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이. 갑자기 밀려오는 허무함.
사람이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통사고 이후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로 생과사를 오갔고,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외상이 없다는 것에도 감사하다고 생각한 지가 엊그제 일이다.
시간은 왜 이리 빨리 지나가는 건지 벌써 사고난지가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일상생활이 불편하다 보니 슬슬 답답하고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예전엔 미처 몰랐다. 시간은 항상 내 곁에 있는 거고 언제든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근데 나이를 먹으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칠십 살은 시간이 70k로, 팔십 살이 넘으면 80k로 달린다는 이야기를 흘려 들었는데 남의 일이 아니지 싶다. 붙잡을 수 있다면 붙들고 싶다.
온통 빨갛고 노랗게 꽃으로 덮여있던 바깥 풍경은 이제 파릇파릇 연초록으로 물들어 있다. 아침 햇살에 비친 나뭇잎들은 물방울을 적셔놓은 듯 싱그럽고, 텃밭에 초록초록 올라오는 새싹들을 들여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부자가 되는듯한 이 계절을 나는 너무도 좋아한다. 이 좋은 계절을 창밖만 바라보면서 지내고 있는 게 너무 싫다.
성급한 생각일까? 남은 생을 병마와 싸우며 살고 있을 수도 있고, 이마저도 보지 못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 않았는가!
이 정도로 벌써 힘들어하고 지쳐하며 투정을 부린다는 건 너무 사치 아니냐며, 세상살이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거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달래 본다.
이 나이 되도록 큰 어려움 없이 아픔 없이 잘 살아왔으니 그럼 됐지 않은가! 마음을 편히 갖고 시간이 지나면 통증은 사라질 거란 믿음으로 열심히 치료에 집중해 보자.
몸도 마음도 힘든데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장이 날아왔다. 얼마 전에 부고장을 보고 누른 게 악성 앱에 노출된 일로 고생했던 남편 일이 생각나서 선뜻 누르기가 망설여졌다. 장례식장과 상주 이름까지 확인하고서야 앱을 열어볼 수가 있었다. 부고장마저도 믿고 볼 수가 없는 세상이라니~
참으로 영특하고 마음이 넓은 친구였는데 직장을 그만둔 이후 곧바로 치매 판정을 받았다. 늦게까지 직장생활을 했고 컴퓨터도 잘 다루고 다방면으로 재능 있는 친구였는데 몹쓸 병에 걸려서 오랜 시간 투병생활을 해왔다. 직장생활의 스트레스인지? 결혼생활의 스트레스인지? 본인만이 잘 알 거다.
친구가 세상을 떠나도 몸이 따라주질 않아 조문도 못 가본다며 속상해하셨던 아버지 말씀이 생각난다. 지방까지 다녀오려면 꼬박 하루가 걸릴 텐데 하필 사고 난 이 몸으로 엄두가 나질 않는다.
한편으론 나 자신에게 묻고 싶다. 아프지 않았으면 왕복 하루거리를 다녀왔겠냐고? 이젠 갈수록 모든 일에 자신감이 없고 허무함이 느껴진다. 이번 사고로 인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직까진 내 일이 아니라 생각하며 여유를 부리고 살아온 삶이 한순간에 끝날수도 있겠구나 싶어 조급함이 생긴다. 죽음이란 언젠가는 닦칠 필연적 시간이다. 친구들 입에서 우리가 건강하게 여행 다닐 시간이 앞으로 몇 년 남았을까? 5년, 10년 하며 숫자를 헤아리는 게 너무 싫어서 "그냥 오늘 하루 즐겁게 살자"로 마무리해 보기도 했다.
친구야! 마지막 가는 모습 배웅은 못하지만 명복을 빌께. 아프지 말고 편히 쉬어.
시간이 좀 지나면 친구 남편에게 치매환자 돌보느라 고생 많으셨다고 전화 한 통화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