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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맞이 산소 벌초하기.

사람사이. 친구들과 벌초 품앗이

by 샤이니


명절이 돌아오니 산소 벌초하는 게 큰 과제다.


올해 벌초는 우리 차례다. 산림조합에서 벌초대행 신청을 받는다고 연락이 왔다. 간단하게 일정금액을 지불하면 해준다는데 올해는 부모님 산소를 직접 내려가서 벌초하겠다며 예초기까지 사 왔다. 내가 살아서 할 수 있을 때 남의 손 빌리지 않고 부모님 산소 벌초하겠다는데 하지 말라고 말릴 수도 없고,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예초기를 사용하다 사고 날까 걱정스러웠는데 보다 못한 친구 두 분이 같이 해주겠다며 서울에서 내려와 도와주셨다. 본인들 예초기까지 차에 싣고 4시간 운전해 오셨다. 날씨도 더운데 한나절을 세분이서 실랑이를 하며 350평 벌초를 끝내고, 결국 그날밤은 다들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졌다며 이젠 우리도 늙었나 보다고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국가가 인정하는 노인들이면서 아직도 늙음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노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 의리만큼은 표창감이다.

힘은 들었지만 친구분들 덕분에 형제들에게 나이 먹고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 빽이고, 세상 잘 살아왔다는 증거냐며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우리 집안은 4남 2녀인데 2년씩 형제들이 돌아가며 맡아서 산소 벌초하고, 성묘를 위해 산소에서 만날 날짜를 결정해 형제들 모임을 주선한다. 그날 산소에 차례음식을 준비하고, 가족들 점심식사는 근교 맛집을 찾는다. 식사 후 카페까지는 주선자 몫이다. 벌초비용부터 모든 경비는 형제회비에서 지출된다. 부모님 장례를 치르고 남은 부의금이 마중물이 되어 매달 형제들이 회비를 모으다 보니 어느새 목돈이 모였다. 집안 행사의 모든 경조사비는 회비에서 지출하니 서로 부담을 느끼지 않아 좋다.





우리 6남매는 같은 지역에 사는 형제가 한 사람도 없다. 자주 만날 기회가 없다 보니 산소에서 진풍경이 벌어진다. 서로들 가져온 선물을 챙겨 주느라 정신이 없다. 겹치는 물건이 없는 것 또한 신기하다. 어느새 결혼한 조카들까지 합세해 선물보따리를 나누다 보니 집에 와서는 이게 누가준거였지? 하며 주인을 찾게 된다.


부모님이 생존해 계실 때에는 명절마다 6~7시간씩 걸려가며 전국에 흩어져 살던 형제들이 부모님 댁으로 모였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들을 모이게하는 대들보가 안 계신다.


십여 년 전에 90세로 생을 마감하신 아버님은 모든 일을 현실에 맞게 변화를 추구하신 분이셨다. 어머님이 나이가 드셔 음식 준비를 힘들어하시고 멀리 사는 자식들은 나름대로 바쁘다는 이유로 늦게 도착한다. 음식 만들기가 끝나갈 무렵 약속이나 한 듯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면 일을 도와주던 아들 딸이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엄마는 일하지 말라며 손을 끌고 주방에서 탈출시켜 줬다. 신경 써준 자식들이 있어 고맙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항상 가까이 사는 아들 며느리와 어머님만 고생한다며 "차례상이나 제사상을 모두 다과상으로 간소화하셨다" 처음엔 가까이 사시는 아버님 형제분들이 본인들이 음식을 준비하겠다며 서운해하셨지만, 집안의 장손 위력으로 밀어붙이셨다. 끝까지 못 지킬 약속은 하지 마라! 너희도 똑같이 늙어간다.

세월이 흐르니 우리 형님이, 우리 오빠가 세월을 앞서가는 분이라며 좋아들 하셨다. 다들 나이 먹어가는데 몸도 아프고 힘들어 못하겠고, 그렇다고 객지에 살면서 아이들 키우는 며느리들 불러다 일을 시킬 수도 없는데 선견지명이 있으셨다며 입을 모아 칭찬이셨다.


아버님이 선구자 역할을 하신덕에 나이 먹어가며 아버님 며느리인 나도, 또 우리 며느리도 명절 증후군은 겪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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