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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성자 8 - 타고르 1

타고르 박물관

by 전영칠

인도 근대사의 격동기를 살며 동양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고, 인도의 정신적 독립을 이끌었던 위대한 성자,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그의 거대한 영향력을 이야기한다.



1. 탄생과 성장(1861년 ~ 초기)


타고르는 1861년 5월 7일, 영국 식민지 시절의 인도 벵골 지방 콜카타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브라만 계층 중에서도 매우 부유하고 명망 높은 가문이다. 조부는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고, 아버지 데벤드라나트 타고르는 힌두교 개혁 운동인 브라마 사마지의 지도자이자 ‘위대한 성자(마하리시)’로 불릴 정도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는 14남매 중 막내로, 형제들 대부분이 철학자, 시인, 음악가, 극작가 등으로 활동하며 벵골 문예 부흥(벵골 르네상스)의 중심을 이룬다. 타고르는 이런 특권적 환경 속에서 인도의 고전, 종교, 천문학은 물론, 벵골어와 영어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타고르는 억압적이고 무미건조한 정규 학교 교육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는 수업 시간에 도망쳐 산과 들을 누비는 방랑자 기질을 보이고, 결국 14세에 정규 교육을 포기한다. 대신 12세 때 아버지와 함께 떠났던 히말라야 여행은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다. 이 여행에서 그는 인도의 풍요로운 자연과 고대 사상, 그리고 가난한 민중들의 삶을 직접 접하고, 이는 훗날 그의 문학과 사상의 뿌리가 된다.

16세에 첫 시집 《들꽃》을 발표하며 '벵골의 셸리'라는 별칭을 얻고, 17세에는 법률 공부를 위해 영국 유학을 떠나지만, 1년여 만에 중퇴하고 돌아온다. 그는 영국 낭만주의 문학의 영향을 받지만, 제도권 교육에는 끝내 적응하지 못했다.



2. 작품 활동과 산티니케탄 설립


인도로 돌아온 후 타고르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가문의 재산 관리를 맡았다. 이 시기에 그는 갠지스강 유역에서 가난한 농민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고, 이것이 그의 문학의 중심 소재가 된다. 시, 희곡, 소설,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걸작들을 쏟아낸다.


대표작 및 문학 세계

기탄잘리(Gitanjali)》: '신께 바치는 노래'라는 뜻의 서정시집이다. 초기에는 벵골어로 발표되었지만, 자신이 직접 영어로 번역해서 서구에 소개한다. 이 작품으로 1913년 동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그의 시는 유미적인 초기작들을 거쳐 현실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지는 특징을 보인다. 그의 시는 인도와 자연, 인간을 신에게 바치는 경건한 사랑의 노래로 가득 차 있다.


단편 소설은 특히 인도 민중의 삶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시대를 앞선 여성상을 그리기도 한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소설, 연극, 음악, 무용, 회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 종합 예술가이다. 특히 만년에 몰두했던 회화 작업은 '삶의 마지막 수확'이라고 불릴 만큼 그의 사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산티니케탄 학교 설립

1901년, 타고르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서벵골주에 산티니케탄이라는 학교를 세운다. '평화의 거처'라는 뜻이다. 그는 인도 국민 대다수인 농민들을 계몽하지 않고서는 인도의 변혁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곳은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배우는 전인 교육을 목표로 하며, 서구의 억압적인 교육 방식과 완전히 다르다.

그는 노벨문학상 상금 전액을 이 학교의 운영비로 기부할 만큼 애정을 쏟았다. 1921년에는 인근에 농업 공동체인 스리니케탄을 설립해 농촌 재건과 문맹 퇴치에도 앞장선다. 그의 교육 및 농촌 개혁은 마하트마 간디나 인도 정부보다 수십 년 앞선 것이다.

이 시기는 타고르에게 큰 시련이 닥친 때이기도 하다. 아내와 부친, 심지어 아들과 딸이 연이어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개인적인 고통을 영적인 성숙의 과정으로 승화시키고, 그의 작품은 더욱 깊이를 더한다.



images.jpeg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1941)


3. 타고르의 사상과 철학


타고르 사상의 핵심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신의 조화이다. 그는 고대 인도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사랑하지만, 서구의 과학적 사고와 합리주의도 거부하지 않는다.


자유와 독립

그는 단지 정치적인 독립만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지적인 독립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의 시

<인도의 기도〉는 '무한히 퍼져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당으로 나의 조국이여 깨어나소서!'라고 외친다.


보편적 인간애와 세계주의

타고르는 좁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거부하고, 전 인류를 아우르는 세계주의(Universalism)를 주창한다. 그는 세계를 여행하며 동서양 문명의 만남과 화해를 역설하고, 이는 그가 산티니케탄에 세운 비슈바 바라티 대학교(세계 대학)의 건학 이념이 된다.


삶의 긍정

그의 종교적 사상은 금욕을 강조하는 전통 힌두교의 일부 흐름과는 달리, 삶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긍정한다. 그는 이 세상 자체가 신의 현현이며, 노동과 예술을 통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4. 인도 역사와 세계에 끼친 영향


타고르의 영향력은 인도와 벵골 지역을 넘어 세계로 퍼져나간다.


인도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

그는 간디와 함께 인도 독립운동의 두 축이다. 간디가 현실 정치와 대중 운동을 이끌었다면, 타고르는 인도의 정신과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고 재건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카스트 제도와 불가촉천민 차별을 강하게 비판하며 사회 개혁에도 목소리를 높인다.


국가(國歌) 작곡

그는 인도와 방글라데시 두 나라의 국가(國歌)를 작곡한 유일한 인물이다.

인도 국가: 〈자나 가나 마나(Jana Gana Mana)〉

방글라데시 국가: 〈아마르 쇼나르 방글라(Amar Shonar Bangla)〉


아시아 문학의 위상 확립

노벨문학상 수상은 서구 중심이었던 세계 문학계에 아시아 문학의 깊이와 가치를 증명한다. 그는 이로 인해 그는 '동방의 등불'로 불리게 된다.


한국과의 인연

한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시 <동방의 등불〉을 지어 우리 민족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준다. 이 시는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에게 독립 의지를 북돋아 주는 상징이 된다.



5. 제자들과 유산


타고르는 수많은 제자와 후배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지만, 직접적으로 '성자-제자 관계'로 불릴 만한 이들은 산티니케탄을 중심으로 그의 사상을 실천한 이들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하루 다섯 가지 질문>을 던지라고 가르친다. 이는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하도록 이끈 그의 교육 철학을 보여준다.


1) 오늘 어떻게 지내는가?

2) 오늘 어디에 가는가?

3) 오늘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

4) 오늘 무엇을 하는가?

5) 오늘 무엇을 잊어버리는가?


타고르는 평생을 걸쳐 인도의 문학, 예술, 교육, 사회를 개혁하고, 그가 세운 산티니케탄과 비슈바 바라티 대학교는 오늘날까지도 그의 자연주의 교육 철학세계주의 사상을 이어간다. 특히 그를 따르던 교육자들과 예술가들은 이 학교를 통해 그의 정신을 후대에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그의 진정한 제자들은 그의 가르침을 따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유롭고 조화로운 인간이 되려고 노력했던 모든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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