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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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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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 평론
윤동주 시
「바람이 불어」
>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 윤동주, 19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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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의 평론
― 윤동주 「바람이 불어」를 읽고
침묵의 언어로 세운 시인의 반석
윤동주의 「바람이 불어」는 짧지만 깊고, 고요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시다. 이 작품은 언뜻 단조로운 독백처럼 보이지만, 그 속엔 치열한 자기 성찰과 절제된 시대 의식이 깃들어 있다. 시인은 조용한 목소리로 인간 존재의 흔들림과 중심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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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람, 존재의 근원을 묻는 시작
>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시의 서두에서 시인은 바람이라는 보편적 자연 현상을 통해 존재의 출처와 행방을 묻는다. 이는 단지 기후적 현상의 묘사가 아니라, 시인이 자기 존재의 의미를 묻는 형이상학적 질문이다.
이 바람은 시대의 혼돈이자, 알 수 없는 운명이자, 시인이 홀로 견뎌야 할 내면의 허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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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괴로움에 이름 붙이지 않는 용기
> 바람이 부는데 /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괴로움의 이유를 '없다'라고 하면서, 곧바로 되묻는 이 반복은 윤동주 시 특유의 내면의 회오리를 드러낸다.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쉽게 규정하거나 포장하지 않는다.
괴로움은 반드시 '이유'를 가져야만 하는가?
그는 이 물음 앞에서 어설픈 해석이나 감정의 소비를 거부한다.
이 고백은 오히려 더 깊은 인간적 고뇌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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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랑도, 시대도, 부정 속의 긍정
>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이 부정의 문장은 직설이 아닌 반어다.
사랑한 일이 없다는 말속엔, 사랑조차 사치였던 청춘의 황량함이 담겨 있고,
시대를 슬퍼하지 않았다는 말 뒤엔, 슬픔조차 언어화하기 힘든 시대의 고통이 숨어 있다.
윤동주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
이 부정은 오히려 가장 절실한 긍정이며, 말 없는 시인의 통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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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흔들림 속의 고요한 결의
> 바람이 자꾸 부는데 /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이 시의 마지막은 시인이 택한 윤리적 정위치를 보여준다.
세상은 계속 흔들리고, 흘러가고, 부유하지만, 시인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말없이 제 자리를 지키는 인간, 시대의 거센 흐름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는 시인의 초상이다.
‘반석’과 ‘언덕’은 신념과 성찰의 상징이다.
윤동주는 투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침묵으로, 절제로, 그 자리에 존재함으로써 시대를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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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며
「바람이 불어」는 윤동주 문학의 핵심을 요약하는 시이다.
그는 말하지 않되 전한다.
그는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는다.
그는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가장 순결한 사랑을 증명한다.
이 시는 침묵의 미학이며,
그 침묵은 바람보다 깊고, 강물보다 오래 흐른다.
윤동주는 그렇게, 언덕 위에 시를 세운 사람이다.
그 발아래 바람은 불고, 강물은 흐르지만,
그 자리에 선 ‘시인’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 박성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