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주광일 시인-소나무에게》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



소나무에게


주광일 시인 시


까마득한 절벽 위에

겁 없이 서있는 소나무여

새벽안개 걷히니

침침한 내 눈에도

또렷이 보이는구나


세상일이 허망해도

절대로 굽히지 말라고

볼품없는 나에게만

살며시 귀띔해주는구나


소나무여 소나무여

오늘은

네가 서있는 그 자리에

하늘 가까운 그 자리에

나도 한번 서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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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


<시적 호명의 울림>


시의 첫머리 “소나무여”라는 호명은 자연을 단순히 묘사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화자는 소나무를 대상이 아니라 존재로 불러낸다.

이는 마치 종교적 기도나 제의의 언어처럼 느껴진다. 소나무는 눈앞의 풍경을 넘어 영혼의 상대로 등장한다.

“여”라는 어미가 지닌 전통적 서정의 울림은 한국 고전시가의 호격법을 떠올리게 하며, 화자의 감정이 단순한 감탄이 아니라 진지한 대화임을 드러낸다.

이 순간 시는 자연의 묘사가 아닌,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존재론적 대화를 열어젖힌다.


<절벽이라는 실존의 무대>


“까마득한 절벽 위”라는 공간은 두 가지 긴장을 품고 있다. 하나는 공간적 긴장이다.

절벽은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불안정한 지형으로, 자연의 위협과 인간의 삶의 위기를 동시에 은유한다. 다른 하나는 정신적 긴장이다. 절벽은 경계, 한계, 선택의 장소다.

소나무가 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던지는 묵시적 메시지다. 버틸 수 없는 자리에서 버티는 존재, 그것이 곧 삶의 본질이라는 깨달음을 소나무는 말없이 전한다.


<새벽과 안개의 상징성>


안개는 시각을 가로막는다. 이는 곧 삶의 불확실성, 미래의 불투명함을 뜻한다. 그러나 “새벽안개 걷히니”라는 구절에서, 안개는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드러남의 조건으로 기능한다.

안개가 걷히며 드러나는 소나무는 단순히 시각적 풍경이 아니라, 진리의 발견을 은유한다. 화자의 “침침한 눈”조차 ‘또렷이’ 바뀌는 장면은 육체적 시각을 넘어 정신적 시야의 전환을 뜻한다.

즉, 자연은 인간의 내면을 깨우는 거울이 된다.


<허망한 세상과 꺾이지 않는 의지>


“세상일이 허망해도”라는 대목은 불교적 허무, 혹은 유교적 무상관을 떠올리게 한다. 세속의 일들은 덧없고 허망하다. 그러나 소나무는 허망함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다. “절대로 굽히지 말라”는 명령은, 단순한 교훈을 넘어 화자의 삶을 일깨우는 존재적 언어다. 이 순간 소나무는 무언의 스승이 된다. 세속의 허망함과 소나무의 꿋꿋함의 대비는 시 전체의 중심축을 이룬다.


<귀띔의 언어와 친밀성>


소나무는 위엄 있는 교사라기보다, “살며시 귀띔해주는” 벗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살며시”라는 부사와 “귀띔”이라는 명사는 시 전체의 정조를 바꾸어 놓는다.

자연은 먼 곳에서 관망하는 존재가 아니라, 가까이 와 속삭이는 친밀한 존재다. 이는 시인이 자연을 단순히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 대화의 대상으로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자연과 인간은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우정으로 연결된다.


<자기 인식의 겸허함>


화자는 자신을 “볼품없는 나”라 한다. 이는 단순한 자조가 아니라, 소나무 앞에서의 겸허한 자기 인식이다. 인간은 허무한 세상 속에서 쉽게 꺾일 수 있는 존재임을 화자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볼품없음’은 부정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소나무의 강직함을 배우려는 출발점이 된다. 결핍은 절망이 아니라 성장의 조건으로 바뀐다.


<반복적 호명 정서의 고조>


“소나무여 소나무여”라는 반복은 감정의 고조를 드러낸다. 같은 단어의 반복은 언어의 의미를 넘어 리듬과 음악성을 불러온다.

이는 소리 없는 울림, 절규, 존경, 애틋함이 겹쳐진 복합적 정서를 표현한다.

반복의 힘은 시의 후반부를 정서적으로 고조시키며, 화자가 소나무와 영적으로 가까워졌음을 암시한다.


<하늘 가까운 자리의 상징성>


소나무가 서 있는 자리를 “하늘 가까운 자리”라 규정한 것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단순한 높이가 아니라, 초월적 세계와의 접촉을 의미한다. 소나무는 땅에 뿌리내리면서도 하늘로 뻗어 올라간다.

땅과 하늘, 세속과 초월, 인간과 신성을 연결하는 매개자로서의 소나무가 드러난다.

화자가 그 자리에 서고 싶어 한다는 것은, 인간적 한계를 넘어 영적 차원에 도달하고자 하는 갈망의 고백이다.


<오늘이라는 시간의 결단>


“오늘은”이라는 한 단어는 시 전체의 긴장을 현재로 압축한다. 그것은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결단이다.

화자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무게를 둔다. 이는 존재론적 현재주의의 고백이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삶을 바꾸는 단 한순간의 가능성으로 드러난다.


<동일화의 욕망과 자기 초월>


“나도 한번 서보고 싶구나”라는 고백은 자연에 대한 단순한 감탄을 넘어선다. 화자는 소나무의 자리를 욕망한다.

이는 동일화의 욕망, 곧 자아와 타자의 합일을 꿈꾸는 시적 순간이다. 소나무의 자리에 선다는 것은, 단순히 그 자리를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방식을 체현하는 것이다.

즉, 화자는 소나무처럼 꺾이지 않고, 굳세며, 하늘 가까운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자연시에서 실존 시로>


많은 자연시는 풍경 묘사에 머무르지만, 이 작품은 풍경을 실존적 깨달음으로 전환한다. 소나무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화자가 존재의 방향을 묻는 스승이다.

자연은 교훈을 넘어, 인간의 실존적 고민과 맞닿아 있다. 이 점에서 「소나무에게」는 단순한 서정시가 아니라, 실존시라 할 수 있다.


<한국적 상징의 계승과 현대적 변용>


소나무는 한국적 상징의 정수다. 전통적으로 절개, 강직, 고고함을 상징했던 소나무는, 이 시에서 개인적 고백과 결합한다. 전통은 유지되지만, 화자의 내면적 고백과 결핍, 동경이 덧입혀져 현대적 의미를 획득한다. 이 작품은 한국 문학의 뿌리를 이어가면서, 현대인의 삶과 실존적 고민을 담아낸다.

그래서 「소나무에게」는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지점에 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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