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마하리쉬의 아루나찰라 아쉬람
라마나 마하리쉬(Ramana Maharshi)는 1879년 12월 30일, 남인도 타밀나두주의 마두라이 인근 티루추지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벤카타라만 아이야르였다. 그는 어린 시절 특별히 종교적이거나 영적인 아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운동을 좋아하고 잠이 많았던 평범한 소년이었으나, 남다른 점이 있다면 한 번 잠들면 누가 깨워도 모를 정도로 깊은 수면에 빠져들곤 했다는 점이다.
그의 인생을 바꾼 첫 번째 계기는 16세 때 찾아왔다. 우연히 친척으로부터 '아루나찰라(Arunachala)'라는 이름을 듣게 된 순간, 그는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경외감과 끌림을 느꼈다. 아루나찰라는 힌두교에서 시바 신의 현신으로 추앙받는 성산(聖山)이다.
17세가 되던 1896년 7월, 벤카타라만에게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했다. 몸에 특별한 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강렬한 직감에 사로잡혔다. 그는 공포에 질리는 대신, 죽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직접 확인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바닥에 누워 사지를 경직시키고 숨을 참으며 죽은 시체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제 이 몸은 죽었다. 하지만 '나'도 죽었는가? 이 몸이 '나'인가?"
이 짧고도 강렬한 탐구 끝에 그는 몸은 썩어 없어질 물질일 뿐이며, 몸의 생사와 관계없이 영원히 존재하는 '순수 의식'이 진정한 자신임을 깨달았다. 이 찰나의 순간에 그는 에고를 완전히 소멸시키고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그는 모든 세속적 인연을 뒤로하고 오직 '아루나찰나'라는 이름만을 쫓아 집을 떠났다. 티루반나말라이에 도착한 그는 아루나찰라 산의 사원과 동굴에서 깊은 삼매에 빠져들었다. 벌레가 살을 파먹는 것도 모를 정도의 깊은 고요 속에서 그는 수년간 침묵의 수행을 이어갔다.
1896년 7월, 17세 소년 벤카타라만에게 찾아온 죽음의 체험은 단순한 심리적 공포가 아니라, '개별적 자아'가 무너지고 '보편적 자아'가 드러난 존재론적 사건이었다.
죽음의 공포가 덮쳤을 때, 그는 당황하여 의사를 찾거나 기도를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바닥에 누워 "좋다, 죽음이 왔구나. 그렇다면 죽음이란 무엇인가?"라고 자문하며 죽음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사지를 뻗고 몸을 경직시켰다. 입을 굳게 다물고 숨을 멈췄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에서도 실제 시체처럼 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이 차갑게 식어가고 썩어 없어지는 과정을 마음속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몸은 죽어 뻣뻣해졌고 곧 화장되어 한 줌의 재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몸이 죽었다고 해서 '나'도 죽었는가? 몸은 침묵하고 있지만, 내 안에는 몸의 생사와 관계없이 여전히 빛나고 있는 어떤 힘, 어떤 존재가 있다."
그 순간, '나'라는 이름과 형태를 가진 에고는 영원히 사라졌다. 그는 노력해서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라, 가짜 나(에고)가 사라지자 원래부터 있던 진짜 나(Self)가 스스로 드러난 것을 목격했다. 이 체험 이후 그는 단 한순간도 그 깨어있는 의식 상태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그는 복잡한 경전 공부나 고된 고행보다 '자기 탐구(Self-Enquiry)'를 강조했다.
비이원론 : 그는 우주의 근원인 '브라만'과 개별 자아인 '아트만'이 하나라는 불이타(不二打) 철학을 몸소 증명했다.
라마나 마하리쉬의 '자기 탐구'는 마음의 근원을 추적하여 에고를 소멸시키고 참된 자아에 이르는 가장 직접적인 길이다. 이 방법은 복잡한 이론이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으며, 오직 자신의 내면으로 주의를 돌리는 집중력만 있으면 된다.
1) 자기 탐구의 핵심 원리: '나'라는 생각의 추적
마하리쉬는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과 번뇌의 원인이 '나(I)'라는 가짜 생각(에고)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모든 생각은 "내가 무엇을 한다", "내가 무엇을 느낀다"는 식의 '나'라는 주체를 기반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이 '나'라는 생각의 뿌리를 찾아 들어가면, 결국 그 생각이 허상임을 깨닫고 그 이면에 있는 순수 의식(참나)을 만나게 된다는 원리다.
2) 구체적인 수행 방법
자기 탐구는 특별한 장소나 자세에 구애받지 않고 일상 속에서도 수행할 수 있다.
① 생각의 관찰과 주체 확인
어떠한 생각이나 감정이 일어날 때, 그 내용에 휩쓸리지 말고 즉시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라.
"이 생각(혹은 감정)은 누구에게 일어났는가?"
② 질문의 전환
그러면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에게 일어났다"는 답이 나올 것이다. 이때 지체하지 말고 다시 핵심적인 질문을 던져라.
"그렇다면 이 '나'는 누구인가? "
③ 근원으로의 집중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지적인 답변(예: "나는 누구의 아들이다", "나는 의사다")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질문은 주의력을 외부의 대상에서 질문을 던지는 주체인 '나'로 돌리기 위한 도구다.
