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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성자 6 - 마드바차리야

마드바차리야가 건립한 크리슈나 마타 사원

by 전영칠

마드바차리야(1238–1317)는 13세기 중세 인도의 영적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위대한 학자이자 성자이다. 그는 브라흐마수트라에 대한 주석을 통해 힌두교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베단타 학파 내에 이원론을 주창하는 드바이타(Dvaita) 학파를 창설했다.

그의 사상은 당시 지배적이던 아디 샹카라의 불이원론과 라마누자의 제한적 불이원론에 맞서 신과 개인의 영혼은 영원히 분리되어 있다는 독창적이고 명쾌한 입장을 확립하며 바크티(헌신적인 사랑) 운동에 철학적 근거를 제공했다.



1. 생애와 배경: 비범한 탄생과 출가


가. 출생과 초기 삶

마드바차리야는 서기 1238년경, 오늘날 카르나타카 주의 우두피 근처 파즈카 마을에서 브라만 가문의 나도우 일라야와 베다바티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원래 이름은 바스데바였다.

어린 시절부터 바스데바는 비범한 지성과 신체적 강인함을 보였다. 그는 특히 베다와 철학적 논쟁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종종 주변 학자들을 놀라게 하는 통찰력을 발휘했다.


나. 출가와 '마드바'라는 이름

10대 초반, 바스데바는 세속적인 삶을 버리고 출가하여 아치우타프렉샤라는 스승에게서 산야사(출가 생활) 서약을 받았다. 이때 그는 푸르나프라즈나(완전한 지혜)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다.

그러나 곧 스승은 그의 뛰어난 지식과 논쟁 기술을 인정하고 그에게 아난다 티르타(기쁨의 순례자)라는 이름과 더불어 마드바차리야(Madhvāchārya)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마드바'는 산스크리트어로 '꿀' 또는 '단맛'을 의미하며, 이는 그가 베다 지식의 정수를 완전히 파악했음을 상징한다.


다. 학문적 여정과 드바이타 정립

마드바차리야는 스승의 전통적인 아드바이타적 가르침에 만족하지 못하고, 베다, 우파니샤드, 브라흐마수트라 등을 심도 깊게 연구했다. 그는 초기 힌두 경전들이 아드바이타가 주장하는 '궁극적인 비이원성'이 아닌, 신(브라흐만)과 영혼(아트만)의 명확한 분리를 지지한다고 확신하게 된다.

그는 인도 전역을 순례하며, 특히 북인도의 베다 중심지였던 곳들을 방문하여 당대의 유명한 학자들과 공개적으로 논쟁하며 자신의 드바이타 철학을 전파했다.


<참고> 브라흐만 : 진리, 지복, 궁극적 실재, 우주의 근원

브라흐마 : 창조의 신, 인격신, 힌두교의 3주신 중 하나



2. 드바이타 철학: 이원론의 정수


마드바차리야의 가장 큰 공헌은 베단타 철학 내에서 드바이타 시단타(이원론적 결론)를 체계적으로 정립한 것이다.


가. 다섯 가지 영원한 차이

드바이타 철학의 핵심은 다섯 가지의 영원하고 실제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샹카라의 아드바이타가 주장하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라는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신(이슈와라)과 개인의 영혼(지바)의 차이

신(이슈와라)과 물질(자다)의 차이

개별 영혼(지바)들 간의 차이

개별 영혼(지바)과 물질(자다)의 차이

다양한 물질적 존재(자다)들 간의 차이


마드바는 이러한 차이들이 임시적인 환영(마야)이 아니라, 우주의 영원한 현실(Satya)이라고 주장했다. 즉, 비슈누 신은 독립적이며 완전한 실재이고, 모든 다른 실재(영혼과 물질)는 신에게 의존적이며 불완전한 실재라는 것이다.


나. 영혼의 세 가지 분류

마드바차리야는 개인의 영혼(지바)들 역시 본질적으로 다르며, 그들의 구원(목샤) 가능성에 따라 세 가지 범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영혼의 궁극적인 동일성을 주장하는 다른 베단타 학파들과의 주요 차이점이다.


목샤-요갸스 :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 영혼들. 신에 대한 헌신과 지혜를 통해 최종적으로 해탈을 이룬다. (대부분의 영혼)

니티야 삼사린 : 영원히 윤회하는 영혼들. 이들은 덕과 악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현세에 머문다.

