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광팬 아내
"홈런~~"
"오~ 오! 오.. 그렇지! 좋아 좋아!"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소리소리 지르며 손뼉 치고 난리 부르스를 떨던 아내의 목소리가 요즘 조용하다.
스포츠 시청을 좋아하는 아내는 유독이 야구에 거의 미치다시피 했었는데 3년 전인가부터 잠잠해지더니 요즘은 축구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일요일밤에 하는 '뭉쳐야 산다'라는 프로를 열열이 시청하고 있다
아내 덕분에 큰딸까지 덩달아 그 시간만 되면 "아이고~ 와, 슛! 슛!", 둘이서 신났다
아내가 좋아하는 두산 야구팀이 성적을 못 내고 있을 뿐 아니라
"아니 좋은 선수는 모두 팔아넘기고 감독까지 초보를 들여 이모양이야"하고 탄식을 할 지경이다.
"빨리 감독을 교체해야 돼"
성적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하위권을 몇 년째 맴돌고 있으니 아내로서는 맥이 빠진듯하다
난 두산의 성적이 안 좋아 힘이 빠진 아내를 놀리는 재미가 있어 "아이고 오늘 또 졌어?" 하면 "시끄러워, 저리 가!"하고 화를 낸다.
내가 응원하는 대전팀인 한화는 만년 꼴찌팀이지만 난 무덤덤하다 반체념이라고 봐야겠지만 올해는 개과천선했는지 초반의 역시나 했던 것을 넘어서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난 배구로 유명한 인창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잠실야구장 바로 옆에 있던 잠실 학생체육관에 배구 응원을 갔던 적은 있었고 대학 때는 우리 학교의 야구경기를 응원하러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야구장에 몇 번 갔었던 기억은 있다
1982년인가 프로야구가 출범한 후 롯데의 열열한 팬이었고 최동원이라는 불세출의 야구 영웅을 매우 좋아했지만 프로야구 경기를 보러 간 것은 결혼 후가 처음이었다
아내는 서울 출신이라 그런지 결혼 전부터 두산 야구팀의 광팬이었고 아내 덕분에 신혼 때는 잠실 야구장을 몇 번 갔었다
넓은 운동장을 덮은 잔디의 푸르름과 파란 하늘 아래서 관중들의 응원이 하나 되고, 경기보다 응원하는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으며 치어리더까지 신바람을 돋우니, "아 이래서 사람들이 야구장에 가는구나"라고 감탄했었다
아내의 야구에 대한 지식이나 경기를 보는 관점이 나와는 정말 다르다
난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의 장점이나 승부를 위한 특별한 작전이나 특히 투수의 구질과 타자의 스윙과 같은 전문 지식은 전무한데 아내는 준 전문가 수준의 경지에 오른 것 같다
"재는 보는 눈을 한참 더 길러야 돼, 아이고 참 나원 배트가 그렇게 느리면 번트나 대던가"
"와 쟤는 힘이 많이 좋아졌네, 낙차 봐라 떨어지는 각도가 엄청나네"등 혼자 중얼중얼거리면서 정신 못 차린다.
혼자 소리 지르며 손뼉 치고 미쳐가는 것같이 보일 때는 짜증이 날 때도 있었지만,
"그래, 그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어라"라고 체념해 버리곤 나는 노트북을 끼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음악과 함께 살았다.
야구 시즌만 되면..
대전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지가 25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두산 팬이다
난 대전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대전 연고의 한화이글스로 갈아탔다
긴 겨울을 지나며 봄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 '아 야구 시즌이 오는구나'라고 알 수 있다
지난해에는 기가 많이 죽은 아내를 위해 두 딸이 두산과 한화의 경기를 예매하여 직관하러 갔었다
작은 딸은 야구에 큰 관심이 없어 치맥에 집중하고 아내와 큰 딸은 둘이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손가락으로 선수들을 가리키며 열심히 대화하며 응원에 열심이었다
난 가족과 함께 오랜만의 동행에 만족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그날은 다행히도 아내의 팀인 두산의 승리로 끝나 두 딸의 응원 보람이 있었다
은퇴를 했건 현역 선수든 프로야구 선수들의 사고로 사회적인 문제가 가끔 터져 나오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
"돈을 너무 많이 줘서 그래"라고 말한다
"아니 축구 선수들 봐봐, 얼마나 힘들게 운동을 하는데 야구는 축구에 비하면 거저먹는 거지"
"야구는 지능게임이고 축구는 막무가내로 뛰는 운동인지 알았는데 와~ 축구란 게 보통이 아냐"
하고 말하는 요즘의 아내 속내에 의미 심장함이 있다
특히 올해는 아내가 야구에 흥미를 점점 잃어 가는 모습을 보니 약간은 안타깝기도 하고 옆에 가서 놀리기도 어렵고 측은해 보인다
두산이 최고 중위권 이상으로 올라와 아내의 심기가 좀 풀어지기를 바란다
요즘 한화는 1~2위를 달리고 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