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음, 그리고 이념과 신앙사이
3. 하고 싶은 말 다하기
교회 강의실에서 토론이 시작되었다.
토론시간은 매일 저녁 7시부터 시작되었다.
-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토론의 주제가 광범위하고 막연하기도 하나, 아우님과 하고자 하는 것은 마르크스 · 레닌주의와 역사에 개입하는 신의 섭리, 무신론과 유신론, 인본주의와 신본주의로 이는 역사적으로 오랜 토론의 주제가 되었어. 현재 우린 세상을 보는 견해와 생각이 다르니 가치관도 다를 거고, 혹시 싸우거나 우격다짐하는 것은 아닐까 먼저 걱정부터 들어. 선입관념이나 고정관념 때문에 마치 벽을 보며 대화하는 느낌이 될 수도 있어.
- 마르크스 · 레닌골수주의는 아니고요, 사상편력 중이에요. 너무 걱정 마세요.
그녀가 웃으며 안심시키듯 말했다.
- 휴학하고 공장에 고졸 이력서로 취직해서 자본가 사장의 착취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노조를 만들어 투쟁한 경력은 없고?
나는 짐짓 면접 보듯 물었다.
- 그 정도 아니에요. 그녀가 손사례를 쳤다.
- 휴학하고 구로공단에 취직해 노조를 만든 선배를 알아요. 늘 미안하지요. 아직 용기가 없어서.
- 말하자면 창백한 인텔리겐차인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가 물었다.
- 그런 쪽이지요. 미문화원점검사건으로 5년 판결을 받아 투옥된 선배, 2년째 공단에서 노조를 만들어 투쟁하는 선배에 비하면 전 창백한 인텔리겐차일 뿐이에요. 현재 그룹스터디에서 독서토론을 하며 이따금 최일선에서 투쟁하는 선배들의 특강도 듣지요. 그들에게서 군사독재정권하에서의 투쟁방식 등을 배우고 있어요. 따로 일주일에 한 번 야학을 하고 있지만 그 정도일 뿐이니 용기 없고 창백한 인텔리겐차 맞아요.
그녀는 고백하듯 말을 이었다.
- 힘 빠지네. 나는 투옥경험과 최루탄 난무하는 아스팔트와 노조투쟁으로 공산,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려고 힘차게 달려가는 혁명투사를 기대했는데.
요한은 거들먹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 앞으로 그럴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마르크스 · 레닌주의는 과거 및 20세기 전체 역사와 세계관 등을 종합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매력적인 사상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아요.
그녀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 마르크스 · 레닌주의에는 신이 빠져 있어.
- 마르크스 · 레닌주의는 신에 의존하지 않지요. 신은 없으니 인간끼리 만들 수 있는 이상적인 나라는 공산주의국가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지요.
나는 잠시 생각 후 다시 말을 이었다.
- 비전향장기수 공산주의자 이인모는 끝내 전향하지 않고 34년 동안 복역한 후 북으로 송환되었어.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에 따라 44년 장기수 김선명 등 비전향장기수 63명 또한 북으로 돌아갔지. 신념이 전제된 사상의 전향은 거의 어떤 환경도, 누구도 막지 못한다는 산 증거야. 우리가 서로의 영역으로 건너오라는 식의 설득이란 것은 말하자면 불가능의 영역일 수도 있어.
- 형이나 저나 아직 골수 사상적 확신범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녀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를 설득해 봐요. 아직 무른 곳이 있으니 그곳을 공략해서 충실한 신도로 만들어 줘 봐요.
그녀가 예쁘게 말했다.
- 알았어.
요한은 맞장구쳤고 그들은 함께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