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
정근옥 시인 시
후쿠오카 하늘을 바라보며 ― 동주의 하늘에 부쳐
정 근 옥
녹슨 철창 너머로 잘린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먹구름 속에 흐느끼고 있는 조국을 그려 본다//
현해탄 건너 고항의 강은 지금도 쉼 쉬고 흐르는가/
봄이면 개나리 피던 뒷동산엔 아직도 꽃이 피고 있는가//
창밖의 흰 구름은 말없이 북쪽 하늘로 흘러가는데/
바람이 몰고 온 낙엽, 감방 벽에 부딪쳐 떨고 있다//
발밑에 음습한 어둠이 세균처럼 자라고 있지만/
마음속 등불은 시가 되어 횃불처럼 불타오른다//
어젯밤 꿈속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 빈 들판의/
바람결, 수의를 준비하는 밤의 고요를 깨뜨린다//
까만 어둠이 목숨을 삼켜도, 바람이 쓴 시는 별이 되어/
광복의 새벽처럼 하늘에 찬란히 떠오르리라//
검은 약물이 흐르던 주사기가 육신의 벽은 허물어도/
묻힌 뼛속에 남은, 조선의 혼은 서슬 퍼렇게 빛난다//
조선의 푸른 하늘에 쓴 한 줄의 시, 죽어서도 죽지 않는/
별이 되어,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반짝이고 있다//
정근옥 시인의 시는 후쿠오카 형무소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단순한 회고적 추모에 머물지 않는다. 여기에는 윤동주 시인이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냈던 시혼(詩魂), 그리고 일제 식민지 청년이 감당해야 했던 역사의 무게가 농축되어 있다. 시인은 하늘, 구름, 낙엽, 어둠, 별 같은 상징들을 불러내어, 윤동주가 실제로 마주했을 감각을 오늘의 독자 앞에 되살린다.
<철창과 잘린 하늘 구속과 분단의 이미지>
첫 연의 “녹슨 철창 너머로 잘린 푸른 하늘”은 감옥의 물리적 풍경을 그리지만, 동시에 민족 현실을 투영한다.
하늘은 원래 경계 없는 공간이지만, 철창은 그것을 단절시킨다.
잘린 하늘은 곧 잘린 조국이며, 그 단절은 식민지 현실 속에서 청춘을 살아야 했던 세대 전체의 체험이었다.
윤동주는 「자화상」에서 ‘우물 속 자신’을 노래하며 스스로의 한계를 직시했는데, 정근옥 시인은 그 이미지를 후쿠오카 감옥의 철창으로 확장한다.
<먹구름과 조국 민족적 비탄의 형상화>
“먹구름 속에 흐느끼고 있는 조국”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풍경의 묘사가 아니라, 민족 전체의 비탄을 압축한 상징이다.
먹구름은 곧 전쟁과 압박, 그리고 미래가 가려진 시대의 우울한 기운이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그 속에서 ‘조국을 그려 본다’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슬픔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먹구름을 뚫고 희망의 상상을 붙잡으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현해탄과 고향의 강, 귀향의 불가능성>
두 번째 연의 “현해탄 건너 고향의 강”은 윤동주의 유년 시절을 품은 공간이다.
그러나 그 강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상실의 장소다. 식민지 청년에게 귀향은 현실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봉쇄되어 있었다. 봄마다 개나리가 피던 뒷동산은 여전히 꽃을 틔울지 몰라도, 시인은 그 장면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이 모순은 윤동주 시학의 정조, 부재와 그리움의 시학과 직결된다.
<창밖의 구름과 낙엽, 자유와 죽음의 긴장>
창밖을 흘러가는 구름은 자유롭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바라보기만 할 뿐 따라갈 수 없다.
감옥 안과 밖, 구속과 자유의 대조는 구름과 철창이라는 두 이미지로 선명히 대비된다.
이어서 낙엽은 죽음을 예감케 한다.
감방 벽에 부딪혀 떨고 있는 낙엽은 단순한 자연의 순환이 아니라,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격리된 청춘의 운명을 비유한다.
떨어지는 낙엽의 떨림은 곧 시인의 생명이 사그라지는 떨림과도 같다.
<어둠과 등불 시의 불멸성>
“발밑에 음습한 어둠”은 물리적 공간의 묘사인 동시에 제국주의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마음속 등불은 시가 되어 횃불처럼 불타오른다.
” 이는 윤동주가 왜 끝까지 시를 포기하지 않았는지를 보여준다.
시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존재를 지탱하는 불빛이자 민족혼의 불씨였다.
이 장면은 윤동주의 시혼이 얼마나 강인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어머니의 목소리와 수의의 밤, 개인과 민족의 이중 장례>
어머니는 윤동주 시에서 언제나 근원적 정서의 뿌리였다. 「병원」, 「사랑스러운 추억」 등에서 드러난 모성은, 죽음 앞에서는 더욱 절절한 그리움으로 변한다.
정근옥 시인은 “어머니의 목소리”와 “수의를 준비하는 밤”을 병치함으로써, 개인의 장례와 민족의 장례를 동시에 환기한다.
윤동주의 죽음은 개인사에 머무르지 않고, 식민지 조선 청년 세대 전체의 희생과 상실을 상징한다.
<어둠과 별 시혼의 불멸>
“까만 어둠이 목숨을 삼켜도, 바람이 쓴 시는 별이 되어”라는 구절은 윤동주의 시적 상징을 응축한다.
별은 윤동주에게 있어 단순한 천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의 언어, 그리고 부끄럼 없는 삶의 약속이었다. 정근옥 시인은 이를 “광복의 새벽처럼”과 연결하며, 윤동주의 죽음이 곧 민족 해방의 서광과 이어진다고 해석한다.
별은 개인의 죽음을 초월한 민족적 희망의 징표가 된다.
<검은 주사기와 조선의 혼, 육체와 정신의 대비>
역사적 사실을 직접 호출하는 대목에서 시의 리얼리티가 극대화된다.
“검은 약물이 흐르던 주사기”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윤동주가 겪었던 비극을 상징한다.
육체는 파괴되었지만, “묻힌 뼛속에 남은 조선의 혼”은 꺾이지 않았다.
윤동주의 존재는 육체적 차원을 넘어 정신적, 민족적 차원으로 승화한다.
그의 죽음은 제국주의의 폭력에 의한 파괴였으나, 결과적으로 민족혼의 불멸을 증언하는 사건으로 남았다.
<죽지 않는 별 언어와 역사>
마지막 연의 “죽어서도 죽지 않는 별”은 윤동주의 시학 전체를 응축한 선언이다.
별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언어의 불멸성과 역사적 기억의 지속성을 담는다.
윤동주의 시는 그가 죽은 뒤에도 살아남아 세대를 넘어 읽히고, 조국의 하늘 아래 별빛처럼 반짝인다.
이 마지막 구절은 윤동주의 시혼이 ‘죽어서도 살아 있는 언어’ 임을 증언한다.
<종합적 고찰 동주의 하늘, 오늘의 하늘>
정근옥 시인의 시는 윤동주의 마지막 순간을 재현하면서도, 그것을 단순한 과거의 사건으로 고정하지 않는다.
후쿠오카의 하늘은 오늘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과 이어져 있다.
잘린 하늘은 여전히 분단된 조국을 상기시키며, 별빛은 여전히 저항과 희망의 언어로 반짝인다.
윤동주가 지키려 했던 부끄럼 없는 시인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윤리적 요청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