타모-요갸스 : 영원한 파멸(타마스)로 예정된 영혼들. 이들은 오직 악행을 일삼으며 영원히 지옥과 고통에 머물게 된다.


이러한 구원의 숙명론적 요소는 마드바차리야 철학의 가장 논쟁적인 부분 중 하나이다.


다. 실재론과 진정한 지식


마드바차리야는 이 세상과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실재하며, 꿈이나 환영(마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강력한 실재론을 지지했다.

그에게 진정한 지식은 현세의 다양성과 차이점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 따라서 구원은 이러한 차이점을 이해하고, 독립적인 주권자이신 비슈누 신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과 헌신(바크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3. 헌신과 구원


마드바차리야의 드바이타 철학은 바크티, 즉 신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구원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강조한다.


가. 바크티의 중요성

마드바에게 구원(목샤)은 자아와 브라흐만이 하나임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신인 비슈누(크리슈나의 모습)를 직접 목격하고, 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오직 아프리타 바크티, 즉 흔들림 없는 지속적인 헌신을 통해서만 확립될 수 있다.

헌신은 단순히 감정적인 예배가 아니라, 즈냐나(지식)를 통해 신의 속성과 위대함을 명확히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신을 향한 사랑을 키우는 지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나. 카르마와 신의 은총

마드바는 카르마(업보)의 중요성을 인정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신의 은총(프라사다)만이 영혼을 윤회(삼사라)의 사슬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아무리 선한 카르마를 쌓더라도, 신의 은총 없이는 구원이 불가능하며, 헌신은 신의 은총을 얻는 주요 통로이다.

해탈 후의 영혼은 신의 완전한 현존 속에서 영원한 봉사와 지복(至福)을 누리게 된다.


4. 문학적 유산과 순례


가. 주요 저작

마드바차리야는 힌두교 역사상 가장 많은 주석과 논문을 저술한 학자 중 한 명이다. 그의 저술은 서른일곱 권에 달하며, 특히 힌두교의 주요 세 가지 정경(프라스타나 트라야)에 대한 주석이 유명하다.


브라흐마수트라 바쉬야 : 드바이타 학파의 근간을 이루는 주석서. 신과 영혼의 영원한 이원성을 주장한다.

우파니샤드 바쉬야 : 열 개의 주요 우파니샤드에 대한 주석.

바가바드 기타 바쉬야 : 바가바드 기타에 대한 주석으로, 카르마 요가, 즈냐나 요가, 바크티 요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리그 바쉬야 : 리그베다의 몇몇 찬가에 대한 주석으로, 베다의 진정한 의미가 비슈누 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임을 주장한다.


나. 우두피와 크리슈나 사원

마드바차리야의 가장 중요한 유산 중 하나는 카르나타카 주 우두피에 위치한 크리슈나 마타 사원의 건립이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드와르카에서 온 배에 실려 있던 발 크리슈나(어린 크리슈나)의 신상을 기적적으로 구하여 이곳에 봉헌했다고 한다.

그는 우두피 사원을 중심으로 헌신적인 봉사와 드바이타 철학 연구를 위한 여덟 개의 수도원(아슈타 마타)을 설립하고 제자들에게 그 관리를 맡겼다.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드바이타 학파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5. 마드바차리야의 영향


마드바차리야는 당대의 지배적인 철학적 흐름에 대항하여 새로운 길을 개척한 혁명가였다.


철학적 다양성: 그의 드바이타 학파는 베단타 전통 내에 이원론적 관점을 확고히 자리 잡게 함으로써, 힌두교 철학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증진시켰다.

바크티 운동의 강화: 마드바의 명확한 이원론은 신과 신봉자 사이의 영원한 사랑과 봉사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이후 인도의 광범위한 바크티 운동에 강력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특히, 그는 구원 이후에도 영혼이 신의 현존 속에서 봉사하는 영원한 행복을 누린다고 가르쳤다.

제자 전통: 그는 수많은 제자를 양성했으며, 이들은 마드바차리야 이후에도 드바이타 학파를 남인도와 마하라슈트라, 오리사 등 북인도 일부 지역으로 전파하여 수백 년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마드바차리야는 1317년경, 우두피에서 신비로운 방식으로 사라지며 그의 영적 여정을 마무리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오늘날까지도 베단타의 사자(獅子)로 불리며, 신성한 지식과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인도의 영적 지형을 변화시킨 위대한 성자로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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