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 샹카라(약 788~820년경)는 인도 철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힌두교의 방대한 전통 사상을 집대성하고 아드바이타 베단타(Advaita Vedānta, 불이일원론 非二一元論)라는 독창적이고 정교한 철학 체계를 확립했다. 그가 어떻게 힌두교의 전통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힌두교의 핵심 전통 사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힌두교의 핵심 전통 사상 (샹카라 이전 및 동시대)
힌두교는 단일 창시자나 경전, 교리가 있는 종교라기보다는 인도 아대륙에서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다양한 사상, 신앙, 의례, 생활양식의 총체이다.
첫째로 슈루티(천계/계시 문헌)인 베다와 우파니샤드를 말한다.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마지막 부분으로, 제의 중심의 초기 베다 사상에서 벗어나 우주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사색을 담고 있다.
브라흐만(우주적 절대자), 아트만(개별적 참나), 윤회, 업, 해탈, 다르마, 삼사라, 목샤, 요가 전통 등의 핵심 개념이 여기서 본격적으로 논의된다.
두 번째로 서사시와 푸라나: 《라마야나》, 《마하바라타》(특히 그 일부인 《바가바드 기타》), 다양한 푸라나(신화와 전설 모음집)를 말하며 이는 철학적 사상을 이야기 형태로 대중에게 전달하고 힌두교 신앙을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 샹카라의 힌두교 전통 사상 계승 및 재해석
샹카라는 이러한 힌두교의 풍부하고 다양한 전통 사상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정수를 추출하여 아드바이타 베단타(불이일원론)라는 일관되고 체계적인 철학으로 재정립했다. 그는 베다와 우파니샤드에 기반한 힌두교의 전통 사상을 계승하고, 이를 아드바이타 베단타라는 독창적이고 체계적인 철학으로 집대성했다.
그는 카르마 요가(결과에 대한 집착 없는 행위의 요가)와 박티 요가(신에 대한 헌신과 사랑의 요가)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았다. 즈나나를 정점으로 하는 수행 체계 안에서 다른 요가들을 위계적으로 통합했다.
샹카라 철학의 핵심은 '아드바이타', 즉 '둘이 아님(非二)'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궁극적 실재가 오직 하나뿐이며, 그 외의 모든 것은 그 하나의 실재가 현현(顯現)한 모습이거나 환영(幻影)이라는 사상이다.
샹카라에 따르면, 브라흐만은 유일하고 절대적인 실재이며, 모든 존재의 근원이다.
브라흐만은 형언할 수 없고, 속성이 없으며(니르구나 브라흐만), 순수 의식, 순수 존재, 순수 지복 그 자체이다. (이를 합쳐 '삿치다난다'라고도 표현)
이는 인격적인 창조주 신과는 구별되는 개념으로, 우주 만물의 바탕이 되는 비인격적 절대자를 의미한다.
아트만은 개별적인 영혼, 또는 '참된 나(진아, 眞我)'를 의미한다.
우리가 '나'라고 인식하는 육체, 감각, 마음, 자아의식 등은 아트만의 참모습이 아니다.
샹카라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아트만은 브라흐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즉, 개별 영혼의 본질은 우주적 실재인 브라흐만과 궁극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우파니샤드의 "그것이 너이다", "나는 브라흐만이다" 등의 대명제가 이를 뒷받침한다.
샹카라는 슈루티, 특히 우파니샤드를 해탈에 이르는 지혜의 유일하고 가장 권위 있는 원천으로 간주했다. 그는 우파니샤드의 다양한 가르침들이 궁극적으로는 브라흐만이 유일한 실재이며 아트만과 브라흐만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불이일원론적 진리를 가리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브라흐마 수트라》(베단타 철학의 핵심 요강집), 주요 우파니샤드들, 그리고 《바가바드 기타》에 대한 방대한 주석을 저술하여, 이 경전들을 자신의 불이일원론적 관점에서 일관되게 해석하고 그 정당성을 논증했다. 이를 통해 그는 다양한 해석으로 흩어져 있던 베단타 사상을 통일하고자 했다.
만약 브라흐만이 유일한 실재라면, 우리가 경험하는 이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현상 세계는 무엇인가? 샹카라는 이를 마야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마야는 일종의 우주적 환영 또는 환상으로, 유일한 브라흐만 위에서 다채로운 현상 세계가 나타나도록 하는 힘이다.
