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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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자화상/셀카 속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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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 평
윤동주 원문: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SNS 시대의 자화상 (윤동주 정신에 바탕한 창작 시)
《셀카 속의 나》
지하철 창문을 들여다보며
어디론가 가는 척, 나를 찍습니다.
필터 속에는 웃음이 밝고
태그는 흘러가고
화면은 채워지고
댓글은 바람처럼 불고
좋아요는 내일 같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얼굴이 어쩐지 낯설어
폰을 끄고 돌아섭니다.
그러다 생각합니다 —
내가 너무 외롭구나.
다시 폰을 켜 보니
그 사람은 그대로 있습니다.
이번엔 내가 조금 안쓰러워
그 셀카에 “괜찮아” 한 줄 적습니다.
필터 속에는 미소가 흐르고
무표정이 번지고
하늘색 배경 속
가을처럼 조용한
내 모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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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의 평론: "우물에서 셀카까지, 청년의 자화상은 달라졌는가"
윤동주의 《자화상》은 ‘우물’이라는 정적인 공간을 통해 내면을 비추는 거울의 시입니다. 우물 속 풍경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대면하는 두려움과 애틋함, 그리고 부끄러움의 은유입니다. “그 사나이”는 곧 시인 자신이자, 그 시대를 살아내는 고독한 청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청년은 ‘우물’을 찾아가지는 않습니다. 대신, 셀카 앱과 SNS라는 현대의 디지털 거울 앞에 서서 ‘좋아요’와 ‘댓글’ 속에서 정체성을 확인합니다. 위의 창작시는 이러한 시대상을 담아 내면의 단절, 외로움의 증명, 그리고 결국 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모색합니다.
‘그 사나이’가 거울에서 보이던 시대에서
‘그 얼굴’이 화면에 떠오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 사람을 미워했다가, 가엾어했다가, 다시 그리워합니다.
윤동주의 시에서 가장 본질적인 정서는 **"자기 자신과의 대면"**입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청년들은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며 묻습니다.
> “나는 누구인가. 이 모습은 진짜인가.”
현대 청년들은 필터 속에 감정을 숨기고 있지만, 내면에는 윤동주가 느낀 것과 같은 불편한 자의식과 자기 연민, 그리고 어딘가에서 본래의 나를 되찾고 싶은 간절함이 살아 있습니다.
윤동주의 시 정신은 오늘도 살아 있습니다.
그것은 셀카 속의 표정,
익명의 계정 뒤의 외침,
밤늦게 혼자 올리는
“괜찮아?”라는 말속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박성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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