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 중에는 ‘나는 소통 능력이 뛰어나다’라는 착각에 빠져있는 사람이 많다. 상사가 이런 착각에 빠지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솔직한 피드백이 어렵기 때문이다. 부하는 상사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 평가에 대한 걱정 혹은 상사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 등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부하는 이런 위험한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 상사에게 전달되는 피드백은 긍정적으로 걸러지거나 모호하게 표현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정보 왜곡 현상 때문이다. 상사는 부하가 자신의 지시를 잘 따르고,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이를 자신의 뛰어난 소통 능력 덕분이라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상사의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 부하의 숨은 노력이나 순응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상사의 이런 착각으로 인해 상사는 자신의 소통 능력을 실제보다 과장되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소통에 대한 상사와 부하의 정의 차이도 상사의 착각에 한몫한다. 상사는 자신의 지시가 명확하고, 전달력이 강하며,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리드하는 것을 ‘뛰어난 소통’으로 정의할 수 있다. 즉, 주로 하향식(top-down) 한 방향 소통에 익숙할 수 있다. 반면, 부하는 상사가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며, 피드백을 수용하고, 쌍방향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것을 ‘좋은 소통’으로 여긴다. 이처럼 상사와 부하의 소통에 대한 정의가 서로 달라 상사는 자신이 소통을 잘한다고 생각하더라도 부하는 상사의 소통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이 소통 능력이 뛰어나다고 착각했던 상사는 퇴직 후 소통의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다. 상사가 자신의 소통 능력을 과대평가했던 배경에는 직장에서의 ‘권력’, ‘역할’, ‘환경’이라는 요소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퇴직은 상사의 여러 보호막을 제거하면서 상사의 소통 능력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된다.
상사는 직장에 있을 때 자신의 지위와 권한을 바탕으로 지시하거나 명령하는 방식으로 소통했다. 부하는 상사의 지시가 일방적이고 상식적이지 않더라도 인사고과나 업무 완수라는 목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용하고 따랐다. 상사는 이런 부하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명확하게 소통했기 때문에 다들 잘 따르는구나’라고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퇴직 후에는 직장에서 누렸던 모든 권력이나 지위가 사라진다. 가족 구성원(배우자, 자녀, 손주)이나 지역사회 지인들은 퇴직자의 ‘지시’나 ‘명령’에 따를 이유가 없다. 직장에서의 습관대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지시하거나 조언하면 듣는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끼고 대화를 회피하게 된다. 의견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퇴직자의 태도는 즉각적인 반발이나 무시로 이어질 수 있다.
어쩌면 퇴직자는 직장이라는 특수한 환경의 피해자일 수 있다. 직장에서는 특정 전문 용어, 조직 문화에 맞는 대화 방식, 그리고 공유된 목표와 배경지식이 있었다. 직장이라는 환경에서는 비언어적 단서나 짧은 지시만으로도 원활한 소통이 가능했을 수 있다.
직장이라는 환경에서 벗어나는 순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퇴직자는 일상생활이나 가족과의 대화에서 직장 내 전문 용어를 사용하거나 과거 직장에서의 에피소드만 반복해서 늘어놓는다면 상대는 지루해하거나 퇴직자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퇴직자가 과거의 특정 경험에만 초점을 맞추고 새로운 것에 대해 배우려 하지 않으면 젊은 세대나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공통의 대화 주제를 찾기 어려워 소통의 폭이 극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퇴직 후 소통 실패가 반복되면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소통 능력의 약점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많은 퇴직자는 자신이 소통 능력이 부족하다고 인정하기보다는,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 “다들 나를 이해 못 해” 혹은 “사회생활을 안 해본 사람들이 뭘 알겠어” 등과 같이 다른 사람이나 사회를 탓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합리화하려 한다. 퇴직자의 이런 태도는 결국 더욱 심각한 관계 단절로 이어진다.
퇴직 후 경험하는 소통의 어려움은 단순히 정보 부족을 넘어, 과거 자신의 ‘착각’으로 인해 제대로 개발되지 못했던 대인관계 소통 기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어려움은 결국 퇴직자의 고립감, 외로움, 그리고 삶의 만족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