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송정해변 소나무숲길
동해 바다에 조성된 해파랑길은 오륙도 해맞이공원부터 시작해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의 해변길, 숲길, 마을 길 등 총 50코스, 750km로 짙푸른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도록 조성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보코스 중 하나이다.
나는 수십 년 전 청년시절, 부산, 울산을 거쳐 지금은 지명이 없어진 묵호항까지 걸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지금처럼 아스팔트로 포장된 곳은 드물어 흙길이 많았고, 곳곳마다 동해안 철조망과 초소가 끝없이 이어져 다소 삭막한 분위기였다. 묵호까지 가는데 총을 든 군인들에게 무려 11차례 검문을 받았다. 어떤 곳은 초소로 끌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현지 주민의 신고로 군인들이 걷고 있는 나를 불시에 검문하는 일도 벌어졌다. 웬 청년이 혼자 바닷가를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당시 국시의 제일의가 반공이었던 때, 간첩으로 의심 날 법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검문을 할 법한 곳은 일부러 버스를 탔다. 그러나 버스 안에서도 검문은 이어졌다. 경치 좋은 해변을 걷다가도 버스가 지나가면 흙먼지가 일어 걷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은 해변을 가로막고 있던 철조망담이 대부분 철거되었고 검문소는 철거되었거나 비어 있다. 당시와 지금은 너무나 다르다. 그때는 해파랑길이라는 이름도 없었고 지금처럼 잘 만들어진 전국 도보전용길도 없었다. 당시에는 핸드폰도 없었고 카메라 살 돈도 없어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다. 길을 잘 못 들면 지도를 보거나 사람들에게 물어 길을 찾고는 했다.
2000년대 들어 한국에 도보열풍이 불었다. 지자체는 경쟁적으로 도보길을 만들어 이름을 짓고 각종 인터넷매체, SNS, 소책자 등에 소개하기에 바빴다.
해파랑길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한반도 전국토는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되었고, 잘 준비된 예쁘고 멋진 뷰가 보이는 도보길은 넘쳐난다. 길을 찾기 위해 지도를 들고 다닐 필요도 없다. 두루누비앱이나 네이버 길 찾기 등으로 가면 된다. 젊은이들과 요즘 도보길을 걷고 있는 분들은 우리 1세대, 2세대 근대화, 현대화를 이룬 우리 부모세대와 선배세대에게 감사해야 한다. 나는 검문을 받을 때마다 '아, 이길 두 번 다시 못 가겠네'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때 당시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천지개벽 정도의 차이가 난다.
해파랑길 39~ 40길은 힘든 곳 없는 평지다. 곳곳마다 먹을 곳, 잘 가꾸어진 해변과 관광지가 있다.
강철 타워 파이프 지붕으로 지어진 솔바람다리를 시작으로 자전거 와이어와 집라인을 볼 수 있는 남항진 타워, 아무 곳이나 들러도 동해안 푸른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안목해변의 커피거리, 남항진 어촌식당의 간자미무침과 막걸리 한잔을 걸치면 송정해변의 소나무 숲길이 나온다.
송정해변 소나무숲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다. 국유림과 사유림이 섞여 있으나 아직 보존이 잘되어 있다. 송정해변 소나무숲길은 우리나라 3대 소나무숲길 중 하나이다. 송정해수욕장은 붐비지 않아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가족들이 찾는 곳이다.
나는 바닷가 한적한 벤치에 앉아 명상을 한다.
눈을 뜨니 나이 드신 한분이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연유를 물어보니 동네 주민으로, "우리가 숲길을 가꿔야지요."라고 말한다. 이곳은 국유림 사이에 사유림이 몇 군데 섞어 있다. 얼마 전에는 사유림 주인이 소나무숲을 밀어내고 건물을 지으려다가 주민들의 서명, 호소문, 반대집회 등으로 취소가 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 길을 걷다가 서울에서 살다 이 길이 좋아 이사해 살고 있는 40대 한 분을 만났다. 눈이 초롱초롱하고 입가에 미소가 있어 여유로워 보였다.
신라호텔의 이부진 씨가 송정해변 근처에 호텔을 지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호텔을 처음 본 25년 07월 31일이 오픈일이었다. 추측건대 동해바다와 송정소나무숲길을 보고 이곳을 택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정문뒤의 호텔 좌측으로 콘도식 건물 2개가 보였다. 이 건물도 신라호텔 측이 지은 것이다.
재벌들이 자연을 소유물로 삼아 설마 해변가 사유지를 구매해 건물을 짓지는 않겠지- 나는 쓸데없는 상상이라며 고개를 젓는다. 수십 명 이상의 직장자리와 협력업체 등으로 강릉의 경제에 보탬이 되리라 본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인근의 소나무숲의 보전이다. 아름다운 이곳이 아파트숲이 되지 않기만을 바란다. 새로 이곳에 사업을 확장한 신라호텔 측이 이 아름다운 송정해변 소나무숲을 보전하기 위해 힘 써주기를 바랄 뿐이다.