'나'라는 느낌이 시작되는 가슴 안쪽의 근원을 향해 주의를 집중하라. 다른 생각이 끼어들면 다시 ①번 과정으로 돌아가 "이 생각은 누구에게 일어났는가?"라고 묻고 주의를 내면으로 돌려야 한다.
실천적 가이드
"지금 당장 화가 나거나 우울하다면,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말고 물어보라. '이 화는 누구의 것인가?' 그 주체를 쫓아가는 순간, 화의 불꽃은 사그라들고 고요한 관찰자만 남게 될 것이다."
④ 생각의 소멸
이 과정을 반복하면 '나'라는 생각이 점점 힘을 잃게 된다. 마하리쉬는 이를 "장작을 태우는 부중개(부지깽이)"에 비유했다. 다른 생각을 다 태워버린 부지깽이가 결국 자신도 불태워 사라지듯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또한 다른 모든 생각을 잠재운 뒤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마저 소멸시킨다.
3) 수행 시 주의사항
지적인 분석을 피하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영혼이다", "나는 신이다"라는 식으로 머리로 답을 내는 것은 또 다른 생각일 뿐이다.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오직 질문을 통해 주의를 안으로만 모아야 한다.
끊임없는 반복: 수행 초기에는 에고의 저항이 심해 잡념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때마다 자책하지 말고 즉시 질문을 통해 '나'로 돌아오는 연습이 필요하다.
일상에서의 수행: 명상 시간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걷거나 일하거나 대화하는 중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항상 "누가 이 일을 하는가?"라는 깨어있는 의식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4) 자기 탐구의 종착지: '아이-아이(I-I)'
수행이 깊어져 '나'라는 생각(에고)이 완전히 사라지면, 거기에는 공백이 남는 것이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존재의 빛'이 드러난다. 이를 마하리쉬는 '나-나(I-I)'라고 불렀다.
이 상태에서는 더 이상 질문이 필요 없으며, 자신이 곧 우주의 근원이자 순수 의식임을 직관적으로 알게 된다. 이것이 곧 해탈이며 진정한 평안이다.
그는 말보다 침묵을 통해 더 깊은 가르침을 전했다. 그와 함께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방문객들은 마음의 평화를 얻고 의문이 해소되는 경험을 했다.
라마나는 스스로 책을 집필하기보다는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가르침을 남겼다.
《나는 누구인가? 》: 그의 핵심 사상이 담긴 가장 유명한 소책자이다.
《실재에 대한 40구절》: 존재의 본질에 대해 쓴 짧은 시 형식의 글이다.
《아루나찰라 찬가》: 그가 유일하게 감정적인 헌신을 보였던 아루나찰라 산에 바치는 찬미가이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화》: 제자들이 그의 답변을 방대하게 기록한 책으로, 수행자들에게는 교과서와 같다.
그의 명성이 높아지자 인도 전역과 서구 세계에서 수많은 추종자가 몰려들었다. 아루나찰라 산기슭에는 '스리 라마나스라맘'이라는 아쉬람이 세워졌다.
주요 제자
가나파티 무니: 당대 최고의 산스크리트어 학자로, 벤카타라만에게 '라마나 마하리쉬'라는 이름을 헌정하며 그를 세상에 알린 일등공신이다.
폴 브런턴: 영국의 언론인으로, 저서 《인도의 비비》를 통해 라마나를 서구 세계에 최초로 알렸다.
모리스 프리드먼: 폴란드 출신 엔지니어로, 라마나의 가르침을 서구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는 데 기여했다.
특이한 점은 그가 인간 제자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평등한 자비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아쉬람의 암소 '락슈미'를 비롯해 개, 원숭이, 공작 등도 그의 축복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말년에 팔에 육종(암)이 생겨 큰 고통을 겪었다. 제자들이 수술을 권유하고 고통을 걱정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이 몸을 '나'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 몸이 아니다. 나는 가려운 곳을 긁듯이 이 고통을 지켜볼 뿐이다."
그는 육체적인 고통 중에도 평온을 잃지 않았으며, 마지막까지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축복했다. 1950년 4월 14일 저녁, 그는 가부좌를 튼 채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마하사마디). 그 순간 거대한 유성이 아루나찰라 산 정상 위를 가로질러 날아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현대 인도 정신사에서 가장 순수한 성자로 추앙받는다.
종교적 화합: 그는 힌두교도였지만, 어떤 특정 종교의 교리에 갇히지 않았다. 그의 가르침은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 모든 종교의 핵심과 닿아 있어 전 세계적인 공감을 얻었다.
서구의 동양 정신 탐구: 칼 융은 그를 "인도 정신의 가장 하얀 꽃"이라 극찬했으며, 서구인들이 요가나 명상을 단순한 운동이 아닌 '자기 탐구'의 도구로 인식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대 명상의 원류: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마인드풀니스'나 '비이원론 명상'의 많은 부분이 그의 '자기 탐구' 법에 빚을 지고 있다.
"당신은 육체가 아니라 영원한 의식이다"
- 라마나 마하리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