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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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윤동주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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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윤동주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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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의 창작 시, 평
> 거울 속에 낯선 내가 나를 바라본다
클릭 하나로 천 개의 얼굴을 바꾸고도
정작 단 하나의 마음은 잃어버린 채
오늘도 스크롤을 내리며 나를 지워간다
팔로워 수에 깃든 허무와
좋아요 뒤편의 공허가
내 눈동자에 무늬처럼 박혀 있다
낮에는 바쁘게 웃으며 소리 죽이고
밤이면 이어폰 속에 나를 가두며
울음 대신 알람을 켠다
세상이 나를 속일지라도
나만은 나를 지키고 싶었는데
지켜야 할 나조차
어느새 로그아웃되어 있었다
이제야 생각한다
진실은 필터가 아니라 눈물 속에 있었음을
내가 정말 묻고 싶었던 것은
‘너, 진짜 괜찮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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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의 「자화상」 원문
>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솟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랑가 시암탉이
알을 낳고 꼬꼬댁,
울고
장날이 돌아와
멀리서 풍악이 들려오고
돌아와 거울 앞에 서면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집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웃음도 없이
가난한 조국의 그늘을
등에 지고
이 모든 것과 다정히 이야기할
줄 아는
사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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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의 평론: 《거울 속의 민낯, 윤동주 자화상과 21세기》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은 단순한 자기 성찰의 시를 넘어, 민족의 운명을 짊어진 한 청년의 내면고백이자, 시인의 영혼이 우물처럼 깊이 가라앉은 독백이다. 우물 속에 비친 자아는 고요하지만 거센 시대의 바람 속에서 흔들린다. 거울 앞의 사나이는 자신을 미워하다가도, 이내 가엾어한다. 이 복합적인 감정은 자기를 혐오하고, 다시 연민하는 인간 내면의 보편적 자화상을 보여준다. 윤동주는 이 ‘가엾은 자화상’을 통해 오히려 자기 구원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 시의 핵심은 ‘자기’와의 거리다. ‘미움’과 ‘연민’은 동일한 자아에 대한 이중적 응시에서 출발한다. 시대의 아픔을 등에 지고 있으면서도 세상과 “다정히 이야기할 줄 아는 사이”가 되고 싶다는 마지막 구절은, 절망의 한가운데서도 윤동주가 품었던 가장 순결한 인간성의 발현이다.
그리고 그 정신은, 21세기에도 유효하다.
박성진 시인의 「21세기 자화상」은 디지털 세계 속에서 길을 잃은 현대인의 초상을 그린다. 윤동주가 우물 속에서 자아를 보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의 블랙스크린 속에서, 댓글과 팔로워 숫자 속에서 자아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그 속에는 ‘진짜 나’는 없다. 필터는 감정을 감추고, 알람은 진실한 울음을 대신한다.
이 시의 고요한 절망은 윤동주의 것과 닮았으나, 더 다층적이다. 가짜 자아가 넘치는 세상 속에서, 진짜 자신을 ‘지키고 싶었는데’ 이미 ‘로그아웃된 자아’를 마주한다. 이 부재의 감각은 현대인이 겪는 고독의 총체적 표현이다.
그러나 박성진 시인의 시 말미 역시 윤동주와 같은 빛을 품는다. “진실은 필터가 아니라 눈물 속에 있었다”는 통찰은, 인간의 본질이 여전히 감정과 연대, 성찰에 있다는 시인의 선언이며, ‘너, 진짜 괜찮니?’라는 물음은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내면의 물음표다.
윤동주의 자화상은 시대와 인간을 꿰뚫는 깊은 거울이다. 그 거울은 오늘도, 내일도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박성진 시인은 그 거울을 다시 들어 올려, 21세기의 그림자를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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