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드넓은 초원과 험준한 산맥을 누비며 이름 높던 사냥개 ‘나비’가 있었다. 나비는 날카로운 후각과 빠른 발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으로 숲 속의 맹수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만큼 노련하고 용맹했다. 매일 아침, 주인의 출격 신호를 기다리며 꼬리를 흔들고, 숲 속을 달리며 먹잇감을 추적하는 것이 나비의 삶의 전부이자 가장 큰 기쁨이었다. 나비는 자신의 역할과 능력이 곧 자신의 존재 의미라고 굳게 믿었다.
세월이 흘러 나비의 털은 희끗희끗해지고, 눈은 흐릿해졌으며, 다리는 예전처럼 힘차게 뛸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주인은 나비를 편안한 마당 한 귀퉁이에 묶어두고 더 이상 사냥에 데려가지 않았다. 젊고 기민한 사냥개들이 아침마다 활기차게 숲으로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나비는 끝없는 허무함과 공허함에 휩싸였다. “나는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구나. 내 존재의 의미는 사라졌어.”라고 한탄했다. 나비는 마당 끝에 축 늘어져 한숨만 쉬었다.
어느 날, 마당 구석에서 묵묵히 땅을 갈던 ‘늙은 호미’가 나비에게 말을 걸었다. 늙은 호미는 수십 년간 밭을 갈며 땅의 이치와 삶의 지혜를 깨달은 존재였다.
“나비야, 왜 그리 슬픔에 잠겨 있느냐? 한때 숲의 왕이던 너의 기상이 다 어디로 사라지고 그런 모습으로 있느냐?”
나비는 풀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호미님, 저는 더 이상 사냥개로서의 쓸모를 잃었습니다. 이 좁은 마당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제 삶의 가치가 사라졌습니다.”
늙은 호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비야, 네가 ‘쓸모’라고 여기는 것이 사냥 능력뿐이더냐? 물론 너의 사냥 실력은 대단했지. 하지만 네가 가진 가치는 그것뿐이 아니란다. 너의 삶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껍질을 벗고 다른 모습으로 피어날 때가 된 것뿐이야.”
호미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첫째, 네 발아래 놓인 작은 세상에 눈을 돌려보렴. 숲 속에 있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마당의 풀벌레들, 꽃잎에 맺힌 아침 이슬,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느껴보렴. 이전에는 몰랐던 소소한 기쁨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세상은 숲만큼이나 넓고, 너의 시선은 사냥감만을 쫓는 데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란다.”
“둘째, 너의 경험과 지혜를 새로운 방식으로 나누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숲의 지형과 맹수들의 습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으냐? 가끔 마당을 지나가는 젊은 강아지들에게 너의 모험담과 지혜를 들려주어라. 너의 이야기는 그들에게 용기와 통찰력을 줄 것이고, 너는 그들을 통해 다시금 ‘유용한 존재’ 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익숙했던 굴레를 기꺼이 내려놓으렴. 너를 묶고 있던 줄이 사냥개로서의 ‘정체성’이었다면, 이제 그 줄을 스스로 풀어버릴 때가 되었다.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면 새로운 씨앗을 뿌릴 자리가 없단다. 너의 존재 가치는 사냥 능력에만 있는 것이 아니야. 그저 ‘나비’라는 존재 자체로 너는 충분히 의미 있고 소중하단다. 진정한 용기는 낯선 마당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는 데 있단다.”
나비는 늙은 호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비는 호미의 말이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웠지만, 호미의 조언대로 해보기로 했다. 마당의 작은 생명들을 관찰하며 자연의 섬세함을 느꼈고, 어린아이들이 다가와 쓰다듬어 주면 온 마음을 다해 기쁨을 표현했다. 젊은 강아지들이 찾아오면 옛 숲 속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강아지들은 나비의 지혜로운 눈빛과 굳건함에 나비를 존경했다.
시간이 흐르자 나비는 자신을 마당 끝에 묶인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라 여기지 않게 되었다. 나비는 더는 숲을 누비는 사냥개가 아니었지만, 마당의 수호자이자, 아이들의 친구이자, 젊은 강아지들의 지혜로운 스승이 되어 있었다. 나비는 ‘사냥개 나비’로서의 삶은 끝났지만, ‘나비 그 자체’의 삶은 새로운 의미와 풍요로움으로 가득 찰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는 것처럼 새로운 삶은 대개 새로운 정체성이나 역할을 수반한다.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미혼에서 기혼으로, 직장인에서 퇴직자로의 전환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퇴직의 경우, 직업이 주던 사회적 지위, 소속감, 그리고 매일의 루틴이 사라지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 쉽다. 퇴직으로 인한 정체성의 공백을 채우고, 자신을 재정의하며,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은 내면의 깊은 탐색과 성찰을 요구하는 고된 노력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정과 익숙함을 추구한다. 오랫동안 계속된 습관, 환경, 관계는 편안함과 예측 가능성을 제공했다. 새로운 삶은 이러한 익숙한 틀을 깨고 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익숙함이라는 안정된 ‘울타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의지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는 마치 오랫동안 한자리에 있던 큰 바위를 움직이는 것처럼 많은 에너지를 써야 바위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삶은 단순히 과거의 것을 멈추는 것을 넘어 미래를 향한 새로운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는 것을 포함한다. 목표가 명확하지 않으면 방향을 잃고 헤매기 쉽다. 의미 있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내면의 깊은 탐색과 고민을 요구하며, 일단 목표를 설정하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 수립과 꾸준한 실행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단순히 외부 환경이 바뀌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과거의 제약을 뛰어넘어, 능동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만들어가는 창조적인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편안함을 포기하고, 불확실성과 맞서 싸우며, 끊임없이 배우고 적응하려는 꾸준하고 의식적인 노력이 뒤따라야만 진정으로 의미 있는 ‘새로운 삶’을 꽃피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