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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1

- 젊음, 그리고 이념과 신앙사이

by 전영칠

1. 세상에서 제일 강한 것


세상에 가장 강한 것이 무엇일까?

20세를 갓 넘긴 요한에게 그것은 술이었다. 고등학교 친한 친구 둘이 있었는데 이과(理科)에서 통틀어 술이 제일 강했다. 셋은 대학 졸업 후 재수를 하며 서로 어울려 밤낮없이 술을 퍼댔다. 술을 마시면 세상이 돈짝만 한 게 무서울 것이 없었다. 한 친구는 집에서 여인숙을 했는데 그곳이 세명의 아지트였다. 1~2년 후 각각 대학을 다니면서도 그들은 곧잘 어울려 여인숙의 한쪽 갓방에 죽치고 앉아 술을 마셨다.

그런 생활이 1년쯤 지나고 나서 요한은 술이 세상에서 제일 센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밤낮없이 퍼마시고 난 후 다음날 아침을 맞아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형국을 보내고 난 후의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이었다. 술은 음식일 뿐이었다. 술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세상에 제일 강한 것이 무엇일까?

요한은 이 화두에 매달렸다.

그는 대학 3학년 때 우연한 기회로 한 미션계동아리를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L선배를 만나 본격적인 신앙의 문으로 들어섰다. 마태복음부터 읽기 시작한 성경 66권을 읽고 또 읽었다. 나폴레옹의 말처럼 성경은 ‘살아있는 책’이었다.

그 당시는 전두환과 노태우 군 출신 정치인들의 시절이어서 레닌계, 김일성 주사파계 등의 이념으로 점령된 대학 총학생회에 의해 데모로 날이 새고 데모로 날이 지는 세상이었다.

요한은 최루탄과 학생, 경찰 피아간의 아우성 사이에서 성경을 생각했다. 우주를 창조하고 역사에 깊숙이 개입하며, 세상을 이끌어가는 신이야 말로 가장 센 존재가 아닌가 하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옳다고 판단하면 행동한다 - 당시 그의 좌우명이었다.




2. 소망이 뭐예요?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성경과, 인간을 통해 성경을 쓴 신을 연구하기 위해 2년짜리 미션스쿨에 등록했다. 당연히 부모님은 취직해 돈 벌라고 그를 뜯어말렸다.

그는 잠시만요, 잠시만요 하며 그 2년을 채웠다.

기간이 지나자 ‘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인가’를 체험하기 위해 전도사의 길로 뛰어들었다.

1일, 3일, 1주일 금식을 하며 기도도 해보았다. 기도원에서 밥만 먹으면서 기도하다가 3일째 방언이 터졌다. 하도 신기하여 며칠째 방언기도를 하였으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방언이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를 알 수 없었다. 의미도 모르는 기도는 왜 하지? 하는 회의감에 방언기도를 포기하고 말았다.

요한은 신을 만나기를 원하였으나 떨기나무옆에서 모세에게 현현한 하나님은 그에게 그 모습을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성경을 읽고 또 읽었다.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라면 그는 무엇을 던져서라도 그 존재를 만나보고 싶었다. '당신은 왜 나에게는 나타나지 않는가?' 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대학생들 위주의 목사가 따로 없는 기숙사를 겸한 작은 교회를 맡아 전도사생활을 하면서 1980년 가을 무렵 단국대학교 국문과 1학년 최은을 만났다.

그녀와의 만남은 일본에서 있었던 한국과 일본 대학생들 좌우이념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였다.

일본은 소수당이긴 했지만 00 공산당이라고 당당히 간판을 걸고 정당활동을 하는 것을 보았다. 붉은 깃발을 앞세운 공산당 계열의 데모대도 길거리에서 보였다. 북한계 조총련도 수십 년째 일본에 뿌리내리며 활동하고 있었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정치와 사회 분위기가 매우 신기하기까지 했다.

세미나에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로 갈라진 한반도의 두 조국’에 대한 그녀의 열정적인 주제 발표가 인상적이었다. 좌우를 떠나 젊은 열정은 일단 아름답다. 어디에서 힘이 나오는 것일까. 요한은 그녀의 열정의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당시의 대학 가는 마르크스와 사회주의의 이념이 총학생회부터 물 밀듯 퍼져가고 있었다. 그녀는 공산주의 국가를 이상적인 국가형태라고 판단하고 있었고 그러한 사회를 건설하며 빛과 소금이 되는 작가가 되는 것이 그녀의 꿈이었다. 요한 역시 시 등단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와 요한은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곤 했다.

그녀는 이상적 공산주의국가 건설, 마르크스, 레닌, 트로츠키 따위를 말하며 열변을 토했다. 그녀의 이상형은 체 게바라와 파스테르나크를 절반 섞은 행동형 소설가 정도쯤 되어 보였다. 파격적 혁명가의 이념과 역사를 섞은 낭만적 소설가의 피를 섞은 소설 창작이 그녀 소산의 목적물로 보였다.


그녀는 요한을 전도사라고 부르지 않고 형이라 불렀다. 일주일 동안의 세미나와 일본 견학 사이에서 그녀는 유별나게 요한을 따랐다. 요한 역시 이지적이고 눈이 초롱초롱하고 웃으면 예쁜 입술 사이로 보이는 두 앞니의 귀여운 틈새가 싫지 않아 이내 친해졌다. 그 시대의 운동권 대학생들은 남녀 상관없이 동지적 애정으로 00형, 00 동생이라 호칭했었다.


- 형은 생에 가장 하고 싶은 소망이 뭐예요?

그녀가 입을 동그라미 모양을 한 채로 요한에게 당돌하게 물었다. 풋풋하고 섹시했다.

- 시인과 동시에 혁명가가 되는 것 - 그것이 내 소망이야.

- 어머, 나와 비슷하네.

- 사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힘센 것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어.

- 그래요?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잠시 생각하더니 얼굴을 돌려 정면으로 나에게 물었다.

- 찾았어요?

- 찾고 있는 중, 지금도.

요한은 1학년 동안 말술을 먹었던 이유는 이 세상에서 술이 제일 센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고 말해주었다.

- 호호호, 왕재수!

그녀가 호쾌하게 웃었다.

- 이렇게 할까?

- 뭘 어떻게요?

- 세상에서 가장 힘센 존재가 무엇인지 서울 도착하면 끝장토론하기 어때?

- 재밌네요.

- 만약 그 존재가 마르크스 · 레닌의 공산주의국가라면, 토론 끝에 내가 그것을 인정한다면, 나는 당장 전도사직을 내려놓겠어!

요한은 호기롭게 말했다.

- 예수의 제자라. 형은 기독교의 신이 세상에 제일 힘이 센 존재이기 때문에 이 길 걷겠지요.

-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현재까지는.

- 나는요? 나는 무엇을 걸죠?

- 내가 내 직을 걸었으니 아우도 그에 상응하는 것을 걸어야겠지.

- 뭐죠? 난 학생인데.

- 단순 명쾌하지. 내가 믿는 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세다고 인정하면 마르크스 · 레닌주의를 버리고 내가 믿는 신을 따라야지.

- 그럴 리가요, 좋아요!

그녀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선언하듯 말했다.

그리하여 그녀와 요한은 서울로 돌아와 교회에서 밤샘 토론을 하게 되었다.



20211202504013.jpg 학생운동권 소설 안젤라/안이희옥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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