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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눈 내리면 생각나는 한 사람.

사람사이. 잡채 만드는 날.

by 샤이니


12월 4일 목요일 밤, 올겨울 첫눈이 내렸다.


12월 5일은 지금은 계시지 않는 시아버님 생신날이다. 결혼 후 빼먹지 않고 참석했던 연중행사였다. 지방에 계시는 관계로 부모님 댁에 하루 전날 내려가야 한다. 직장과 학교 때문에 생신날이 주중인 경우에는 따로 날을 받아서 주말에 형제들이 다 모였다.


수능시험날에는 꼭 날씨가 추워서 수험생들을 힘들게 한 것처럼, 아버님 생신도 날짜를 바꿔봐도 변함없이 궂은 날씨다. 출발할 때는 그래도 괜찮나 싶은데 충청도부터 전라북도까지 눈은 왜 그리 앞이 안 보이게 쏟아지는지,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바깥 풍경은 설경이 장관이지만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아이들까지 한 차로 이동하다 보니 오늘의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하는 게 큰 목표다. 강원도에서, 서울에서 참 오랜 시간 장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다녔다. 그때는 힘들고 불편한 시간들이었지만 이제는 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다.


힘들게 안 와도 되는데 뭐 하러 그 먼 길을 오느냐며 역정도 내셨지만 아들 손주 바라보시는 그 눈빛은 잊을 수가 없다. 그 어떤 말보다 끌어안고 어루만져 주시는 손길에서 모든 피곤과 힘듦은 사르르 녹아내린다.


오지 마라 하셔 놓고 이렇게 좋아하시잖아요? 하면 너희들 힘들까 봐 오지 말란 거지 오면이야 열 번이고 고맙지 하신다. 당신들 속 마음은 눌러 담으시고 오로지 자식들 걱정이신 게 우리네 부모님들이시다.


모처럼 모이면 그동안 못 해 드린 음식들로 상다리가 휘어지게 진수성찬을 차렸다. 지금이야 외식문화가 자리를 잡았지만 그땐 당연하게 집에서 상을 차렸다. 그중 아버님이 제일 좋아하신 음식은 잡채였다. 뵐 때마다 빼먹지 않고 만들어 드리면 큰 접시에 담아드린 잡채 그릇을 앞으로 당겨놓고 소주 한잔에 혼자 다 드신다. 남은 건 놔둬라 나중에 먹게! 우리 둘째가 만든 잡채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며 칭찬도 아끼지 않으셨다.


그 옛날 40대 중반에 위암 수술로 위를 3분의 2 절개수술을 받으시고 10년 동안 절주와 운동으로 완치 판결을 받으신 날 소주 한잔을 드셨다는데, 그날 이후 기분 좋고 안주 좋으면 반주로 소주 한잔을 곁들이셨다. 다른 음식은 소식과 절제를 철저히 하시는데, 90이 되셔도 소화 능력이 좋으신지 잡채만큼은 욕심을 내셨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힘들었지만 그때를 떠올리다 보니 아버님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가에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러내린다. 나이 드니 눈물도 많아지는지 가족들이 보면 주책이다 할까 싶어 얼른 눈물을 훔쳤다. 당신이 좋아하셔서 아들 소개팅을 주선해 주시고 며느리까지 삼으신 탓인지 네 명이나 되는 며느리 중 유난히도 예뻐해 주셨다. 가끔은 뵙고 싶은 그리운 아버님.


12월 5일 아버님 생신날. 같이 드시진 못하지만 오늘은 아버님 생각하며 잡채를 만들어 먹어 보고 싶다.





잡채 만들기.(부추잡채)

1) 당면을 찬물에 30분 정도 담근 뒤 끓는 물에 삶아준 후 물기를 빼주고, 바로 참기름과 간장을 섞어 주면 서로 엉겨 붙지 않는다.

2) 냉장고에 있는 자투리 야채들을 사용. 양파. 당근. 버섯. 대파, 시금치 없으면 부추.

3) 고기와 모든 야채를. 간장, 마늘. 후추를 넣어주면서 볶아준다

4) 삶은 당면과 볶아놓은 야채를 버무려주며 올리고당, 참기름, 참깨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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