알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침대에 누운 아이 옆에는 베개가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사인은 질식사였다.


그렇게 6살 아이는 무더운 여름, 8월의 어린 망자가 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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