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아루나찰라 산
이번 글에서는 라마나 마하리쉬의 생애에서 그의 철학적 정수인 '가르침의 상세 내용'을 다루고, 그가 살던 아루나찰라 아쉬람에 대해 말해 보기로 한다.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은 인도의 고대 철학인 '아드바이다 베단타(비이원론)'의 정수와 맞닿아 있지만, 그는 이론적 분석보다는 직관적인 실천을 중시했다.
마하리쉬는 마음을 '생각들의 묶음'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그 모든 생각의 가장 밑바닥에는 '나라는 생각'이 있다고 보았다. "나는 배고프다", "나는 행복하다"라는 생각에서 '배고픔'이나 '행복'을 빼버려도 '나'는 남지만, '나'를 빼버리면 그 어떤 생각도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라는 생각'의 근원을 찾는 것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라고 가르쳤다.
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주문처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주의력의 방향을 180도 돌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소 우리의 의식은 오감을 통해 외부 세계(대상)로 흘러나간다. 자기 탐구는 이 흐름을 거꾸로 돌려 '의식의 빛'이 비쳐 나오는 그 광원을 향하게 하는 작업이다.
잡념이 일어날 때 그것을 억지로 누르려 하지 마라. 대신 "이 생각이 일어난 주체는 누구인가?"라고 물어라. 도둑(잡념)을 쫓는 대신 주인을 찾으면 도둑은 저절로 도망가는 법이다.
마하리쉬는 참된 자아가 머무는 자리를 머리(뇌)가 아니라 가슴(심장)이라고 보았다. 단, 이것은 육체적인 심장이 아니라 가슴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에 느껴지는 '의식의 중심'을 의미한다. 깊은 수면 상태나 무아지경의 순간에 모든 의식이 잦아드는 바로 그곳이다. 수행자가 자기 탐구를 계속하면, 결국 의식은 머리에서 내려와 이 심장의 자리로 흡수된다.
그는 스승이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의 내면에도 존재한다고 가르쳤다.
"진정한 스승은 밖에서 당신을 안으로 밀어 넣고, 안에서는 당신을 안으로 끌어당긴다."
그에게 은총이란 특별한 선물이 아니라, 구름이 걷히면 태양이 나타나듯 에고가 사라진 자리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진리의 빛이었다.
그는 운명론자가 아니었으나, 육체가 겪어야 할 일들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 일을 겪는 '나'가 누구인가?"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그 어떤 업보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불속에 구운 씨앗이 더 이상 싹을 틔우지 못하듯, 지혜의 불로 태워진 업은 힘을 잃기 때문이다.
"세상이 정의하는 당신이 아니라, 당신 내면의 변치 않는 빛에 주목하라"
- 라마나 마하리쉬
마하리쉬는 아루나찰라를 우주의 심장이라고 하였는데 어린 시절부터 내면으로부터 "아루나찰라, 아루나찰라" 라는 소리를 들었고 아루나찰라 산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을 아는 순간 환희에 젖어 이곳에 온 뒤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산으로 오르려면 햇빛이 강하기에 모자와 마실 물을 꼭 준비해야 한다. 왕복 4~5시간 정도 걸린다.
아쉬람은 새벽 5시에 문을 열고 밤 9시에 문을 닫으며, 명상홀은 밤 10시에 닫는다.
낮 12시부터 2시까지는 모든 건물의 문이 닫힌다. 아쉬람에서 명상 및 숙식이 가능하며 비용을 따로 받지 않기에, 각자 사정에 맞게 기부를 하면 된다.
그리고 아쉬람은 맨발이 기본이며 아무런 통제가 없기에, 각자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아쉬람 뒷문으로 아루나찰라 산에 오르는 길이 있다.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에 들른 비루팍샤 케이브. 이 곳은 마하리쉬가 독립된 거처로 삼은 곳으로 14년 동안 머문 곳이다.
들어가보면 깨끗하고 조용하지만, 습하고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