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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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윤동주 시 「병원」
병원
창문이 찬 바람에 열리고
하얀 병실에는
하얀 웃음을 웃는
하얀 의사가 있다.
아픈 이마 위에
하얀 손이 얹히고
하얀 약이 마음속에까지
흐르는 듯하다.
이제 나는
하얀 병이 낫기를 기다리며
하얀 눈이 덮인 세상으로
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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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로 재해석한 박성진 시인의 윤동주의 「병원」 – 《화이트아웃》
> 화이트아웃
커튼이 바람에 들썩이고
형광등 아래
방호복 입은 사람이
내 증상을 물어본다.
그는 마스크 너머로
무표정한 눈빛을 보내고
차트에는 나의 이름이
진단명이 되어 눌러앉는다.
핏기 없는 팔에
링거가 꽂히고
침묵이
내 심장을 스캔한다.
나는 낫고 싶은 게 아니다
그냥 투명해지고 싶다
세상의 소음이 멈추는
그 하얀 공간으로
가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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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의 평론
제목: “하얀 공간의 내면 – 윤동주의 병원과 현대 청년의 무기력”
윤동주의 시 「병원」은 단순히 의학적 공간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치유와 존재 회복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담긴 시이다. 이 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하얀"이라는 형용사는 죽음과 순수함, 무력과 안식이라는 이중의 정서를 동시에 끌어안는다. 하얀 의사, 하얀 손, 하얀 병실, 그리고 하얀 눈. 이 시는 결국 존재의 고통을 덮어버리고 싶은 절망적 희망을 담고 있다.
현대시 《화이트아웃》은 그 감성을 오늘의 청년들에게 맞춰 재해석한다. 오늘날 병원은 단순한 치유의 장소가 아니라, 불확실한 진단명과 무기력한 미래의 상징으로 존재한다. "나는 낫고 싶은 게 아니다 / 그냥 투명해지고 싶다"라는 구절은 현대 청년들의 소진된 자아와 존재 삭제에 대한 소망을 대변한다. 이는 '죽음'이 아니라 세상과의 연결 끊김을 통해 오히려 더 ‘살아있는 나’를 찾고자 하는 역설적 충동이다.
윤동주는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도 세상을 향한 시선을 잃지 않았다. “하얀 눈이 덮인 세상으로 나가리라”는 마지막 구절은,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마음의 회복과 회귀를 암시한다. 반면 현대시는 고통 자체보다는 치유 불가능한 시대의 공기 속에서 벗어나고픈 감정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차이는 시대의 반영이자 세대 간 감각의 간극이다. 윤동주의 시대가 이상(理想)과 민족적 사명감 속의 고통이라면, 오늘날 청년들의 고통은 익명성과 무기력, 경쟁과 무관심 속의 병리이다.
하지만 두 시가 만나는 접점은 명확하다.
그것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자’의 절규이다.
그 목소리가 시대를 넘어 울릴 때, 윤동주의 시는 고전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시가 된다.
*박성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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