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작곡가
《음악의 명인 천재 피아니스트 재갈삼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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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 박성진 시인, 평론가,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작곡가의 '음악의 명인" 소개
"제갈삼 선생님"
프로필
1925년 11월, 경남 마산(현 창원)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의 음울한 하늘 아래서도 건반 앞에 앉는 순간만은 자유로웠던 소년.
일본 도쿄 음악학교(현 도쿄예술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귀국 후 부산대학교 음악학과 교수로 수십 년간 제자들을 길렀다.
부산피아노듀오협회 창립에 참여하며 지역 음악 문화를 지탱했고,
연주회장에서는 언제나 ‘피아노는 내 운명’이라 고백했다.
90대 중반에도 무대에 올라 건반을 두드렸고,
2025년, 백 세의 나이에도 기념 음악회에 모습을 드러내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국내 최고령 피아니스트.
그의 철학은 단호하다
“음악은 청중의 심장을 울려야 한다. 완벽보다 진실이 우선이다. 악보 속의 인간을 연주하라.”
〈백 년의 건반, 별빛의 손끝〉
월인(月人) 박성진
백 년의 세월이 한 건반 위로 흘러내립니다.
검은 길과 흰 길 사이,
당신의 손끝은 겨울 강물처럼 맑고,
봄바람처럼 부드럽습니다.
부산의 바닷빛은
당신의 음표 속에서 새벽 파도처럼 깨어나고,
젊은 제자들의 꿈은
당신의 두 손 아래서 황금빛 날개를 펼칩니다.
세월이 쇠락을 속삭일 때도
당신의 연주는 언제나
처음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처럼 설렘을 품었고,
마지막 악장 앞에서도
결코 쉼표를 두지 않았습니다.
오늘,
백 년의 악보를 넘기며
문득 깨닫습니다.
당신의 음악은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이 세상을 향해
끝없이 흐르리라는 것을.
〈건반 위의 우주〉
월인(月人) 박성진
검은건반과 흰건반 사이,
그 틈은 밤과 낮처럼 서로를 껴안고 있습니다.
하나의 음은 고독,
다음의 음은 위로,
그 사이를 잇는 쉼표는 우리의 숨입니다.
피아노는
하늘이 땅에 내려준 가장 정직한 거울,
그 앞에서 우리는 가면을 벗고
피아노 건반을 들여다봅니다.
제갈삼 선생님의 건반은
백 년 동안의 피아노 위에서
하얀 건반 검은건반을 오가며
그 음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
은하수처럼 흘러들었습니다.
음악이란, 시간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아름답게 남기는 일이라는 것을.
〈제갈삼, 백 년의 건반이 남긴 숨결〉
월인(月人) 박성진 — 음악평론
그의 피아노 인생은 한 도시와 한 시대를 건너온 음악의 연대기다.
1925년, 어두운 하늘 아래 태어난 그는
건반 앞에 앉는 것을 삶의 본능처럼 받아들였다.
도쿄에서 배운 기법 위에,
마산과 부산의 바다가 그의 음색을 빚었다.
부산대학교 강의실에서 그는 악보가 아니라 숨을 가르쳤다.
건반 위에 손을 얹기 전의 고요,
떼어낸 직후의 여운—그것이 생의 온도였다.
“음악은 템포가 아니라 사람의 맥박으로 연주해야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90대의 무대 위에서 그는 더 깊은 울림을 가졌다.
한 음을 누를 때마다 백 년의 무게가 실렸고,
그 소리는 청중의 심장에 파문을 남겼다.
선생님은 세 가지를 믿었다.
음악은 청중의 심장을 울려야 한다.
완벽보다 진실이 우선이다.
악보 속의 인간을 연주하라.
그의 제자들은 전국과 세계로 퍼져 나갔고,
그의 이름은 부산을 넘어 한국 피아노 교육사의 살아 있는 역사로 남았다.
2025년, 백 년의 건반 앞에서 그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음악은 이렇게 속삭인다.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건반 위에서, 나는 여전히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