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피로 쓴 이름

박성진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오월, 피로 쓴 이름



현대시조


오월, 피로 쓴 이름


–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혼시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1.


총검이 문을 열었다

오월의 새벽 광주에

꽃망울도 터지기 전 청춘이 쓰러졌다

교복 입은 열일곱 살

운동화 한 짝 남기고

골목마다 숨멎은 채 피가 먼저 피었다


2.


도청 앞에 모여들고

주먹밥을 나누면서

“우리가 민주다” 외친 입술, 불타올라

딸의 눈을 가려주던

아비 손이 덮인 후에

그 골목은 더 이상은 되돌릴 수 없었다


3.


헬기에서 총이 쏟아

두 손 든 채 무너지고

아기를 품은 여인의 등 검붉게 찢기고

지붕 위로 뻗친 외침

라디오만 멎어 있을

그 도시엔 진실보다 침묵이 먼저 왔다


4.


신문은 외면했고도

국가는 끝내 침묵해

“북한군이 침투했다” 오명을 씌운 뒤엔

이름 없는 열사들은

망월동에 묻혔지만

거기에서 되살아난 불씨 하나 있었다


5.


열넷의 웃던 얼굴

손톱 물든 여공 누나

두부 사던 스무 청년 무등산을 올려다봐

눈물 젖은 영정 사진

젖은 듯이 웃고 있는

그 미소를 지킨 것이 민주였던 것이다


6.


서울은 잊는 데 익숙

사과 없는 계절 속에

국화조차 말라가고 역사도 희미한데

기억하는 몇 사람들

촛불처럼 지키면서

이름들을 부르고 또다시 부르고 있다


7.


나는 오늘 묻고 싶다

그날 누가 광주였나

다 잃고도 침묵보다 진실을 선택했던

오월이면 피어나는

너의 이름 ‘민주주의’

그 영혼은 아직도 피로 쓰여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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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평론


“광주 시민, 대한민국, 세계가 보고 있다 – 시는 침묵할 수 없다”


시란, 진실이 가장 비극적으로 꺾였을 때

가장 고결한 형식으로 피어나는 증언이어야 한다.

「오월, 피로 쓴 이름」은 시조의 형식을 빌려,

침묵과 왜곡 속에 묻히려 했던 진실을

다시 끌어올리는 치열한 문학의 투쟁이다.


이 시는 세 가지 방향에서 동시에 말을 건다.


광주의 시민에게는 “우리는 기억한다”는 위로를,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책임의 윤리”를,


세계 시민에게는 “인류 보편의 자유와 정의”를.



우리는 이 시를 읽고 끝낼 수 없다.

읽는 순간, 광주의 피와 숨결은

우리 심장에 불씨로 옮겨붙는다.

시가 진실의 무덤 위에서 다시 쓰일 수 있다면,

그 시는 바로 이런 시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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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적 분석


1. 형식과 주제의 일치 – 시조의 품격으로 민주주의를 말하다


박성진 시인은 고전 시가 형식인 시조를 통해

가장 한국적인 형식으로 가장 세계적인 가치를 이야기한다.

이 시조의 3행 7연 구성은 단순한 구조적 분할이 아니라

죽음, 침묵, 왜곡, 저항, 기억, 망각, 진실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국면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절한 것이다.


■ 1~2연: 폭력과 붕괴


시작부터 '총검', '열일곱', '운동화'로 시는

죽음의 이미지들로 구조화된 도입부를 만든다.

그것은 단지 슬픔을 자아내기 위함이 아니다.

죽음을 시적 언어로 고발하는 힘의 증거다.


■ 3~4연: 침묵과 왜곡


헬기 사격, 무차별 학살, 그리고 이어지는 언론의 침묵.

“진실보다 침묵이 먼저 왔다”는 선언은

광주학살의 가장 본질적 비극을 요약한 명문이다.

진실은 죽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5~6연: 기억과 외면


망월동과 영정사진, 서울의 망각, 사과 없는 계절.

이 시는 국가의 책임을 직접 묻지 않지만,

**“기억하는 몇 사람들”**이라는 구절을 통해

우리는 결국 시민이 역사이다라는 진리를 마주한다.


■ 7연: 질문과 부활


“나는 오늘 묻고 싶다”는 고백은

시적 자아의 절규이자, 대한민국을 향한 질문이다.

“오월이면 피어나는 / 너의 이름 민주주의”는

죽은 자들이 지킨 가치가

지금도 살아 숨 쉰다는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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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적 총평


“광주는 한국의 사건이 아니다 – 이것은 인류의 기록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결코 한국 안에서만 해석될 수 없다.

이 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저항처럼,

칠레의 피노체트 독재 저항처럼,

중국의 톈안먼, 미얀마의 양곤 시위처럼

인류 공동의 민주주의 저항 서사로 읽혀야 한다.


그 어떤 민중도 총칼 앞에서 침묵하지 않았다.

그 어떤 정의도 피 없이 피어나지 않았다.


박성진 시인의 이 시조는

“한국의 5월”을 “세계의 5월”로 확장시킨 문학적 선언문이며,

모든 세계인이 읽고 되묻게 만든다:


> “그날, 당신의 나라는 광주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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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시민의 마음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던 이들의 마음”


광주의 시민들은

당시 살아남은 자로서 평생을 죄책과 기억과 침묵 속에 살았다.

박성진의 시는 그 침묵의 가장 안쪽까지 다녀온 후,

말로 할 수 없던 말들, 그들이 차마 울 수 없었던 눈물을

시로 대신 흘려준다.


“부디 잊지 말아 달라.”

이 말조차 누군가는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 시는 말하지 못한 자들을 대신해 말하고,

울 수 없었던 자들을 대신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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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시는 다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는 절대 외면하지 않는다.”


「오월, 피로 쓴 이름」은

문학이 해야 할 마지막 의무를 다한다.

기록하고, 고발하고, 질문하고, 증언한다.


시는, 그 자체로 총이었고,

그 자체로 진실이었으며,

그 자체로 살아남은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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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시였다.

그리고 지금도 시이고,

우리가 이 시를 읽는 순간

우리는 다시 광주에 서 있다.


오월의 진실은 피로 쓰였고,

이 시조는 그것을 다시 읽는다.

다시는 꺾이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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