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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환규 Dec 13. 2024

업무에 적응하니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몸이 어제보다 훨씬 가볍다. 다리 근육 뭉침도 저녁보다는 덜하다. 아마도 몸이 점점 적응해 가는 것 같다. 아직 입차와 출차 모두 숙달되지 않아 약간의 두려움과 부담감은 남아 있지만, 이런 감정은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항상 따라오는 감정이라 오늘도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한다.     


어제부터 생각하고 있는 고민이 ‘서비스 매뉴얼’이다. 입으로 전해오는 서비스 절차를 매뉴얼로 만들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매뉴얼까지 만들면 더 힘들어지겠다는 걱정과 만들어도 쓸데가 없다는 생각이 매뉴얼 작성을 망설이게 만든다.      


출근을 위해 세수를 하는데 꼬리뼈 근처가 아팠다. 첫날 동료가 필자와 같은 방법으로 인사를 하면 힘들어서 오래 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던 말이 이해되었다. 이들이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한 이유도 결국 몸이 건강해야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에 건강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 정식으로 입차와 출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업무 선배로부터 주의 사항을 듣고 한가한 시간에 출차와 입차를 했다. 어제까지 입차와 출자에 대한 부담감으로 마음도 불편하고 긴장했지만 실제로 일하기 시작하니 혼자서 너무 심한 부담감을 느꼈다는 생각이 든다.     


근무 중 무전으로 주차유도원에게 인사를 똑바로 하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고객이 주차유도원이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제기한 것 같다. 주차유도원에게 인사를 받지 못했다고 백화점 고객센터에 불만을 제기하는 고객을 보면서 아르바이트생인 주차유도원의 인사 여부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점심시간 전후로 1시간 반씩 근무하느라 휴식 시간이 30분뿐이어서 점심을 급하게 먹었다. 직원들의 관심사는 점심 메뉴이다. 인기가 있는 메뉴는 빨리 소진되기 때문에 일찍 먹어야 하는데 빨리 먹으면 저녁 무렵 시장기가 돌고, 식당에 늦게 가면 인기 메뉴를 먹지 못하기 때문에 식사 시간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휴식 시간에 휴게실에 앉아있는데 직원 A가 들어오더니 혼자서 관리자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여기 관리자들이 주차 유도 요원들에게 똑바로 하라고 수시로 혼을 낸다는 것이었다. 똑바로 하지 않으면 근무 장소를 햇볕이 강해 일하기 힘든 곳으로 옮기겠다는 협박도 하는데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오전에 들었던 무전기에서 나오는 소리에 대한 불만인 것 같다. 그러면서 2년 정도 근무했는데 여기 관리자들은 리더가 지녀야 할 능력이 부족해 자기들끼리도 서로 비난하고, 자기는 못 하는 걸 다른 사람에게 강요한다는 둥 볼멘소리를 계속하기에 10분 정도 들어주고 휴식을 하겠다고 말하고 그 직원과의 대화를 중단했다.      


이 직원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 인력이 부족한 이유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대중교통의 불편함이다. 이곳은 신도시라 대중교통으로 서울까지 연결된 지하철이 있지만, 서울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이곳으로 오기 위해서는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노선이 많지 않아 접근이 불편하다. 자가 운전자의 경우 차량을 이용할 수 있게 인근 상가에 정기 주차 등록을 해주지만, 그렇지 않은 직원의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A도 버스를 이용하는데 1시간 이상 필요한 것 같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수원역에 있는 백화점의 경우 채용 모집 공모를 내면 사람들이 몰려 채용 공고를 자주 하지 않지만, 이곳은 수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관리자와 다투고 그만두는 경우이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질책 위주로 직원들을 통제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견디질 못하고 그만두는 것이다. 출퇴근 교통 사정과 같이 물리 환경이 어려우면 심리 환경이라도 개선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다른 곳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직장을 옮기면서 이곳을 그만두는 것 같다. 이렇게 되니 사람은 부족하고 서비스 수준은 유지해야 하므로 관리자도 스트레스를 받고, 이것을 다시 직원들에게 터뜨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여기서 근무하면서 소위 말하는 관리자들이 근무자들의 긴장을 풀어주거나 격려와 같은 심리 에너지를 높여주는 행위를 보지 못했다. 하루에 한 번씩 무전기에서 들리는 소리는 똑바로 하라는 질책뿐이다. 최저 임금을 받는 주차 요원들이 고객이 만족하는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든다. 

    

vip 주차장 입구에서 근무하는 젊은 여직원들을 보면서 참 성실하게 근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차가 들어올 때마다 말을 해야 하고, 좁은 공간에서 움직임도 제한적이라 힘들 만도 한데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내일부터 백화점 주차장이 바빠지는 날이다. 입차와 출자 업무에 서툰 필자로 인해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에게 도움보다는 부담이 될까 걱정이 된다. 아마도 이렇게 미리 걱정하는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발레파킹을 하기 전에는 생각할 시간이 많아 이런저런 걱정도 하고 그랬는데 몸도 피곤하고, 여유 시간도 부족해 걱정과 같이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 내일 일은 내일 현장에서 생각하자.    

 

근무가 끝날 무렵 카니발 한 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발레파킹을 원하지 않는 차량이라 발레를 위해 멈춤 없이 주차장을 쏜살같이 달리는 것이었다. 중간에 차에 타려는 사람이 있어도 멈추지 않고 사람이 없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 피하면서 갔다. 이런 차를 첫날부터 몇 번 경험했는데 도대체 이런 좁은 공간에서 과속으로 차를 몰아야 하는지 운전자의 속내가 궁금했다. 


동료의 배려로 7시 반 정도에 고객대기실에서 잠깐 쉴 수 있었다. 그냥 쉬는 것이 아니라 차를 찾으러 오는 고객을 맞이하면서 고객이 없는 동안만 의자에 앉았다. 그곳에서 물을 처음 마셨다. 의자에 앉아있으니 직원용 업무 수칙이 눈에 띄었다. 그중 하나가 ‘공부하지 마라’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근무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합당한 조치를 하겠다는 경고도 있었다. 아마도 휴대폰을 지참할 수 없기 때문에 고객이 없는 동안 책을 읽거나 다른 곳에 신경을 쓰느라 고객 맞이에 소홀함을 방지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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