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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전후 인간관계의 변화 이유와 대응하는 방법

by 최환규

모든 사람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오랜 시간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 새로운 삶의 국면에 진입하게 된다. 바로 ‘퇴직’이다. 퇴직은 단순히 직업에서의 역할을 끝내는 것을 넘어 개인의 정체성, 일상생활의 리듬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 인생의 거대한 전환점이다.


직장인은 평생을 직장이라는 거대한 공동체 속에서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왔다. 하지만 퇴직이라는 문을 넘어서는 순간 그 관계의 많은 부분이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변모하거나 심지어 단절되기도 한다. 이 변화의 이유를 이해하고 현명하게 대응하는 것은 ‘평온하고 평화로운 퇴직 후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퇴직 전 인간관계의 특징은 ‘직장 중심성’과 ‘기능적 상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 직장인의 인간관계는 대부분 직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형성되고 유지된다. 직장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고, 소속감을 제공하며, 관계 형성의 장을 마련해 주는 거대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인간관계는 직위와 역할 중심의 관계이다. ‘팀장 □□□’, ‘○○○ 부장’과 같이 직위와 역할을 통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소통한다. 이런 관계는 자신의 ‘소속’과 ‘직함’이라는 강력한 틀에 의해 정의된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가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강력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동료와의 관계는 대부분 업무의 효율성, 정보 교환,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한 협력 등 ‘기능적 상호성’에 기반한다. 서로에게 필요한 업무적 자원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유지한다. 상호 관계는 “이 서류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가 아는 정보는 여기까지 입니다만…”과 같이 업무적 필요 때문에 일어나는 주고받음이 주를 이룬다.


네트워크의 폭은 넓지만 깊이는 얕다. 팀원, 부서원, 협력사 직원 등 많은 사람과 접촉하지만, 이 관계들은 주로 업무 관련 주제로 한정된다. 깊은 내면의 교류나 개인적인 친밀감을 형성하기보다는 넓고 얕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경향이 강하다.


퇴직하면 인간관계의 폭과 깊이도 변한다. 퇴직 후 인간관계 변화의 근원적 이유는 관계의 토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퇴직은 직장 생활의 바탕을 이루었던 ‘직장 중심적 관계의 토대’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퇴직으로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관계의 기반이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예측하지 못했던 관계의 소멸과 변화를 마주하게 된다.


퇴직하는 순간 ‘회사원’이라는 강력한 소속감과 ‘팀장’이라는 역할이 사라진다. 소속감과 직위를 기반으로 했던 많은 관계들의 의미도 희미해지면서 더 이상 같은 소속감을 공유하지 않으므로 관계를 유지할 명분과 필요성이 줄어든다.


기능적 이해관계도 사라진다. ‘일’이라는 공동의 목표와 기능적 상호성이 사라지면서 과거에는 중요했던 업무 관련 네트워크는 시간이 지날수록 유지될 필요성이 사라진다. 서로에게 ‘줄 것’과 ‘받을 것’이 없어지면서 관계의 연결고리가 약해지는 것이다. 과거에는 당연했던 업무상 협력이나 정보 교환이 더는 필요 없어지니 자연스럽게 연락도 뜸해지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의 변화도 인간관계의 변화에 한몫한다. 매일 만나던 직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벗어나면서 과거에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만남과 교류의 기회가 현저히 줄어든다. 이런 변화는 관계의 물리적 거리를 넓혀 정서적 거리로 이어지게 된다. 직장 동료였을 때는 커피를 마시면서 나누던 대화가 퇴직 후에는 따로 시간을 내서 연락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것으로 변할 수 있다.

직위나 명함을 통해 얻던 사회적 지위와 인정이 사라지면서 개인의 자존감과 자기 인식에 큰 변화가 오게 된다. 이런 변화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태도나 기존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미친다. 때로는 자신을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심리적 타격까지 동반될 수 있다.


이처럼 퇴직 후의 인간관계는 크게 ‘관계의 축소와 재편’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많은 사람이 이 시기에 겪는 심리적 고립감, 외로움, 자존감 저하 등의 어려움은 관계 변화에 대한 현명한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퇴직 후에는 인간관계의 변화에 현명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퇴직 후에는 소속이 아닌 ‘자기’ 중심의 관계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퇴직 전 직장 중심의 인맥에서 벗어나 현재와 미래의 자신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관계가 가능한 사람을 주도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과거의 기능적 관계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이 관계 리모델링의 핵심이다.


오랜 직장 생활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갑옷’을 조금씩 벗어던지고, ‘진정성’과 ‘개방성’을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새로운 관계를 위해 자신의 솔직한 감정, 취미, 관심사 그리고 때로는 취약점까지도 상대와 적절하게 공유할 때 상대는 신뢰를 느끼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순수한 교류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취미 활동, 봉사, 학습 공동체, 지역 사회 활동 등 자신의 관심사와 맞는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새로운 사람들과의 연결점을 만든다. 이런 관계들은 주로 공통의 관심사와 순수한 교류에 기반하므로 퇴직 전과는 다른 양상의 건강한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상대와의 관계는 ‘주고받음이 균형을 이룰 때’ 건강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이때 상호성은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서적 지지, 정보 공유, 시간 투자 등 다양한 형태임을 인식하고 유연하게 주고받으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또한, 받기만 하는 태도를 피하고 자신도 어떤 형태로든 상대에게 도움이 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심리적 경계 설정과 적정 거리 유지도 중요하다. 새로운 관계든 기존 관계든 자신의 감정, 시간, 에너지 등 ‘심리적 경계’를 명확히 하고 존중해야 한다. 과도한 기대로 상대에게 부담을 주거나 반대로 다른 사람의 불필요한 간섭에 휘둘리지 않도록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태도는 ‘관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나’ 자신과의 관계 점검도 중요하다. 퇴직 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 취미, 자아 성찰 등을 통해 외부 관계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평온함을 구축하는 것이 모든 관계의 기반이 된다.


퇴직 전후의 인간관계 변화는 불가피한 삶의 흐름이다. 이런 변화를 ‘관계의 단절’이 아닌 ‘관계의 재구성’과 ‘관계의 확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미리 관계의 지도를 살펴보고, 주도적인 자세로 새로운 인연을 탐색하며, 기존의 소중한 관계를 지혜롭게 가꾸어 나간다면 퇴직 후의 삶은 더욱더 풍요롭고 평화로운 인간관계의 보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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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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