마야는 실재하는 것도 아니고 실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형언하기 어려운 성질을 지닌다.
마치 밧줄을 뱀으로 잘못 보는 것처럼(밧줄-뱀의 비유), 우리는 마야 때문에 유일한 브라흐만을 다원적인 세계로, 그리고 개별적인 '나'를 참된 아트만과 분리된 존재로 착각한다. 이를 비비아르타바다(가현설 假現說 또는 현현설 顯現說)라고 한다. 즉, 브라흐만이 실제로 세계로 변한 것이 아니라, 마야로 인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는 힌두교 내의 다른 정통 철학 학파들(상키야, 요가, 니야야, 바이셰시카, 미맘사 등)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자신의 아드바이타 베단타가 가장 슈루티의 가르침에 충실하며 논리적으로도 우월함을 논증했다.
또한 그는 당시 인도에서 강성했던 불교의 무아설(無我說)과 공사상(空思想)을 강력히 비판했다. 영원불변하는 아트만의 존재를 부정하는 불교는 허무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으며, 윤회와 해탈의 주체를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아트만의 실재성과 브라흐만의 유일 실재성을 강조하여 힌두교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고자 했다.
샹카라는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고 아드바이타 베단타 전통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인도 전역의 네 곳(혹은 열 곳으로도 전해짐)에 주요 수도원을 설립하고 승려 조직(다샤나미 삼프라다야)을 정비했다. 힌두교를 사상적으로나 조직적으로 통합하고 부흥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샹카라에게 해탈은 무지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며, 아트만이 곧 브라흐만이라는 진리를 직접 깨닫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것을 얻거나 어딘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본래 그러한 자신의 참된 본성을 깨닫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왕자임을 잊고 거지로 살던 사람이 자신이 왕자임을 깨닫는 것과 같다.
해탈은 사후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에도 지혜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 (지반묵티).
샹카라는 해탈에 이르는 가장 직접적이고 궁극적인 길은 즈나나(지혜)라고 강조했다. 즈나나 요가는 다음과 같은 단계로 이루어진다.
슈라바나 : 듣기. 스승으로부터 우파니샤드와 같은 경전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단계.
마나나 : 사유하기. 들은 가르침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이성적으로 탐구하여 의심을 제거하는 단계.
니디드야사나 : 명상하기. 브라흐만과 아트만의 동일성에 대한 진리를 깊이 명상하여 직접적인 체험으로 만드는 단계.
샹카라는 진리를 두 가지 수준으로 나누어 설명함으로써 현상 세계의 경험과 궁극적 실재의 문제를 조화시키려 했다.
파라마르티카 사트야 (승의제 勝義諦) : 궁극적 진리. 이 수준에서는 오직 브라흐만만이 유일한 실재이며, 아트만과 브라흐만은 동일하고, 현상 세계는 실재하지 않는다.
비야바하리카 사트야 (세속제 世俗諦) : 현상적 또는 경험적 진리. 이 수준에서는 마야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 세계가 일상적인 경험 속에서 상대적으로 실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덕, 윤리, 종교 의례, 사회생활 등은 이 수준에서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무지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이 현상적 진리의 세계에서 살아가게 된다.
3) 샹카라 계승의 의의
샹카라의 힌두교 전통 사상 계승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1) 힌두교 사상의 부흥 및 체계화
(2) 철학적 정교함 심화
(3) 실천적 해탈의 길 제시
(4) 후대 힌두교에 미친 막대한 영향
그는 30대 중반에 이승을 떠났다. 짧은 일생이었으나 이승에서의 그의 종교적 결실은 방대하고, 치밀했고, 풍족했다.
샹카라는 힌두교의 유구한 전통 사상, 특히 베다와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을 깊이 계승하면서도, 이를 독창적이고 체계적인 아드바이타 베단타 철학으로 재정립하여 힌두교 사상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그는 전통의 단순한 수호자를 넘어,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고 생명력을 불어넣은 위대한 사상가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라마나 마하리쉬는 아디 샹카라의 아드바이타 베단타( 불이일원론) 철학의 핵심 사상을 깊이 계승하고, 이를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과 독자적인 방식으로 제시한 현대의 위대한 스승으로 평가받는다.
