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와 딸, 애증관계일까?

사람사이. 카페에서 마주한 모습.

by 샤이니


오늘은 비가 많이 쏟아진다.

날씨 탓일까?


병원에서도 카페에서도 엄마와 딸이 언성을 높이는 짜증스러운 말투가 유난히 크게 들리고 귀에 거슬린다.


교통사고 이후 3개월째 후유증으로 이 병원 저 병원을 순례하고 다니는 중에 오늘은 딸과 함께 머리 MRI를 찍으러 병원에 갔다가 목격한 일이다.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은 대부분 몸이 편치 않아 찾아오는 환자들이라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


우리 딸과 연령대가 비슷해 보이는 딸이 보호자로 엄마를 모시고 병원 대기실에서 하는 대화를 듣게 됐다. 엿들은 것도 아니고 한참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인데 "여러분~ 내 소리 좀 들어주세요!" 하는 듯 큰소리로 들린다. 같은 엄마 입장에서 저렇게까지 윽박지르며 큰소리로 엄마를 혼내야만 할까 하는 속상함과 서운함이 앞섰다.


들려오는 대화 내용이다. 매달 꼬박꼬박 내야 하는 전기, 수도, 도시가스 요금 등, 각종 공공요금들이 나라에 내는 세금처럼 느껴져 아까운 마음에 엄마가 푸념을 한다. 그냥 들어주면 안 될까? 아니면 나이 든 엄마가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을 해주면 좋을 텐데 막무가내로 엄마가 다 썼으니까 내라는 거지! 하며 역정을 낸다.


아마도 나이 든 엄마가 똑같은 소릴 몇 번씩 되풀이하니 듣기 싫고 짜증이 났겠구나 이해는 된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커다란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혼내듯 큰소리로 훈계하는 그 딸의 행동은 소음 그 자체만으로도 민폐였다. 어처구니없게도 엄마는 똑같은 말을 나긋나긋 작은 소리로 되돌이표 음계를 노래하듯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큰소리 내는 딸도 미웠지만 그 엄마 또한 답답함 그

자체였다.


잔뜩 긴장감을 안고 들어간 MRI 촬영실. 이어폰을 두 개씩 착용해 주고 큰소리에 놀라지 말라며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커다란 통속으로 밀어 넣는데 왈칵 겁이 나며 숨이 멎는 거 같았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계는 돌아가고 조용히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 사이로 겹쳐진 소음은 생각 이상으로 커서 공사장 한가운데 서있는 기분이다.


20여분 쯤 지나 끝났으니 나가라며 통속에서 해방시켜 준다. 하얗게 질린 얼굴 하며 비틀거리고 나오는 모습을 본 딸은 기겁을 하며 "왜 이래요? 엄마 괜찮아요?" 한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몸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나는 머리가 너무 아픈데 다행히도 검사 결과는 이상이 없단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침부터 검사가 끝난 오후 4시까지 공복상태여서 카페인 수혈을 해줘야 집에까지 이상 없이 도착할 거 같아 카페를 찾았다.


한참을 멍 때리며 앉아서 쉬는데 옆자리에 나이 든 엄마를 모시고 딸이 자리를 잡는다. 오늘은 유난히도 딸과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딸과 동행해서일까? 병원에서 일은 잊어버리고 카페에 엄마를 모시고 온 딸이 다시 보였다. 얼핏 보아도 점잖게 나이 들어가는 어르신 모습과 푸근해 보이는 딸의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았다.


보기 좋은 모습은 여기까지다. 두 모녀간의 대화 내용도 듣고 싶지 않은 내용이다. 엄마들 세대는 무조건 아끼고 절약하며 사느라 여유를 부리고 느슨하게 살아보질 못했다. 그 모든 것들이 습관화되어 익숙하다 보니, 나이가 들고 경제적인 여유가 생겨도 요즘 세대처럼 나 자신을 위해 돈을 쓰질 못한다. 병원에서 모녀간의 대화내용이나 카페에서 모녀 대화도 결국엔 경제적인

이야기다.





스벅에서 카페라테와 카스텔라 한 개를 주문해 온 딸에게 엄마는 이런 데서 먹으면 비싸지 않으냐고 조심스레 물어보는데, 방금 쏘아 올린 화살이 쇠창살을 맞고 튕겨 나온듯한 쨍한 소리로 그런 걱정을 왜 해? 열 배 백배 비싸도 사줄 수 있으니 걱정 말라며 빨리 드세요! 한다. 엄마가 좋아하는 카스텔라잖아!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 마음속으론 심한 욕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비싸도 이 정도는 사드릴 수 있으니 걱정 말고 드세요! 하면 얼마나 보기 좋은 모습일까? 하는 아쉬움과, 아뭇소리 안 하고 드시는 엄마 모습이 한없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 들어줄 마음의 여유도 없었지만, 같은 입장인 우리 딸이 계속 듣는 것도 불편해해서 자리를 떴다.


누구나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