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가 지루함을 이겨내기 쉽지 않은 이유

by 최환규

얼마 전에 대기업을 퇴직한 후배를 만났다. 후배에게 퇴직하고 난 다음 지내기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시간이 너무 안 가 하루를 보내기가 너무 어렵다”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 후배와는 퇴직 한 달 전에 만나 “다른 퇴직자를 보면 남는 시간을 보내기 어려워한다”라고 말하면서 여유 시간에 할 소일거리를 만들라고 조언했었다. 이때 후배는 시간 보낼 계획을 모두 세워뒀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이 없다고 장담하는 것이었다. 많은 퇴직자는 후배처럼 남는 시간을 보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직장인은 퇴직할 때까지 열심히 일한다. 퇴직이 예정된 사람 중에는 퇴직 몇 달 전부터 주어진 업무에서 벗어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직장인도 있다. 어쨌든 퇴직 전에는 출근해 일을 하거나 동료나 후배와 만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가능성이 적다.


하지만 퇴직한 직후부터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갑자기 직장에서 일하던 시간에 출퇴근 시간까지 더해 하루에 최소 10시간 이상 자신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퇴직 즉시 재취업을 하지 않는다면 퇴직으로 인한 자유 시간 모두를 계획적이고 생산적으로 사용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하는 일 없이 보내는 시간만큼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퇴직 전 시간 활용에 대한 계획을 세웠더라도 직장에 있을 때보다는 한가롭다. 주 5일 내내 근무시간만큼 취미 활동을 하거나 운동을 하지 않는 한 시간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필자의 후배처럼 퇴직자들이 지루함을 힘들어하는 이유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목표 및 역할의 상실이다. 직장 생활은 개인에게 업무 달성이나 승진과 같은 명확한 목표와 직장인이나 관리자와 같은 사회적 역할을 부여한다. 퇴직은 이러한 목표와 역할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사건이다. 명확한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면 에너지를 쏟을 곳이 없어지고 방향성을 잃게 되어 지루함과 공허함을 느끼기 쉬워진다.


직장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동료들과 교류하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장소였다. 퇴직 후에는 이러한 사회적 상호작용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어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기 쉽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의미 있는 관계가 부족해지면 외로움과 더불어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둘째, 일상의 단조로움과 건강한 자극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규칙적인 출퇴근, 업무 처리, 회의 등 직장 생활은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과 예측 가능한 루틴을 제공했다. 퇴직 후에는 이러한 외부적인 자극과 구조화된 일상이 사라지면서 하루하루가 비슷하게 반복되고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단조로운 생활로 인해 지루함을 느끼기 쉬워진다.


직장 생활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생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효능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러한 효능감이 사라질 때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지루함과 함께 무기력감, 나아가서는 공허함과 허무함을 느낄 수 있다.


지루함은 단순한 일시적인 감정 상태로 그치지 않고 개인의 심리적, 행동적, 사회적, 신체적 측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심리적 영향으로는 부정적 감정이 증가한다. 지루함이 오랫동안 계속되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 우울감, 무기력감, 분노, 좌절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증폭된다. 행동적 영향으로는 부정적 대처 방식이다.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과도한 TV 시청, 인터넷 사용, 음주, 흡연 등 건강하지 않거나 소모적인 행동에 의존할 가능성이 커진다. 사회적 영향으로는 가족 관계의 긴장과 함께 사회적 고립이 심화될 수 있다. 배우자나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많아지지만, 의미 있는 활동을 공유하지 못하고 지루함으로 인한 예민함이나 무기력감이 계속되면서 가족 간의 갈등이나 긴장이 증가할 수 있다. 신체적 영향으로는 건강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지루함은 종종 육체적인 피로감과 연결되어 활동하지 않아도 늘 피곤하고 힘이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 또한, 활동량 감소와 건강하지 못한 생활 습관은 비만, 고혈압, 당뇨 등 각종 만성 질환의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지루함을 건강하게 해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상생활에 대한 재설계가 필요하다. 규칙적 루틴은 시간의 방향과 예측 가능성을 제공해 불안함과 지루함을 낮추고. 시간 활용에 대한 자율적 선택은 의미와 동기는 높인다. 이를 위해 하루를 블록으로 나눠 시간표를 만든다. 예를 들어, 오전 자기 계발, 오후 외부 활동, 저녁 독서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시간 활용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면 건강한 취미를 선택한다. 새로운 취미는 신선한 자극과 사회적 만남과 성취감을 동시에 제공한다. 취미 활동의 시작은 지역 동아리나 체험 클래스 참여로 비용과 부담이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 매몰비용을 줄이는 방법이 된다. 이럴 때 결과물이 있는 활동을 하면 내적 동기를 강화함과 동시에 자기효능감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지루함을 피하려는 충동으로 음주, 도박, 폭식, 충동 쇼핑 등을 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문제가 악화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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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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