비록 라마나 마하리쉬가 샹카라처럼 방대한 철학적 주석서를 저술하거나 전통적인 학문 체계 안에서 활동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가르침의 본질은 샹카라가 천명했던 아드바이타 베단타의 핵심과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 매우 많다.
1) 샹카라 철학과의 계승 및 유사점:
샹카라와 마찬가지로 라마나 마하리쉬 역시 궁극적 실재는 오직 하나뿐인 '참나(진아 眞我)' 또는 '브라흐만'이며, 개별 자아(아트만)는 이 궁극적 실재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핵심으로 가르쳤다. "브라흐만만이 실재하고, 세계는 비실재(환영)이며, 개별 영혼은 브라흐만과 다르지 않다"는 샹카라의 유명한 명제는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에서도 그 맥을 같이 한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모든 경험의 바탕이자 변하지 않는 순수 의식으로서의 '참나'를 깨닫는 것이 궁극적인 해탈이라고 보았다. 이는 샹카라가 아트만(개별 자아의 본질)이 곧 브라흐만(우주적 절대자) 임을 깨닫는 것이 해탈이라고 한 것과 같다.
라마나 마하리쉬 역시 우리가 '참나'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을 육체나 마음에 한정된 개별자로 여기는 것은 근원적인 무지 때문이라고 보았다. 현상 세계의 다양성과 개별성은 궁극적 실재의 관점에서 보면 마야(환영)와 같다고 설명했다. 이는 샹카라의 마야론과 유사한 관점이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 탐구를 통해 '참나'에 대한 직접적인 앎, 즉 지혜(즈나나)를 얻는 것이 해탈에 이르는 가장 직접적인 길이라고 가르쳤다. 이는 샹카라가 즈나나 요가를 해탈의 궁극적인 수단으로 강조한 것과 일치한다.
2) 라마나 마하리쉬 가르침의 특징 (샹카라와의 차별점 또는 강조점의 차이):
라마나 마하리쉬는 복잡한 경전 연구나 철학적 논변보다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통해 생각의 근원을 파고들어 '나'라는 개별적 자아의식(에고)이 허상임을 깨닫고, 그 바탕에 있는 '참나'를 직접 체험하는 자아 탐구의 길을 핵심적인 수행법으로 제시했다. 이는 샹카라의 전통적인 즈나나 요가(슈라바나, 마나나, 니디드야사나)를 매우 실천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단순화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16세 때 강렬한 죽음 체험을 통해 자발적으로 '참나'를 깨달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의 가르침은 이러한 직접적인 체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는 경전의 권위나 학문적 지식보다는 각자의 내적 탐구를 통한 직접적인 자각을 더 중시했다. 반면 샹카라는 경전(슈루티)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경전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논리적 사유를 통한 지혜의 획득을 강조했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종종 언어를 통한 가르침보다 침묵 속에서 그의 현존을 통해 제자들이 스스로 '참나'를 깨닫도록 이끌었다. 궁극적 진리는 언어를 넘어선다는 아드바이타 베단타의 사상을 그의 가르침 방식에서도 보여주었다.
샹카라는 인도 전역에 승단을 조직하고 아드바이타 베단타의 전통을 체계적으로 확립하는 데 힘썼지만, 라마나 마하리쉬는 아쉬람(수행 공동체)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긴 했으나, 어떤 조직이나 형식, 종교적 의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가르침을 펼쳤다. 그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수준에 맞춰 동일한 진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했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샹카라가 체계화한 아드바이타 베단타의 핵심 진리를 자신의 깊은 깨달음과 체험을 바탕으로 현대인들이 보다 직접적이고 실천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재해석하고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샹카라의 철학적 전통 위에 서 있으면서도, 그만의 독창적인 방법론과 가르침 스타일로 아드바이타 베단타의 정수를 현대에 되살린 위대한 영적 스승으로 평가받는다. 따라서 라마나 마하리쉬는 샹카라의 힌두교 철학, 특히 아드바이타 베단타를 본질적으로 계승했으며, 그 가르침을 자신의 체험을 통해 새롭게 조명하고 단순 명료하게 제시했다고 말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두 종교의 천재는 힌두교의 전통을 계승하여 각기 독창적인 발자취를 남겼고, 후세뿐 아니라 전 세계에 힌두교의 깊은 영성을 각인시켰을 뿐만 아니라 타 종교계에까지도 깊은 영감을 불어넣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