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 사원
힌두교 성자 연재의 다섯 번째 시간, 오늘은 인도의 정신적 지형을 바꾼 기념비적인 인물, 만다나 미슈라(?~ ? / 서기 8세기)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의 생애는 한 철학 유파의 거장이 진리의 추구 앞에서 어떻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위대한 성자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드라마 그 자체이다.
미슈라는 단순한 성자를 넘어, 힌두교의 핵심 교리인 아드바이타 베단타(불이일원론)가 인도 전역에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변혁의 상징이다.
만다나 미슈라는 8세기경 인도 미틸라(현 비하르 지역) 출신의 브라만 학자였다. 그는 당대 힌두교의 주요 학파 중 하나인 푸르바 미맘사 철학의 정점에 서 있었다. 미맘사 학파는 베다 경전 중 까르마 칸다, 즉 의례와 행위의 길을 강조하며, 신에게 도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엄격하고 정확한 제사와 의례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미슈라는 이 학파의 교리를 완벽하게 체화한,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힌두교의 위대한 변혁가: 만다나 미슈라의 삶은 당대 또 다른 천재 철학자인 아디 샹카라와의 역사적인 논쟁을 통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샹카라는 당시 인도 전역에서 '지혜의 길'을 설파하며 아드바이타 베단타(Advaita Vedanta)를 확립하고 있었다.
샹카라는 의례 중심의 미맘사 학파를 넘어 궁극적인 해탈은 오직 참된 지식(브라흐만과 아트만의 불이일원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샹카라는 미맘사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철학을 확고히 하기 위해 미슈라에게 논쟁을 제안했다.
이 논쟁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으며, 미슈라의 박학다식함과 샹카라의 신묘한 통찰력이 격돌했다. 흥미롭게도 이 논쟁의 심판은 미슈라의 학식 높은 미모의 아내인 우바야 바라티가 맡았다. 우바야 바라티는 두 학자에게 꽃으로 만든 화환을 걸어주었는데, 논쟁에서 패배하는 쪽의 화환이 먼저 시들 것이라고 예언했다.
결국 미슈라의 화환이 먼저 시들면서 샹카라의 승리로 논쟁이 끝났다. 미슈라는 자신의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약속대로 샹카라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학문적 자존심과 기득권을 버리고 지식과 영적 헌신의 길을 택했다.
이후 미슈라는 슈레스바라차리야(Suresvaracharya)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며, 아드바이타 베단타의 가장 중요한 주석가이자 샹카라의 네 핵심 제자 중 한 명으로 거듭나게 된다.
미슈라의 가르침은 그의 삶처럼 두 시기로 나뉜다.
미맘사 학자였던 시절, 그의 가르침의 핵심은 행위(카르마)와 베다의 권위에 있었다. 그는 베다의 지상주의를 주장하며,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는 베다에 명시된 의례와 제사를 완벽하게 수행함으로써 얻는 공덕(功德)이라고 설파했다.
샹카라의 제자가 된 후, 그의 가르침은 완전히 즈냐나 마르가(지혜의 길)로 전환된다.
아트만과 브라흐만의 통일성: 그의 핵심 교리는 "아트만(개별 자아)과 브라흐만(우주적 실재)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미맘사가 강조한 '행위'를 넘어선 궁극적인 진리였다.
세상의 환영성 (마야): 우리가 경험하는 물질적 세계는 진정한 실재가 아니며, 브라흐만에 대한 무지(無知, 아비드야)로 인해 생겨난 환영(마야) 임을 가르쳤다.
비베카 (식별): 모든 가르침의 목표는 영원하고 참된 것(브라흐만)과 일시적이고 거짓된 것(세상)을 식별하는 지혜를 얻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슈라의 영향력은 그의 개인적 삶의 변화 이상이었다.
아드바이타 베단타의 정통성 확립: 미맘사 학파는 베다의 의례를 철저히 고수하는 정통 브라만 계층의 지지를 받았는데, 미맘사의 거두였던 미슈라가 샹카라의 철학을 받아들이면서 아드바이타 베단타는 모든 정통 학파를 포괄하는 사상적 정통성을 얻게 되었다. 이는 샹카라의 철학이 인도 전역의 지식인층에 빠르게 확산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주석학의 발전: 슈레스바라차리야는 샹카라의 가르침을 더욱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주석을 달아 후대에 전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의 학문적 깊이는 아드바이타 베단타를 단순한 신앙이 아닌 강력한 철학 체계로 만드는 데 필수적이었다.
만다나 미슈라는 학자였을 때와 성자가 되었을 때 모두 중요한 저작을 남겼다.
만다나 미슈라 시기 (미맘사)
브라흐마 싯디: 그의 가장 중요한 미맘사 작품으로, 미맘사 철학과 베단타 철학 사이의 관계를 다루며, 샹카라와의 논쟁 이전에 이미 베단타 사상에 깊은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슈레스바라차리야 시기 (아드바이타 베단타)
바르티카 시리즈: 샹카라의 주요 저작들(예: 우파니샤드와 브라흐마 수트라에 대한 주석)에 추가 주석을 단 방대한 작업이다. 특히 《타이티리야 우파니샤드 바르티카》와 《브리하다란야카 우파니샤드 바르티카》는 아드바이타 베단타 주석학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스승
쿠마릴라 바타
미맘사 학파의 위대한 스승 중 한 명으로, 미슈라는 그의 학문적 영향을 깊게 받았다.
스승
아디 샹카라
미슈라의 삶을 바꾼 스승이다. 샹카라는 미슈라에게 '슈레스바라'라는 이름을 주고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제자이자 후계자로 삼았다.
제자 및 영향
아드바이타의 후대 학자들
슈레스바라의 저작과 주석은 이후 비댜란야와 같은 후대 아드바이타 학자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문헌은 오늘날까지도 아드바이타 철학 연구의 핵심 자료로 사용된다.
만다나 미슈라, 곧 슈레스바라차리야의 일생은 진정한 지혜는 자아를 버리는 데서 시작된다는 영원한 진리를 보여준다. 그의 삶은 힌두교 내에서 지혜의 길과 행위의 길이 어떻게 화합하고 통합되어 오늘날의 인도 정신을 형성했는지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열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