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문화평론---쇼팽 *겨울바람*》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쇼팽---"겨울바람"》



박성진 문화평론 — 쇼팽 「겨울바람」 (Étude Op. 25 No. 11)


> “바람은 겨울의 언어다. 얼어붙은 세상 위를, 끝까지 걸어가는 자에게만 속삭인다.”




겨울 한복판,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바람이 있다. 차갑게 피부를 스치는 순간, 그 속에서 묘하게 따뜻한 숨결을 감지한다. 쇼팽의 「겨울바람」은 바로 그 모순의 음악이다.


오른손은 끝없이 흩날리는 눈발처럼, 숨 가쁘게 대지를 덮어간다. 음표 하나하나가 날카롭지만, 그 날카로움 속에는 서정의 미세한 체온이 묻어 있다. 왼손은 깊고 묵직한 발걸음으로 그 위를 걸어간다. 거센 바람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사람, 혹은 자신의 길을 묵묵히 이어가는 의지다.


이 곡에서 ‘속도’는 단순한 과시가 아니다. 바람이 몰아치듯 질주하다가도, 불현듯 멈추고, 숨 고르고, 다시 달려야 한다. 그 숨결의 리듬 속에 겨울의 얼굴이 있다. 차갑고 잔혹한 계절이지만, 동시에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계절.


연주자는 얼음과 불의 경계 위에 선다. 터치는 얼음처럼 투명하고, 악센트는 불처럼 순간적으로 타올라야 한다. 이 균형이 무너지면 곡은 기계적 질주로 변하거나, 혹은 감정에 매몰된 방황이 된다. 진정한 ‘겨울바람’은 그 두 극점을 동시에 품는 연주에서만 살아난다.


청중이 이 곡을 듣고 나면, 그 마음속에는 한 장면이 남는다. 휘몰아치는 설원 위, 한 사람의 그림자가 끝까지 걸어가고 있는 풍경. 차갑고도 뜨겁게, 쇼팽은 그 그림자를 건반 위에 새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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