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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명상(徒步冥想) 6 - 파랑새는 어디에 앉는가

사진 : 비 오는 날의 출근도보

by 전영칠

코스 : 구일역 안양천 - 신림역 - 봉천동

거리 : 15km



│도는 비어있기에 쓰임이 있다│



道沖而用之(도충이용지) : 도는 비어 있기에 그 쓰임이 있다.

或不盈(혹불영) : 혹여 가득 차지 않아도

淵兮似萬物之宗(연혜사만물지종) : 심연처럼 깊어 만물의 으뜸이 된다.

- 노자



안양천 돌담길이 장마로 덮였다


출근 겸 도보명상을 위해 집 근처 안양천으로 향한다.

38도 - 118년 관측사상 25년 7월 상순 중에 최고의 기록이다. 올해 열대야 신기록을 갈아치울 것인가. 날마다 열대야에 밤잠을 못 이룬다. 오늘은 장마 탓으로 현재 24도이다. 도림천으로 출근을 한다. 장마에 의해 늘 다니던 도림천 돌담길이 끊겼다.




어릴 적 손그물로 송사리와 미꾸라지를 잡던 생각이 난다.

내 고향 충청남도 대덕군 중촌리 - 지금은 대전 - 그 모습은 간데없고 온통 아파트와 빌라, 건물이 들어서 꽉 차있다. 고향 모습은 흔적도 없다.




비가 오니 사람들 자취가 끊겼다.

비어 있는 곳이라야 비로소 새로운 무엇인가로 인연이 이어진다. 비어 있기에 가능하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우주는 텅- 비어 있다. 우주는 비어 있기에 파괴되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운 창조가 가능하다.

또한 '끌어당김'은 비어 있어 가능한 것이다.

'가득 차면' 운이 다한 것이다.

그러니 빈 의자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빈 것에서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

진공묘유(眞空妙有) -

진공이 묘유이다. 텅 비어 있는 곳에서 모든 유한한 것이 나온다.



│파랑새는 어디에 앉는가│



벨기에의 상징주의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가 1908년에 발표한 희곡 '파랑새'(1911년 노벨문학상 수상)는 동화적인 상상력과 깊이 있는 철학적 메시지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아온 고전이다. 가난한 나무꾼의 아이들인 틸틸(Tyltyl)과 미틸(Mytyl)은 기나긴 여정으로 파랑새를 찾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집에서 자신들이 기르던 비둘기가 바로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였음을 깨닫게 된다.

파랑새는 내 안에 있다. 행복이라는 존재는 내 안에 있는 '집안의 비둘기' 즉 '신성(또는 불성)'과 만나 하나 되어야 비로소 행복의 충족감을 선물한다.


외부에서 찾는 대표적인 행복이 부, 권력, 명예, 명성 등이다. 이들도 분명히 행복의 조건임이 맞다. 세상은 부와 권력, 명예, 명성을 위해 생명을 불사하기까지 경쟁한다. 그러나 이들을 일군 성공한 사람들 다수는 인생을 마감할 때쯤이면 무엇인가 공허함을 느낀다.


결국 부처는 외부에서 찾는 존재가 아니다. 텅 비어야 파랑새(불성)가 앉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파랑새가 된다. 완성하면 내가 곧 부처다.

이것은 사람이나 스승에게 기대어 찾을 사항이 아니다.


나는 내가 쓴 시 '주인 없는 산사(山寺)'에서 같은 말이 하고 싶었다.




주인 없는 산사(山寺)

전영칠



길을 따라 걷다가

텅 비어 있는

절을 만났다

주인을 기다리다가

걸터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이곳은 혹시 꿈의 세계 인지 모른다


대웅전에는 온갖 고통을 깔고 부처가 앉아 있다


백 년을 기다려도

오지 않을

주인

(시: 경향신문 발표,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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