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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 1

- 나의 도(道)는 여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by 전영칠

- 나의 도(道)는 여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대학 프레시맨 시절의 자전적 이야기.



1.

5~6세 철 어릴 때 친구를 따라 예배당에 갔다. 그곳에서 예쁜 누나들이 춤과 노래도 가르쳐주었다.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울린다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서

탄일종이 땡땡땡


'탄일종' 노래는 그때 그 예쁜 누나들에게 배웠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울 때는 빵도 주었다. 나는 그 빵 맛을 잊지 못해 매년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

빵의 의미가 예수님 태어난 날보다 더 컸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나는 죄 많은 몸이었는지도 모른다.

대학교 1학년 첫 미팅 때 간호원이던 한 여성을 만났다. 남들처럼 커피 먹고 길 걷고 술 한 잔 하고…… 하는 순진한 4개월이 흘렀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녀의 오빠는 장로교 목사였다. 나는 내가 사는 집과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교회로 그녀의 오빠를 찾아갔다. 교회는 무척 작았다. 교인이 30여 명 되는 개척교회였다. 삐걱대는 철계단을 올라 2층 마루판이 깔린 곳에서 그녀의 오빠와 대면하였다.


-교회는 처음이신가요?

-네.

나는 어렸을 때 빵 타먹기 위해 잠시 갔었던 예배당 얘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그녀의 오빠 목사에게 물었다.

-신이 왜 그녀를 데려갔을까요?

-뜻이 있겠지요.

-이해가 안 되는데요. 안 믿는 사람 중에서 데려가는 것이 더 공평하지 않나요?

-교회 나와 성경 공부를 하면 알 겁니다.

-도대체 구원이 뭐죠? 신자가 신을 믿으면 당연히 그 신은 신자를 보호해 주는 게 맞지 않나요?

-신앙은 체험입니다. 교회 나와 보면 알게 됩니다.

-얼마나 교회 나오면 알게 됩니까?

-확실히 뭐라 말할 수 없습니다만, 1년 정도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정확하게 날짜를 집어내 말하지 못하는 그녀의 오빠 목사의 말이 도대체 내게 와 닿지 않았다.

-그래요? 너무 막연한데요?

- 다시 말하지만 신앙생활은 체험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오래 사귀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잃어 '이 곳까지 찾아온 순애보 청년'에게 뭔가 애틋한 대화를 기대하고 온 것들이 고꾸라진 느낌이었다. 뭐냐, 이 동사무소 대화같은 분위기는. 좀 부드럽고 슬픔도 좀 나누고 그러면 안되냐.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 그래요?

나는 잠시 생각한 후 그녀의 오빠 목사에게 물었다.

- 실례합니다만, 동생을 잃으셨는데 슬프지 않으십니까?

그의 오른쪽 입술에 순간적으로 웃음이 서렸다.

- 슬프지요. 왜 안 슬프겠습니까? 그러나 하늘나라를 믿는 신앙인들은 죽어서 가는 내세가 더 없이 위안이 됩니다.

- 그래요?

나는 침을 꼴딱 삼키며 말했다.

- 알겠습니다. 체험을 해보겠습니다.


그로부터 나는 그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번 수요일과 일요일을 다녔다. 왕복 3시간 걸리는 거리였다. 학습을 하고 세례를 받았다. 1년이 지났으나 연탄 뚜껑 2~3미리 차이로 신이 그녀를 데려간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설교 내용이 때론 동화 같고, 합리적이지 못하고, 때론 기적에 치우친 내용들이 많아 들으면 들을수록 의문이 커졌다. 게다가 1년이 다 되도록 기도가 되지 않았다. 이따금 청년모임에도 참가했지만 유창하게 기도하는 청년들이 신기하게만 여겨졌다.

“믿습니까?” “아멘.” 하면 구원된다는 그 말들도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1년 반쯤 되고 나는 그 교회를 더 이상 다니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기억이나 회상이 흐려져 그런 것이 아니라, 뭐랄까 야생마 같은 자이거나 아니면, 평범하다면 지극히 평범한 한 상식인을 설득하지 못하는 그곳은 여전히 낮 선 낡고 오래된 곳 같았다. 마치 중세시대의 교회처럼. 아니 나는 아직은 때가 안 되어서 영혼을 낳아준 신을 허용하지 못하는 설익은 인간이기 때문이었는지 몰랐다.



2.

-주사 잘 놓니, 너?

-그걸 말이라고 해.

-간호사도 간호사 나름이지.

-맞아볼래?

-쇼크사할 일 있어?

그녀는 서양 코쟁이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튀기는 아니었지만. 같은 반 친구들과 우르르 우르르 돌아다니다가 길에서 주웠다- 이것이 그녀와 내 만남의 전부다. 누가 먼저 옆구리 찔렀다고 할 것도 없이 그녀는 그녀 친구들과 역시 우르르 우르르 다니다 미팅할래? 이 소리에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 엮인 거다. 그러니 작업의 정석 어쩌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사치다. 21세. 나이가 같아 그런지 태생이 그래 그런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만난 지 1시간쯤 후부터 말을 트기 시작했었다.

두번째 만남은그녀가 근무하는 개인 병원이었다.


- 어디 아파? 여긴 왠 일?

-진짜 주사 놀 수 있는지 보려고, 신기하잖아.

