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와의 관계를 재설정하라

by 최환규

퇴직자가 퇴직으로 인해 다양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런 변화는 배우자에게도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이로 인해 퇴직자와 배우자 사이에 퇴직 전보다 더욱 친밀한 관계가 유지될 수도, 불화로 인해 부정적인 관계로 전락할 수도 있다.


퇴직자와 배우자 사이에 일어나는 대화의 중심에는 퇴직자와 배우자와의 관계가 큰 영향을 미친다. 직장인이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대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일할 때 필요한 대화 방법과 퇴직 후 가족 혹은 지인과 하는 대화 방법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가장 쉬운 예로 직장에서 일할 때는 업무에 필요한 정보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주고받느냐가 대화의 초점이 될 수밖에 없다. 퇴직 후에는 업무 중심의 대화가 아니라 관계 중심의 대화가 주를 이루게 된다. 예를 들어, 친구와 만났을 때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와 같은 말로 대화를 시작하고, 가족과 식사할 때는 “무슨 일 있어?”라고 대화를 시작하기 쉽다. 이처럼 가족과의 일상적인 대화는 직장에서 논리나 효율성을 따지는 대화보다는 서로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고, 지지하고, 함께 울고 웃는 대화가 필요하다. 때로는 사소한 다툼 속에서도 ‘우리는 가족이다’라는 끈끈함이 확인되는 시간이어야 한다.

퇴직자와 배우자 사이에는 두 가지 대화 통로가 존재한다. 하나는 사고 중심의 대화를 위한 통로이고, 다른 하나는 감성 중심의 대화를 위한 통로이다. 가장 이상적인 대화 방법은 머리와 가슴을 이어주는 통로가 제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것이다. 이렇게 머리와 가슴을 통해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을 ‘공감’이라고 한다.

퇴직자와 배우자의 대화는 퇴직자가 배우자를, 배우자가 퇴직자를 어떻게 여기느냐에 따라 대화 방법이 달라진다. 만약 퇴직자가 배우자를 가사도우미처럼 인생의 동반자가 아닌 자신의 필요에 따라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일방적인 대화를 이어간다면 대화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 혹은 지시를 배우자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주입하는 방식의 대화가 된다. 이때 배우자는 자신을 ‘퇴직자에게 고용된 가사도우미’로 여기게 된다.


이런 관계는 부부관계에서도 드러난다. 부부관계는 가장 내밀하고 솔직한 대화 과정이다. 만약 관계가 소원하거나 갈등이 있는 부부 사이에서의 성관계는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새로운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남편이 아내를 ‘욕구 배설의 통로’로 인식할 때 일어난다. 남편이 배우자에게 애정을 충분히 표현하면서 관계를 갖는 대신 사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 배우자는 ‘남편의 노예’로 인식하게 된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흔히 말하는 ‘욕구불만’ 상태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여자가 남자에게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할 때 부정적인 시선을 느끼게 된다. 이런 이유로 배우자는 남편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면서 오랫동안 불만을 느끼게 된다. 이럴 때 남편 외의 사람으로부터 존중받고 예쁘다는 말이라도 들으면 ‘나도 아직 매력이 있구나’라고 존재감을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이 사람에게 빠져들면서 배우자 대신 의존하게 된다. 이것이 불륜으로 이어지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부정적인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퇴직자는 퇴직 전 배우자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부부의 가장 바람직한 관계는 동반자 혹은 파트너 관계이다. 이런 관계는 연애 초기 시절의 모습과 유사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틈만 나면 상대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노력한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깊은 속마음까지 숨김없이 털어놓고, 함께 웃고 투덜거리고, 다른 누구보다 연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자연스럽게 즐겼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서로를 격려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가장 친한 친구의 모습이 배우자를 동반자 혹은 파트너로 인정하는 모습이다.


동반자는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안정감을 느낀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 사람이 내 곁을 지켜줄 거라는 깊은 신뢰가 있다. 서로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함께 있을 때 가장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낀다. 세상이 변하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도 배우자만큼은 변함없이 본문이라는 단단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동반자는 서로의 독립성과 성장을 응원한다. 연애하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상대를 구속한다고 사랑이 깊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를 구속할수록 상대는 자유를 잃으면서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연인이든 부부든 바람직한 모습은 ‘따로 또 같이’이다. 각자의 취미, 친구 관계, 배우고 싶은 것 등을 서로 존중하고 지지해 준다. ‘내가 은퇴했으니 나를 위해 집에만 있어라’가 아니라 배우자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도록 응원하는 것이다. 새로운 활동을 하고 싶을 때 지지해 준다. 서로의 성장을 보면서 자극받고 함께 발전해 나가기도 한다. 이런 태도를 유지할 때 부부관계도 더욱 친밀해진다.


동반자는 미래를 함께 설계해 간다. 부부가 함께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지, 어떤 활동을 할지, 재정은 어떻게 관리할지 등 미래에 대한 계획을 함께 세운다. ‘당신 일은 당신이 알아서 해’가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까?’를 함께 고민하고 결정해 나간다.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노력하는 과정에서 유대감과 애정이 더욱 돈독해진다.


배우자를 동반자로 인정하는 첫 번째 단계가 ‘솔직한 대화’이다. 남성 퇴직자 중에는 ‘남자는 강해야 한다’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 배우자와 대화하면서 해결하기보다는 혼자서 끙끙대거나 외부 사람과 의논해 해결방법을 결정해 배우자에게 통보하기도 한다. 이럴 때 배우자는 소외감을 느끼면서 상대가 자신을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인식하게 된다.

이런 부정적인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대화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먼저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대화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화 주제는 제한하지 말고 자신의 머리와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끄집어내야 한다. 이때 상대의 이야기를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들어주면서 ‘내가 당신 말을 제대로 듣고 있다’라는 신호를 배우자에게 보낸다. 물론,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 시간이 기다려지고, 대화를 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경험은 부부 사이의 대화를 촉진하는 긍정적인 자극이 된다.


대화와 함께 일상의 책임을 나눌 필요가 있다. 퇴직 후에는 집안일이나 생활 속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책임들을 함께 의논하고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누가 뭘 더 한다, 덜 한다를 따지기보다 ‘어떻게 하면 둘 다 편하게 지낼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고 역할을 유연하게 조절하는 것이다. 함께 장을 보고 요리를 하거나 집안을 정리하는 것도 동반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동반자는 갈등을 피하지 않고 건강하게 다룬다. 싸우지 않는 부부는 없다. 중요한 건 싸우는 방법이다. 감정적으로 격해지기 전에 잠시 멈추고,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상대의 의견을 들으려고 노력한다. 이때 다툼의 원인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과거의 일을 들추거나 비난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화해 후에는 확실하게 관계를 봉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같은 이유로 다툼이 반복되지 않도록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나누고, 마무리를 확실하게 한다.


이처럼 동반자 혹은 파트너 관계는 퇴직 후 삶에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함께 웃고 울며, 새로운 인생 여정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배우자와 함께 이런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면 남은 삶이 훨씬 더 풍요롭고 의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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