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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명상(徒步冥想) 7 - 인간은
미래의 희망

사진 : 퇴근 후의 한강도보

by 전영칠

│퇴근 후의 도보명상│


근무 끝나면 ‘다시 한강’으로 도보명상을 하러 간다.


내 사무실 케비넷 안에는 항상 등산복과 워킹화, 배낭이 구비되어 있다. 오후 6시 이후 퇴근하면 언제든 도보할 준비가 되어 있다. 퇴근 후 한강도보를 2~ 3시간 정도하고 나면 몸에 활력이 돈다. 사는 맛이란 이런 것 아닐까라는 느낌이 저절로 든다.


직장인이든 자영업자든 직장을 이끄는 사장이든 대한민국의 역동성과 변화와 그 속에서 속도를 좇아 생존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에게 스트레스는 필수 코스다. 샐러리맨들이 일에 쫓기며 종일을 보내다 스트레스에 파김치가 되어 퇴근할 때가 한두 번일까. 나도 그런 때가 종종 있다.



│도보 중의 특이한 경험│


언젠가 퇴근 후 도보를 하다가 특이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도보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의 일이다.

그날은 유난히 직장 스트레스가 많은 날이었다. 퇴근 때가 되어 가슴은 답답하고 몸의 컨디션은 가라앉고 있었다. 마치 물결처럼 직장에서의 힘든 내용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워킹화를 신었다.


나는 출퇴근을 도보로 한다. 아침 출근은 40분 거리, 저녁 퇴근은 40분, 1시간, 1시간 40분 세 도보 거리 중 하나를 택해 걷는다.

나는 집까지 1시간 40분 거리인 구로디지털단지 역 밑의 도림천을 걷기 시작했다. 나는 도보 시 1시간에 5km의 속도로 허리를 펴고 팔을 저어 힘차게 걷는다.

50분을 걸었다. 신도림역을 지나 안양천을 걷는 중 갑자기 기분이 고조되고 머리로부터 온몸으로 짜릿한 환희가 전해졌다. 친구를 만나 하소연이나 수다를 떨어야 풀릴 것 같은 마음이 씻은 듯 사라졌다. 오히려 아는 이들로부터 연락이 와서 이 좋은 기분을 깨뜨릴까 걱정이었다. 온몸으로 느낀 확실한 물리적인 체험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45분이 아니고 50분째 걸으니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분비되어 온몸으로 퍼져가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도파민과 세로토닌과도 같은 호르몬이 분비된 것일까.

기계도 기름칠을 하고 녹과 먼지를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가동시간을 줘야 한다. 엔진에 골고루 윤활유가 퍼져야 기계가 원활히 작동한다. 몸도 마찬가지다.


이때부터 나는 기본적인 시간으로 '50분 도보의 마술'을 활용했다. 내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도보시간은 50분이었다.

그러면서 명상기법을 활용했다. 걸으면서 몸이 더 편안해지는 경험을 쌓아 나갔다.




│관찰자로 스스로를 객관화하기│


걸으면서 떠오르는 잡생각들과 마음속으로 대화한다.


- 너는 나니?

머릿속 잡생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공상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잡생각은 '나'가 아니나, 잡생각과 결코 싸우지 않는다.

그 잡생각을 바라보기만 한다.

머릿속 공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저절로 이리저리 구름처럼 떠오르고 지나간다.

구름처럼 떠오르는 생각들을 관찰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하는 명상의 전부이다.


50분 도보 - 그것은 몸이 필요로 하는 가장 기본적인 시간이다. 물론 그것은 내 기준이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인간은 미래의 희망│


퇴근 후의 한강을 놀이터로 본다. 피곤해도 일부러 그렇게 생각한다.

처처사(處處寺), 처처교회(處處敎會) - 내가 있는 곳이 절이고 교회다.

거룩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

처처불(處處佛), 처처성인(處處聖人) - 그렇게 모든 것과 모든 분들, 모든 일들을 아름답게 본다.


사실 이 세상에 성인들과 같이 자아완성된 이 얼마나 되랴. 뉴스 보기가 겁날 만큼 세상은 험한 사건의 연속이다. 그러나 미완성되었어도 모든 이들이 불성(佛性)과 신성(神性)이 있으니 이들도 언젠가는 성인들이 될 것이다.

미리 그렇게 보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사람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다만 사람들과 거리를 둔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미완성되고, 버그가 잔뜩 낀 사람과 섞이면 나도 영향을 받는다. 나는 그것을 편의상 '거리두기 기술'이라 말한다.


퇴근 후 가볍게 한강을 걷는다.

다시 말하지만 험준한 이 세상에서 성인들처럼 자아완성된 사람들이 얼마나 되랴. 그러나 나도, 지나치는 분들도 미래에는 다 거룩한 존재들이다. 모두 신성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들이다. 인간들은 미래의 부처다. 미래의 희망이다. 미래의 파랑새다. 그래야 내가 지치지 않는다. 그래야 내가 산다.

그래야 내가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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