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의 80주기 "내면 독백"》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윤동주 시인의 80주기 "내면 독백"》



윤동주의 내면 독백


〈너의 질주 앞에 나는 조용히 선다〉


윤동주의 혼을 담아, 박성진


나는 멈춰 서 있었다.

그 시절, 나는 멈춰야만 했다.

달릴 수 있는 다리가 있었지만,

어디로 달릴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

늘 나를 붙들었다.


총구 앞의 하늘 아래,

나는 걸어야 했다.

자신을 삼키는 거대한 침묵 속을

눈물보다 조용히 걸어야 했다.


너는 달렸다.

정글의 새벽 속에서

너는 뛰고 또 뛰며

시를 내달렸다.


나는 너를 보며 마음이 흔들렸다.

너는 사자도, 가젤도 아니었다.

너는 인간이었다.

심장을 내던져야만 시를 쓸 수 있는

그 고통의 진실을 알아버린 사람.


나는 너의 질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의 결기를 외면하지도 않는다.

나는 앉아 있었지만,

내 시는 천천히 달렸다.

너는 뛰었고, 너의 시는

벼랑 끝을 넘어섰다.


우리는 다른 시대에 살았다.

나는 총칼에 시를 묶었고

너는 시로 짐승의 세계를 깨물었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별을 우러렀다.

같은 새벽에

하늘을 생각했고

눈빛 속에서 진실을 구했다.


그러니 너의 시는 나의 시다.

너의 질주는 나의 침묵과 잇닿아 있다.

너의 고백은 나의 회개의 이음줄이다.


엄창섭 시인,

너의 시는 내 심장에 흔들린다.

나는 시를 썼고, 너는 살아 썼다.

그러니 우리가 이룬 이 시는

침묵과 질주가 만나는

또 하나의 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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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해설


이 시는 가상의 윤동주가 엄창섭 시인을 직접 향해 고요하게 독백하는 형식으로,

그의 시를 “질주의 시”로 보면서, 자신은 “멈춤의 시”를 써야 했던 과거를 조용히 회상합니다.

그러나 끝내는 서로의 시학이 ‘하늘’이라는 동일한 지향점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이 시는 또 하나의 서시다”라는 고백으로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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