나는 그녀가 입고 있는 흰 가운 속에 숨겨진 허벅지를 상상하며 말했다.

-흥.

그녀가 고개를 반쯤 오른쪽으로 틀었다.

흥, 귀여운 것 같으니라고. 나도 속으로 흥흥 거렸다.

친구 상구는 같은 반을 떠나 학년에서도 이름난 바람둥이다. 그에게는 미쳐 얼굴도 외우기 어려운 여자들이 늘 붙어 다녔다. 미남형 얼굴, 훤칠한 키, 순발력과 센스. 상구답게 그의 표현에 의하면 '한번 자빠뜨린 여자'는 석 달을 넘기지 않는다. 당시 나는 그를 경이로운 존재로 존경하고 있었다. 상구는 그녀의 친구를 만난 지 3일 만에 자빠뜨렸다고 했다. 제길, 나는 투덜거렸다.

나도 그가 되고 싶다…

나는 그녀에게 엉덩이를 내밀며 한쪽 손으로 엉덩이를 가리켰다.

-주사는 여기다 놓는 거 맞지? 푹신푹신하니까.

나는 음흉한 눈초리로 그녀의 가슴을 훑었다.

-까불지 말고 저기서 기다리고 있어. 반시간 후면 교대야.

그녀가 환자용 빈 침대를 가리켰다.

-아니, 저게 뭐야.

침대에 걸터앉아 건너편 건물 창을 무심코 보던 내가 소리쳤다. 건너편 건물은 모텔이었는데 창문도 안 닫고 불도 안 끄고 남자가 여자를 자빠뜨린 후 침대에 누이고 그리고는 양파껍질 벗기듯 한 꺼풀씩 한 꺼풀씩 벗기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내는 한 손으로 그녀의 약지에 반지를 끼워대었다. 사내가 뭐라고 말하자 여자가 이번에는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아니, 저것들이 뭐 하는 짓이여, 야 밤 병원 옆에서.

-모텔에서 뭐 하겠어. 우리는 가끔 본다.

기가 막혀.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는 일 해대가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럭저럭 퇴근시간이 되었다.

-집이 어디니?

나는 뒤늦게 호적을 파기 시작하였다. 대화가 진부하면 어때. 풍부한 연애 경험이 있어야 맛인가.

-화곡동.

-아, 화곡동. 부모님네 집?

-아니 오빠네집.

-이름이나 알까?

- 일찍도 물어본다. 지희, 김지희.

-이름은 예쁘네.

-이름은 예쁘네?

-아니, 이름도 예쁘네, 제길.

-너, 다음은 고향 물으려고 그러지?

그녀가 경멸적으로 말했다.

-글쎄 뭐랄까, 우선은 서로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머쓱했다.

-재미없어.

그녀가 말을 끊었다. 그녀가 근무하는 병원 앞 화양리의 거리는 저녁으로, 밤으로 울긋불긋 색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아, 20대 청춘들에게 숨을 곳도 많고 숨 쉴 곳도 많다, 이곳은! 나는 현란한 모텔의 네온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다짜고짜 그녀의 팔짱을 꼈다.

-어머, 얘가.

그녀가 팔짱을 뺐다.

- 맞아. 팔짱은 여자가 끼는 거야. 밥 먹을래, 술 먹을래 아님,

나는 서로를 안고 모텔로 향하고 있는 한 쌍의 남녀를 보며 말했다.

-그냥 걸을래?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손을 잡아 뺐다.

-스킨십 좋아하니?

-스킨십 싫어하니?

그녀의 허리를 안았다. 그녀가 허리를 풀었다.

-너는 여자만 보면 그것만 생각하니?

-그 게 뭔데?

-만난 지 몇 번 되었다고. 얌전하세요, 이 손.

그녀가 손을 톡- 털었다.

-만난 지 몇 번이면 만리장성도 쌓을 수 있는 시간이여.

나는 상구를 생각했다.

-저기, 할 말이 있어.

-뭔데? 1박 여행 같은 거면 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게.

나는 기대감이 슬며시 일었다.

-30분 후에는 차를 타야 돼. 그동안 걷자. 걸어줄 거지?

-뭐?

나는 놀래며 물었다.

-30분 동안 걷기 데이트하자니까.

-무슨 소리야, 기다리게 해 놓고선.

-그러니까 걷기 데이트하자니까.

-안 돼, 막차 타고 가.

-어머, 얘는. 예배가 있다니까.

-예배가 뭔데? 먹는 거니?

나는 그녀의 손을 움켰다.

-굶고만 살았니? 예배도 몰라?

그러나 그녀는 내손을 털지 않았다. 말도 안 돼. 나는 갑자기 억울해졌다.

여기 갈까, 안 돼. 저기 갈까. 안 돼. 나는 삼겹살집, 맥줏집 등을 보며 구슬려댔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어느 틈에 30여분이 지났다. 그녀는 틈도 주지 않고 버스를 탔다. 조금 전 병원 앞 벌거벗은 남녀의 모습이 머리에 클로즈업되었다. 그리고 상구가 나를 보며 뭐야, 넌 아직도 진도 못 나갔어? 하며 조롱하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안녕. 다음에 봐.

그녀가 창안에서 손을 흔들었다.

난 왜 이렇게 안 되는 거야. 젠장. 졸지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건가, 젠장. 멀어져 가는 그녀를 보며 내 입에서 연신 젠장 소리가 터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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