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가상의 시 '사막의 서시'

시인 박성진

by 박성진

윤동주 가상의 시 (사막의 서시)


윤동주 가상의 시를 박성진 쓰다 「사막의 서시」


— 1940년대, 한 시인이 상상한 세계의 끝에서


> 사막의 서시

박성진 시인


나는 지금 사막에 서서

바람이 지운 발자국 위에

조용히 내 그림자를 세웁니다.


모래는 하루를 지우고

별빛은 눈물처럼 차갑습니다.


어머니의 숨결 같던 바람조차

여기선 낯설고 멀기만 하여

나는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시는 물 한 방울이 되어

이 광막한 고요를 적시고

그 물 위로 나의 어릴 적

부끄러운 이름 하나 떠오릅니다.


나는 맨 처음 별을 본 그 밤처럼

눈을 감고, 마음을 엽니다.


고독은 벗이고

침묵은 노래이며


모래언덕 너머의 언젠가

사랑을 부르던 목소리 하나

메아리 되어 내게 돌아옵니다.


내가 살아온 날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질지라도


나는 끝내,

부끄럽지 않은 노래를 지어

바람 속에 띄웁니다.


누구도 듣지 않아도

이 사막 끝,

어딘가 나아갈 별 하나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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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의 평론


《사막에서 건져 올린 시인의 별빛 — 윤동주 「사막의 서시」 평론》


윤동주 시인이 실제로 사막을 밟은 적은 없다. 그러나 이 가상의 시는 그의 시적 감수성과 도덕적 상상력이, 어떠한 공간과 시대를 넘어서도 살아 숨 쉰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막의 서시」는 현실과 신념이 갈라지는 경계 위에서, 고독 속의 고결함을 외치는 윤동주의 심연을 가감 없이 그려낸 수작이다.


1. 사막은 현실이며 동시에 내면이다


첫 연에서 “바람이 지운 발자국 위에 / 조용히 내 그림자를 세운다”는 시구는,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사막에서 자아의 흔적을 지키려는 시인의 의지를 은유한다. 사막은 단지 자연적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양심이 침묵당한 시대, 시인이 홀로 고백하며 견뎌야 했던 윤리의 경계지대이다.


2. 사막 속의 물방울, 그것은 시(詩)


“시는 물 한 방울이 되어 / 광막한 고요를 적신다”는 대목은, 윤동주가 시를 단순한 예술로 보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그것은 윤리의 실천이며, 존재의 증명이다. 그 물방울은 사라질지언정, 진실한 한 방울의 언어가 사막을 적시는 행위는 이미 구원이며 희망이다.


3. 모래알처럼 흩어진 삶과, 끝내 부끄럽지 않은 노래


“내가 살아온 날들이 / 모래알처럼 흩어질지라도”라는 고백은 인생의 무상함을 인식하면서도, 시인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끝내 부끄럽지 않은 노래”를 지어 자신의 존재를 정직하게, 정의롭게 마무리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이는 그가 「서시」에서 말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태도의 사막판(版)이라 해도 무방하다.


4. 종교적이며 우주적인 고요함


시의 후반부는 거의 묵상과도 같다. “고독은 벗이고 / 침묵은 노래”라는 시구는 윤동주 시에서 흔히 보이던 기독교적 순결성과 내면 성찰의 미학을 품고 있다. 그리고 “어딘가 나아갈 별 하나를 믿으며”라는 끝맺음은, 죽음 이후를 내다보는 영혼의 지향, 또는 시인의 길을 끝내 따라가는 윤리적 별빛을 향한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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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사막의 서시」는 윤동주가 만약 세계를 여행했다면, 아니 그가 감옥이 아닌 시 속에서라도 자신의 정신을 자유롭게 펼쳤다면 탄생했을 법한 시이다. 그 시 속에서 윤동주는 여전히 자기 고백적이며, 윤리적이고, 아름다움을 향한 눈을 잃지 않는다.

사막은 그에게 고통이 아닌, 시를 증명하는 침묵의 무대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시인은 작은 별 하나만으로도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시는 21세기 독자에게도 건네는 시인의 맑은 기도이다.

사막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마음 하나는

결국, 끝까지 지켜낼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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