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전문가 입장에서 쓸데없는 생각?
‘태평성대(太平聖代)’란, 조선의 세종대왕과 성종 시기처럼 나라가 평화롭고 정치적으로 안정되며, 백성들이 풍요롭고 문화와 경제가 번창했던 시기를 일컫는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의 상황은 그와 거리가 멀다.
정치적으로는 이념 대립과 정치 불신, 극단적인 진영 싸움으로 인해 국민 통합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세대 간 양극화, 부동산 문제, 취업난, 비정규직 문제 등 복합적인 갈등이 누적되고 있으며, 사회 전반에 만연한 피로감은 국민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국제 정세 또한 불안하다. 북한의 핵 위협,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외교적 줄타기, 기후 위기로 인한 에너지 문제와 미세먼지 등 환경적 요인까지, 우리를 둘러싼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지금이 과연 ‘태평성대’라 할 수 있을까?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구조적 문제와 긴장이 여전하고, 많은 국민이 불안과 불만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다만, 전쟁에 한해서만은 ‘태평성대’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내가 태어난 이후로 북한과의 소규모 국지적 분쟁은 있었지만, 6.25 전쟁과 같은 전면전은 겪은 적이 없다. 국외 파병이나 국제 분쟁에 간접적으로 참여한 적은 있어도, 우리나라가 직접적으로 전쟁에 휘말린 경험은 거의 없었다.
어려서 반공 교육을 받으면 자라면서 전쟁의 공포도 느끼긴 했으나 커가면서 무감각해져 버렸다
나 스스로도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삶을 돌아보면 나는 태평성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국제 정세를 보면, ‘전쟁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생각이 점점 현실로 다가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예멘 후티 반군의 무력 도발.
불안한 중동 지역의 정세에 이스라엘과 이란의 일촉즉발의 순간 앞에 서있다.
중국은 남중국해를 사실상 점령하며 ‘하나의 중국’이라는 명분 아래 대만 침공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고,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서도 핵을 보유한 국가 간의 충돌이 실제로 발생했다.
서유럽 국가들 역시 러시아의 팽창주의에 대비해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 각국은 전략적 방어 태세를 강화하며 불안한 평화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의 핵 개발은 이미 현실이 되었고, 잦은 도발과 협박성 발언은 일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군비 확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고, 안보는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갈등의 불씨가 타오르는 지금, 전쟁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가능성은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다. 각국이 자국의 안보를 위해 전쟁 준비에 돌입한 지금의 국제 정세는, 말 그대로 전운이 감도는 시대다.
지구상에서 이미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다양한 원인이 있었지만, 산업혁명이 전쟁에 끼친 영향은 절대 간과할 수 없다.
산업혁명은 단순히 공장과 기계의 발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술 발전으로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증대되면서 국가의 군사력과 전쟁 방식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총기, 대포, 군함, 철도, 탱크, 기관총 등 새로운 무기 체계는 산업 기술의 산물이며, 전쟁을 보다 장기화하고 치명적으로 만들었다. 군수 물자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며 전쟁은 이제 단기간의 충돌이 아닌, 국가 전체를 동원하는 ‘총력전’으로 변모했다.
뿐만 아니라 산업혁명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쟁탈전을 가속화했다. 각국은 자원과 시장 확보를 국가 생존의 핵심 과제로 여기게 되었고, 이는 곧 해외 식민지 확장으로 이어졌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은 자국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전 세계로 진출했고, 이러한 식민지 경쟁은 제1차 세계대전의 근본 배경이 되었다.
산업화는 또한 국가 간 격차를 심화시켰다. 기술력을 가진 국가들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국제 질서를 주도하며, 세계는 더욱 불균형한 상태로 고착되었다. 이 불균형은 지금까지도 갈등과 충돌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쟁은 반드시 일어난다.
과거 산업혁명이 전쟁을 촉발시킨 것처럼, 오늘날의 기술 발전 또한 전쟁의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들은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며 국제 질서를 흔들고 있고, 이에 맞서는 미국과 서방 세계는 군사동맹과 군비 확장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대결 구도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히 미국과 중국 간의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대한민국은 생존과 국익을 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될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단지 외교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 국가의 존립을 결정짓는 중대한 문제다.
과연 한국 사회는 '태평성대'라는 인식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낙관은 역설적으로, 전쟁을 막기 위한 치열한 고민과 대비를 방심하게 만든다. 지금의 평화는 단단한 기반 위에 놓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전쟁 중에 있다. 단지 휴전 상태일 뿐이다.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얇은 유리판처럼 언제든 금이 갈 수 있는 불안정한 평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안보에 대한 무심함, 반복되는 경고에 대한 무감각 속에서 ‘태평성대’의 환상에 빠져 있다. 전쟁은 먼 나라의 이야기이고, 우리는 여전히 안전하다는 믿음이 암암리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눈앞의 현실은 그 믿음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없음을 경고하고 있다.
전쟁은 단순히 군사력의 충돌로만 시작되지 않는다. 경제, 외교, 기술, 가치관의 충돌이 축적되고,
그것이 외교적 수단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 가장 원시적인 방법인 무력 충돌로 이어질 뿐이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니라, 지켜내야 할 '가치'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의 기술 발전이 전쟁의 양상에 미칠 영향은 산업혁명보다 더 클까?
그렇다. 산업혁명이 전쟁을 '총력전' 시대로 바꾸었다면, 21세기 기술 혁명은 전쟁의 양상을 '전면적 비대칭 전'으로 바꾸고 있다.
기술은 지금도 전장을 변화시키고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국제정세의 국지전에서 드러났듯이
드론과 인공지능은 적의 지휘 체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으며, 사이버 공격은 국경 없이 국가의 핵심 인프라를 마비시킨다.
게다가 AI와 정밀 유도 무기, 극초음속 미사일은 이제 기존의 ‘억제력’이라는 개념 자체를 흔들고 있다.
핵무기만으로는 억제할 수 없는 기술 기반이 새로운 위협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전쟁을 단순히 ‘무기 대 무기’가 아닌, ‘데이터 대 시스템’, ‘의지 대 인식’의 차원으로 옮기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러한 전쟁은 이미 '발생 중'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도 수많은 사이버 공격, 정보 조작, 심리전을 실시간으로 경험하고 있다. 전통적인 전쟁은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미중 갈등 속에서 나아가야 할 가장 현명한 길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으로 가장 복잡한 분기점에 놓인 나라다. 미국은 우리의 전통적 안보 동맹이자 가치 동맹이고, 중국은 가장 큰 경제 파트너이며 지역 강국이다.
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의 선택은 언제나 전략적 균형이라는 이름 아래 고심 끝에 이루어져야 했다.
그 해법은 ‘능동적 다자 외교’를 통한 ‘전략적 유연성’ 확보에 있다.
단순히 두 국가 사이에서 줄타기하거나 중립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외교력을 통해 우리의 입지를 넓히고 다양한 협력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아무리 유연한 외교를 펼치더라도, 어느 한쪽을 명확히 선택해야만 하는 시점이 올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갈등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균형 외교'는 실효성을 잃고, 생존과 정체성의 선택 앞에 설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날이 온다면, 우리는 단지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우리의 가치, 체제, 지향하는 미래상에 기반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과 법치를 중심으로 한 보편적 가치를 지키고자 한다면,
결국 우리는 자유 진영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단기적으로 어려움을 따르더라도, 장기적으로 우리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자유를 지키는 길이라면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 없다.
이러한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지도자는 철저히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국민들은 냉철한 판단과 의지를 가진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그 가능성을 냉정히 인식하고 준비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생존 전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