埏埴以爲器(연식이위기) :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
當其無(당기무) : 그 가운데 아무것도 없음 때문에
有器之用(유기지용) : 그릇은 쓸모가 있다.
-노자
뉴욕의 맨해튼이 도시화로 인구가 팽창할 때 시인이던 윌리엄 브라이언트가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없다면 100년 후 똑같은 크기의 정신병원이 생길 것”이라며 대규모 숲 조성을 주장했다.
뉴욕시는 도시 한가운 데에 460만㎥의 돌과 흙, 7개의 호수, 36개의 다리를 수작업으로 공원을 완성했다.
여의도공원 15배 크기의 뉴욕 센트럴파크는 년 3700만 명이 방문하는 뉴욕 대표랜드마크가 되었다.
우주는 비움의 원리로 지어졌다. 원자와 주위를 도는 전자의 거리는 예를 들면 잠실종합운동장 한가운 데 놓인 사과와 종합운동장 끝의 거리 정도다. 전자는 그 거리만큼 떨어져 원자를 돌고 있다. 원자와 전자 사이는 엄청나게 텅 비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우주도 마찬가지다. 별들 사이사이에 어머어마한 빈 공간이 있다.
뉴욕시에 센트럴파크가 없었다면 50년도 안되어 똑같은 크기의 정신병원은 물론 날마다 도시와 도시 사이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각자 저마다의 밀실과 광장이 필요하다. 가장 가까운 부부, 부모와 자식, 사회는 말할 것도 없다. 우주가 존재하기 위해서 빈 공간이 필요하듯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로서로에게 밀실을 지어주고 쉬게 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를 위해 잘 돌고 또 돈다. 그리고 싱싱하게 광장에서 언제든 만나면 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그렇다.
송정해변소나무숲이 이에 해당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송정해변소나무숲 주변에 사는 이들은 이 숲 때문에 생명의 활력을 찾는다.
아치형 현수교 강문솟대다리, 강문해변을 지나 경포호수에 이른다.
본래 경포호는 바다와 이어진 만(灣)이었으나, 오랜 세월에 걸쳐 파도와 해류가 밀어 올린 모래가 쌓여 만의 입구를 막으면서 바다와 분리된 석호(潟湖)가 되었다. '거울처럼 맑은 호수'라는 뜻의 경포호(鏡浦湖)에는 탄생설화가 있다.
아주 먼 옛날, 지금의 경포호 자리에는 인색하고 욕심 많은 부자가 살았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시주를 청하러 부잣집에 들렀으나, 부자는 쇠똥을 퍼주며 스님을 내쫓았다. 이를 본 며느리가 몰래 쌀을 퍼다 주며 용서를 구하자, 스님은 "곧 큰 변고가 있을 것이니, 나를 따라오되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라고 일렀다. 며느리가 스님을 따라 고개를 넘던 중, 자신의 집 쪽에서 들려오는 천둥 같은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 순간, 부자의 집은 땅으로 꺼져 거대한 호수가 되었고, 며느리는 그 자리에서 돌(망부석)이 되었다.
경포호가 내려다보이는 경포대에는 고려 시대 강릉 안렴사(오늘날의 도지사) 박신(朴信)과 강릉 기생 홍장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진다. 박신이 임기를 마치고 떠나게 되자, 그를 흠모하던 홍장은 상사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된다. 이후 강원 관찰사로 부임한 박신이 다시 강릉을 찾았을 때, 강릉부사가 그를 위해 경포호에서 뱃놀이를 열었다. 부사는 홍장이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여 박신을 슬픔에 잠기게 한 뒤, 홍장을 신선처럼 꾸며 배에 태워 그들 앞에 나타나게 했다. 죽은 줄만 알았던 홍장을 다시 만난 박신은 크게 기뻐하며 그녀와 재회하였다.
경포호 4km를 걷고 해안 길을 따라 주문진을 향해 걷는다. 경포해변 1.8km 끝 무렵에 링거를 꽂고 있는 소나무들이 보였다. 23년 4월 11일 초속 70km 강풍으로 헬기가 뜨지 못한 강릉시 저동 산불로 축구장 530개 면적이 불탔었다. 어찌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불길 8시간 만에 갑자기 기적처럼 내린 비로 불은 하늘이 꺼줬다.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산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소돌항으로 나와 횟집들 앞을 지나 소돌항 해변 백사장 옆을 걸었다. '미워도 다시 한번' 촬영지 안내판이 붙은 오리나루와 방파제 옆 꼬부랑할미바위가 보인다.
소돌해변 앞쪽으로 바다로 도출된 바위 봉우리와 기묘한 바위 군상들이 이어진다.
데크 계단을 아래쪽으로 1억 5천만 년 전 지각변동으로 생겼다는 서낭바위, 탕건바위, 코끼리바위, 소바위, 소원바위, 아들바위가 있는 아들바위공원이 있다. 이어 오늘의 목적지인 넓은 백사장, 긴 데크길, 무엇보다 끝없이 동무해 준 동해안 푸른 바다와 파도가 있는 주문진해변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