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배우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이혼을 앞둔 부부야 예외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부에게는 삶에서 배우자가 차지하는 지분은 거의 전부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많은 부부가 퇴직 후 부부관계의 변화에 관한 관심은 그다지 많지 않다. 퇴직자가 직장에 다닐 때에는 부부는 각자의 루틴이나 생활방식에 따라 시간을 보냈다. 집에 있는 사람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기 전까지의 시간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직업이 없다면 집안일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운동이나 문화센터 등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렇게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던 사람도 배우자가 퇴직 후에는 시간 활용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퇴직자가 퇴직하면 부부는 심하게 말하면 24시간 같은 공간에서 지내야 할 수도 있다. 퇴직 전에는 한 사람이 출근하면 다른 사람은 배우자를 의식하지 않고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지만, 퇴직 후에는 서로가 배우자의 생활방식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한다. 퇴직자를 집에 두고 외출을 하려면 퇴직자의 식사에도 신경을 써야 해 퇴직 전보다 제약을 많이 받는다. 이런 상황이 되면 부부 모두의 스트레스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
부부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때 평소 상대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남편이 직장을 다니고, 아내가 집안일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 사례를 가지고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필자의 지인 중에는 아내와 사소한 모든 것까지 같이 공유하는 부부가 있다. 이런 대화 중에는 당연히 직업에 대한 고민, 자녀의 진로 등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도 평소 배우자와 많은 대화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 부부는 운동화를 살 때도 배우자와 상의할 정도로 대화를 많이 한다. 이들은 서로 가장 친한 친구이자 평생 함께할 파트너라고 여긴다고 주저함이 없이 말한다.
이들과 또 다른 형태의 부부가 있다. 회사 일이나 집안일은 남자가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배우자는 남편의 결정에 따르기만 했다. 남편은 회사 일에 대해서는 고민이 있더라도 혼자서 결정하고 배우자에게 통보만 했다. 퇴직도 혼자서 결정하고 배우자에게는 언제 퇴직한다고 일방적으로 통고했다. 퇴직 후에도 자신이 집에 있을 때 배우자의 외출을 불편해했고, 배우자가 밥까지 차려주기를 원했다.
남편이 배우자를 바라보는 차이는 명확하다. 배우자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상의하는 사람은 배우자를 파트너 혹은 동반자라고 생각하지만, 혼자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통보하는 사람은 배우자를 자신과 동등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격이나 능력이 자신보다 아래에 있다고 여기는 태도이다. 즉, 자신의 부하 혹은 가사도우미와 같은 취급을 하는 것이다.
배우자를 가사도우미로 여기는 사람은 배우자에게 일방적인 관계를 만든다. “밥 차려줘. 다 먹었으니 치워” 혹은 “오늘은 친구를 만나니까 준비해”와 같은 지시어를 사용하는 대화를 한다. 배우자는 자신에게 종속된 사람이니 배우자의 사생활은 전혀 존중하지 않고, 배우자는 당연히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시간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조선 시대에 사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남편의 이런 행태는 관계의 단절을 가져온다. 시간을 같이 보내더라도 마음을 나누는 소통은 드물다. 그저 비즈니스 하는 듯한 대화뿐이다. 같은 공간에 있을 뿐이지 각자 다른 세상을 사는 것과 같은 벽을 인식하면서 ‘남보다 못한 사이’와 같은 단절감을 느낀다.
배우자와의 단절감은 외로움과 고독감을 폭발시킨다. 직장에서 힘든 일을 겪었을 때 많은 동료 중에서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면 엄청 서운함을 느낄 수 있다. 이때 느끼는 서운함이나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정도보다 훨씬 심한 것처럼 배우자와 단절되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이나 허전함은 자신의 과거조차 부정할 정도로 심할 수 있다. 이럴 때 사랑과 소속의 욕구에 대한 결핍을 느끼면서 ‘우울증’을 경험할 수 있다.
사랑과 소속의 욕구는 배우자와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부부 사이에 사랑의 욕구와 소속의 욕구는 굉장히 중요하다. 집에서 배우자로부터 사랑과 소속의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집 밖에서 찾으려고 한다. 제삼자와 관계를 맺는 외도를 통해 욕구를 충족하기도 하고, 유흥업소 종사자와의 관계와 같은 건강하지 못한 관계에 의존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관계의 부부가 맞이할 결말은 확실하다.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그 원인을 상대에게 돌리면서 상대 탓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 부인이 “당신 때문에 내가 이렇게 힘들어”,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래” 혹은 “우리는 남보다 못한 사이야”와 같은 말을 하면서 남편을 비난한다. 이렇게 원망하는 말이 오갈수록 대화는커녕 서로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나고, 사소한 일에서도 시비가 붙어 집안 분위기는 항상 싸늘하거나 폭풍 직전의 모습과 같다.
이런 집안 분위기는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부부가 다투면 누군가에게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하고 싶어진다. 이때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상이 자녀이다. 엄마로부터 하소연하는 전화를 받고 끊자마자 아빠로부터 엄마를 비난하는 전화를 받는 자녀는 부모 모두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서 부모의 전화를 피하게 된다. 부모의 전화를 피하는 자녀가 부모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부부로서는 배우자와 관계도, 자녀와의 관계도 멀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자녀와의 관계 단절은 손주와의 관계도 단절시킨다. 퇴직자에게 손주는 인생에 활력을 주는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다. 퇴직자는 자녀가 손주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바쁜 직장생활로 인해 자녀들에게 제대로 베풀지 못한 사랑과 관심을 손주에게 베풀 준비하게 된다. 손주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고, 손주를 돌보면서 여전히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퇴직자의 이런 바람에도 부모와 관계가 불편한 자녀는 부모와의 교류를 가능한 한 줄이게 된다. 퇴직자의 바람이 사라진 것이다.
부부관계의 악화는 퇴직자 개인의 삶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이가 나빠질수록 일상 자체가 어렵고 힘들게 된다. 생활비나 건강 등 불편하거나 해결해야 할 상황이 생길 때마다 서로가 배우자를 탓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일상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게 만들고 불안감이나 우울감이 심해질 수 있다.
자존감이 낮아질 수도 있다. 자존감은 ‘자아존중감’의 줄인 말로 자신을 존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부부 사이가 나빠지면 대화를 피하거나 대화를 하더라도 싸움으로 이어지면서 서로에게 쌓인 서운함이나 오해가 폭발하게 된다. 이럴 때마다 ‘내가 문제가 있나?’ 혹은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인가?’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서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일상이 재미가 없고, 에너지가 고갈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신체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처럼 배우자와의 일방적인 관계는 대화의 단절로 이어지기 쉽다. 이럴 때 서로에게 친밀감 대신 단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기분은 ‘관계가 불편하다’라는 수준을 넘어 개인의 행복은 물론이고 가족 전체의 행복을 해치는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