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언 시인-- 함께 떠나고 싶은 가을》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함께 떠나고 싶은 가을

박철언 시인 시


잠 못 이루던 긴 무더위 지나가고

길가 풀잎 위 투명한 눈빛으로 앉은 이슬

선선한 새벽바람에 창문을 닫는다


이제야 가을이 온 걸까

높아진 파란 하늘에 흰 구름 두둥실

다시 시작된 풀벌레들의 연주


황갈색으로 변해가는 거리

익어가는 과일처럼

그리운 사람과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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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가을은 한국 시에서 가장 자주 호출되는 계절적 배경 중 하나이다.

그것은 단순히 날씨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삶의 궤적이 응축되어 나타나는 상징적 장치이다.

박철언 시인의 시 「함께 떠나고 싶은 가을」은 바로 그 계절의 정서를 담아내면서도,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열어주는 작품이다.

이 시를 통해 우리는 존재론, 시간의 철학, 관계의 윤리학, 그리고 회상의 미학까지 확장된 사유를 경험하게 된다.


무엇보다 첫 연은 여름에서 가을로의 전환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잠 못 이루던 긴 무더위 지나가고"라는 구절은 단순한 날씨의 진술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견뎌온 긴 시간, 불면과 고통의 계절을 은유한다.

여름의 무더위는 삶의 무거움이며, 가을의 도래는 그 무거움에서의 해방이다.

창문을 닫는 행위는 바깥의 혼탁을 차단하고 내면을 향해 귀 기울이는 실존적 순간으로 읽을 수 있다.


이어지는 구절, "길가 풀잎 위 투명한 눈빛으로 앉은 이슬"은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이미지이다. 이슬은 찰나적이지만 가장 투명한 순간에 빛을 낸다.

하이데거가 말한 ‘현존재의 드러남’처럼, 이슬은 존재의 순간적 개현을 상징한다.

그 투명한 눈빛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덧없음을 환기시키면서도, 동시에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충만하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이제야 가을이 온 걸까"라는 물음은 단순한 계절 확인이 아니라, 시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다.

가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만 도래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시간, 즉 변화의 수(數)로서의 시간이 바로 이 순간에 감각된다. 그러나 이 시의 가을은 직선적 시간이 아니라 순환적 시간이다. 풀벌레들의 연주가 "다시 시작된"다는 말은 끝이 아니라 반복, 죽음이 아니라 재생을 암시한다.


풀벌레 소리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와 존재가 서로를 부르는 합창이다.

칸트가 말한 자연의 목적성 개념을 떠올리면, 풀벌레의 소리는 단순한 생리적 울음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시인이 듣는 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연주’이다.

이 지점에서 자연과 인간은 하나의 교향곡으로 공명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연의 "황갈색으로 변해가는 거리"는 색채의 철학을 드러낸다. 색의 변화는 시간의 흔적이며, 노화와 성숙을 동시에 담고 있다. 황갈색은 죽음을 향한 빛바램이면서도 동시에 삶이 가장 깊이 무르익는 순간의 색이다. 여기에 이어지는 "익어가는 과일"의 은유는 더욱 뚜렷하다. 과일이 익는다는 것은 성숙과 완결의 순간이지만, 동시에 소멸을 향한 준비이기도 하다.

성숙과 소멸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연속 과정 속에 있다.


이때 과일의 익음은 인간의 기억과도 닮아 있다.

시간이 쌓이며 무르익는 것은 단순히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회상이다.

베르그송이 말한 ‘지속’ 개념처럼, 기억은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살아 있는 흐름이다.

따라서 가을은 단순히 죽음의 계절이 아니라, 회상과 성찰의 계절로 재해석된다.


마지막 연의 "그리운 사람과 무작정 /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은 이 시의 핵심이다. 여기서 떠남은 단순한 여행이나 도피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타자와 함께 나누고 싶은 근원적 욕망이다. 레비나스의 윤리학이 강조하듯, 인간은 타자를 향한 응답 속에서 윤리적 존재가 된다. 가을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이 동행의 욕망은 곧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주목할 만한 단어는 "무작정"이다. 목적 없는 떠남, 방랑은 사르트르적 자유의 실현을 떠올리게 한다. 자유는 목적지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 그 자체에서 주어진다.

무작정 떠나는 행위는 존재가 본래 지닌 자발적 자유, 곧 삶에 몸을 맡기는 행위이다.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개방의 자유이며, 시인은 이를 계절의 정서 속에 담아낸다.


이 시의 독창성은 ‘가을’을 단순한 쓸쓸함이나 이별의 상징으로 제한하지 않는 데 있다.

김소월의 「산유화」나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가을을 배경으로 고독과 그리움을 강조했다면, 박철언 시인의 시는 ‘함께 떠나고 싶은 계절’로 재구성한다.

이는 공동체적 의미를 부여하고, 현대인의 고독을 넘어 타자와 연대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철학적으로 가을은 윤리와 미학이 교차하는 계절이다.

황갈색 거리와 익은 과일의 이미지는 미학적 풍요로움을, 타자와 함께 떠나고 싶은 마음은 윤리적 요청을 담는다. 이 시는 두 영역을 동시에 관통하며, 존재의 계절학을 완성한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에서의 ‘떠남’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귀환이다.

우리는 떠남을 통해 세계를 다시 바라보고, 타자를 만나며, 자신에게 돌아온다. 플라톤이 말한 영혼의 회귀와 같이, 떠남은 존재를 더 깊이 이해하는 순환적 행위이다.

박철언 시인의 「함께 떠나고 싶은 가을」은 우리에게 말한다. 가을은 함께 떠남을 통해 존재와 관계, 기억과 자유를 새롭게 체험하는 계절이라고.


지난날의 화려했던 전, 장관의 시절은

뒤로한 채 오랜 시간 문인의 길을 걸어온 숙성된 삶을 살아온 시인이기에

가을에 무작정 떠나고 싶다는 표현은 자유로움을 한껏 누리겠다는 의지의 작품으로 가을을 여행하려는 시인의 발상은 새로이 출간한 7집 시집과 함께 또 다른 휴머니스트가 되어 언덕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과 함께 여행을 떠나려는 시인에게

선물할 가을의 소식은 무엇이 될지 사뭇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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