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수 씨는 퇴직 후 부쩍 아들 민규가 눈에 밟혔다. 민규는 취업 준비가 쉽지 않은지 표정이 늘 어두웠다.
일요일 저녁 모처럼 가족이 다 모인 식탁에서 박동수 씨는 “민규야, 요즘 취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네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냐? 아버지 때는 취업을 위해 발로 뛰는 게 기본이었어. 정보는 발품을 팔아야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인터넷에만 의지하지 말고 회사 문을 직접 두드려봐.”라고 아들에게 말했다.
민규는 수저를 들다 멈칫하면서 “아빠, 요즘은 다 온라인 지원이라 회사에 무작정 찾아가면 채용담당자에게 민폐예요.”라고 말했지만, 동수 씨는 아들의 말을 잘라먹었다. “민폐는 무슨 민폐야! 그런 생각으로 취업 준비를 하니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지. 그리고 머리도 좀 짧게 자르고. 넥타이는 그게 뭐냐? 예전에 내가 면접관으로 들어갈 때는 너 같은 복장은 점수 다 깎았다.” 동수 씨가 말을 할수록 민규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다. “아빠, 요새는 자유로운 복장을 선호하는 회사도 많아요.”라고 아빠와 다른 의견을 말했다.
하지만 동수 씨는 아들의 말을 듣자마자 “선호? 뭘 선호한다는 거냐! 네가 아빠 말대로 했으면 벌써 붙었을 거다! 몇 번을 말하냐. 요즘 애들은 노력도 안 하고 쉽게만 가려고 해.” 점점 동수 씨의 목소리가 커지자 민규는 결국 식탁에서 일어나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내는 조용히 한숨을 쉬며 민규가 남기고 간 식탁을 치웠다.
많은 퇴직자가 가족이나 지인과 이런 형태의 대화를 한다. 퇴직자가 가족이나 지인에게 조언할 때 상대가 방어적으로 반응하거나 퇴직자의 조언에 반발하는 상황은 흔하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이는 조언의 내용보다는 그 조언이 전달되는 방식과 그 기저에 깔린 관계 역학, 그리고 상대의 심리적 상태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다.
만약 퇴직자가 과거에 잔소리나 비난을 자주 해왔다면 듣는 사람의 뇌는 이미 ‘이 사람이 입을 열면 나를 지적하거나 통제하려 할 것’이라는 일종의 자동 방어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학습된 방어 기제는 아무리 좋은 의도의 ‘조언’이라 할지라도 과거의 잔소리 패턴과 연결 지어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퇴직자는 더 이상 직장 내에서 권위를 가진 상사나 절대적인 보호자인 부모의 위치가 아니다. 가족이나 지인은 퇴직자를 이제 ‘삶의 동반자’ 또는 ‘같은 성인’으로서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로 인식하려 한다. 퇴직자가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과거의 권위적 자세로 일방적인 조언을 하려 할 때 상대는 자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세대 간의 가치관이나 경험의 차이가 조언을 잔소리로 만들 수 있다. 퇴직자가 살아온 시대와 현재 젊은 세대가 살아가는 시대는 가치관, 기술 발전, 생활 방식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현재에는 맞지 않거나 심지어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퇴직자의 말을 듣는 사람은 퇴직자의 조언이 현재 자신의 상황이나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느낄 때 조언을 ‘현실을 모르는 답답한 이야기’ 또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낡은 생각’으로 간주하면서 퇴직자가 스스로 조언이라고 인식하는 말을 무시하거나 회피하기 위한 방어적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것이 퇴직자의 ‘라떼는 말이야’와 같은 잔소리로 인식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잔소리를 조언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마음가짐의 변화’이다. 박동수 씨가 아들에게 한 것처럼 상대를 통제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내가 이 사람을 고쳐야 한다’라는 생각 대신 ‘이 사람이 스스로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조언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때’가 더 중요하다. 먼저 상대가 편안하고 마음이 열려 있는 상태인지 확인해야 한다.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다른 일로 바쁠 때는 피해야 한다. “지금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혹은 “제가 드릴 말씀이 있는데 괜찮으실 때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와 같이 미리 허락을 구하는 것이 좋다.
상대가 자신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되면 먼저 공감하고 경청할 필요가 있다. 상대의 이야기를 먼저 충분히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상대의 감정을 먼저 이해하고 인정해 줄 때 상대는 마음의 문을 열기 때문이다. “네가 참 마음고생이 많았겠구나.”나 “그랬구나, 정말 힘들었겠네.”처럼 상대의 감정을 읽어줄 때 잔소리가 아닌 조언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을 키운다.
이런 방법을 사용해 앞에서 나온 박민규 씨의 사례를 통해 잔소리가 조언이 되는 대화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가족이 다 모인 식탁에서 박동수 씨는 민규의 안색이 좋지 않음을 발견했다. 과거 같으면 곧바로 “요즘도 그렇게 인터넷만 붙잡고 있니?”라는 말이 튀어나왔겠지만,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서 하고 싶은 말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동수 씨는 민규를 똑바로 바라보며 “민규야, 아빠가 요즘 너를 보면 마음이 쓰이는데 혹시 무슨 고민이라도 있니? 네가 괜찮으면 네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싶구나.”라며 친근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민규는 깜짝 놀라 아빠를 보았다. 아빠를 바라보는 민규의 표정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아니요, 별일 없어요.”라는 민규의 말에 아빠는 민규의 눈을 보면서 “그래? 하지만 얼굴에 그늘이 깊은데…. 아빠는 네가 힘들 때 이야기할 사람이 있다면 그게 나이기를 바래.”라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민규는 아빠의 말을 듣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자신 없는 목소리로 최근 면접에서 떨어져 답답하고 막막한 마음을 말했다. 동수 씨는 훈계 대신 아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중간에 아들의 말이 끊기면 “응, 그래서?”, “그랬구나.” 하면서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었다.
동수 씨는 아들의 말을 다 들은 후 잠시 침묵한 다음 “민규야, 네가 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네가 솔직하게 말해줘서 정말 고맙다.” 그는 아들의 감정을 먼저 공감해 주었다. “아빠가 네 얘기를 들으면서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겠구나. 아빠는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이렇게 한 다음 동수 씨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경험을 꺼냈다. “아빠는 민규 네 나이 때 실패도 많이 했단다. 그때는 내가 정말 형편없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돌아보니 그 실패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더라고. 아빠가 바라는 건 네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 한 다음 “아버지는 항상 네 편이니까 아빠가 예전에 겪었던 경험 중에 네가 조금이라도 참고할 만한 것이 있을 것 같으면 언제든지 다시 물어보렴.”이라고 덧붙였다.
잔소리는 ‘과거의 문제’를 반복적으로 지적하며 감정적으로 통제하려 할 때 발생한다. 잔소리와 달리 조언은 ‘미래의 개선’을 위해 상대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지지할 때 가능해진다. 상대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존중이 동반될 때 비로소 진정한 조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