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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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정근옥 시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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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호숫가의 능소화
별빛을 따라 조용히 꽃잎을 여는 능소화
푸른 넝쿨손을 뻗어 높은 담벼락을 넘어간다
궐 밖에 내쫓긴 임을 그리다 지친 혼이
밤하늘에 묻힌 이름 목놓아 부르는 애절한 목소리
말없이 뜰을 지키며, 가시밭 삶의 무게를 이겨내고
눈바람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깊이 뻗친 절개의 뿌리
삭막한 세월의 바람, 담벼락을 스쳐 달려가는데,
꽃잎은 이슬로 눈을 씻고 별빛 호수에 몸을 던진다
꽃이 피는 계절마다 줄기를 뻗어가는 그대를,
나는 안다, 푸른 잎 사이로 피워온 그 붉은 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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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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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호숫가의 능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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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과 능소화의 첫 만남 ---하늘과 땅의 교감>
시는 ‘별빛’과 ‘능소화’의 병치를 통해 시작된다. 별빛은 우주적 질서와 영원의 상징이고, 능소화는 땅 위에 피어나는 유한한 존재다. 이 두 존재가 조용히 교감하는 장면은 인간이 하늘을 우러르며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하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별빛은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영원을 의미하지만, 그 빛을 따라 피어나는 능소화는 유한한 삶이 영원과 이어질 수 있음을 은유한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삶이 결코 단절된 고독이 아니라, 하늘과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철학적 통찰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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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생명의 움직임--- 침묵 속에서 태어나는 힘>
능소화는 소란스럽게 피지 않는다. “조용히 꽃잎을 여는” 순간은 언어와 소리를 넘어선 침묵의 힘을 드러낸다. 참된 생명은 소란보다 고요 속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번잡한 일상과 세속적 욕망 속에서가 아니라, 내면의 침묵 속에서야 비로소 자신을 피워낼 수 있다. 고요함은 소극적 정적이 아니라, 생명을 안으로 밀어 올리는 적극적 힘의 표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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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을 넘어서는 생명의 의지-경계를 돌파하는 넝쿨>
넝쿨손이 담벼락을 넘어가는 모습은 단순한 식물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넘어서는 생명의 힘이다. 사회적 억압, 역사적 상처, 개인적 고난이 아무리 높아도 넝쿨은 끊임없이 뻗어나간다. 이는 인간이 갖는 근원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삶은 주어진 조건을 넘어서려는 끊임없는 움직임이며, 능소화의 넝쿨은 그 상징적 은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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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혼과 밤하늘의 부름--존재의 고독과 호소>
“밤하늘에 묻힌 이름을 목놓아 부르는 목소리”는 존재의 외로운 호소다. 이는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상실과 그리움, 이름 없는 기도의 자리와도 같다. 능소화의 ‘지친 혼’은 단순한 자연의 피로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외로움과 맞닿는다. 별빛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국 인간이 자신의 고독을 넘어 더 큰 존재와 이어지려는 절실한 시도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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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의 절개 뿌리의 은유>
능소화는 화려한 꽃잎보다도 보이지 않는 뿌리로 존재를 지탱한다. “말없이 뜰을 지키며” 뿌리내리는 모습은 무언의 결단을 드러낸다. 침묵 속의 뿌리는 소리 없는 저항이며, 흔들림 없는 절개다. 이는 인간이 고난 속에서도 중심을 지키며 흔들리지 않으려는 의지를 상징한다. 참된 삶은 화려한 외침보다도 보이지 않는 뿌리의 깊이에 의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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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담장 외부와의 끊임없는 충돌>
삶의 현실은 언제나 거친 바람과 높은 담장으로 가득하다. “세월의 바람”은 인간 존재를 끊임없이 흔들고 마모시키는 역사와 환경의 힘이다. 그러나 능소화는 이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뿌리를 더 깊이 내린다. 바람은 존재를 시험하고, 담장은 존재를 제한하지만, 그 제약을 넘어설 때 비로소 생명은 자신만의 고유한 형상으로 꽃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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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이슬의 정화 ― 고난 속의 맑음>
능소화는 “꽃잎은 이슬로 눈을 씻는다.” 이 구절은 고난과 상처 속에서도 다시 맑아지는 정화의 순간을 보여준다. 이슬은 아침마다 새롭게 맺히고 사라지지만, 그 덧없음 속에서 오히려 진실한 빛을 발한다. 인간 역시 슬픔과 눈물을 통해 정화된다. 고통의 시간이 지나간 후, 남는 것은 더 맑고 깊어진 영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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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호수에 몸을 던지는 결단 ---초월의 도약>
능소화가 “별빛 호수에 몸을 던진다”는 장면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다. 그것은 초월적 도약의 순간이다. 존재가 자신을 내던져 더 큰 세계와 합일하려는 행위다. 이는 죽음을 향한 귀의일 수도 있고, 혹은 삶의 한계를 넘어선 초월의 결단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몸을 던진다’는 적극적 의지다. 능소화는 스스로를 버림으로써 더 큰 영원과 하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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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순환과 영원의 리듬>
능소화는 “꽃이 피는 계절마다 줄기를 뻗어간다.” 이는 단순한 생장 주기가 아니라, 자연의 영원한 리듬이다. 인간의 삶 역시 끝없는 순환 속에 있다. 탄생과 성장, 소멸과 부활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계절의 순환 속에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삶이 다시 이어질 것임을 배운다. 능소화는 유한한 꽃이지만, 그 순환은 무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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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잎과 붉은 마음삶의 이중성>
푸른 잎은 차분한 생명력, 붉은 마음은 타오르는 열정을 의미한다. 삶은 푸른 지속과 붉은 불꽃이 동시에 어우러질 때, 가장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 이는 동양적 중용의 사상과도 통한다. 삶은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 되며, 푸른 절제와 붉은 열정의 균형 속에서 비로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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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의 존재론적 의미 --삶의 길을 비추다>
능소화는 단순한 장식적 꽃이 아니라, 존재론적 교훈을 품고 있다.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집요함, 고통 속에서 피어난 절개, 별빛 호수로 향하는 초월적 도약. 이 모든 궤적은 인간이 걸어가야 할 삶의 여정을 압축한다. 꽃은 인간의 삶을 은유하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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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언어와 철학적 사유 말보다 깊은 의미>
이 시는 수다스럽지 않다. 능소화의 삶은 침묵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자리를, 침묵과 이미지가 대신한다. 철학 또한 궁극적으로 언어를 넘어서는 침묵에 도달한다. 말하지 않음 속에서 오히려 더 큰 의미가 태어난다. 능소화는 그 침묵의 언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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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별빛 아래 인간학의 발견
마지막으로 이 시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로 귀결된다. 인간은 능소화처럼 담장을 넘어야 하고, 세월의 바람 속에서 흔들려야 하며, 별빛을 향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또한 이슬처럼 정화되고, 계절처럼 순환하며, 별빛 호수로 몸을 던지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능소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야 할 길을 함축해 보여주는 존재론적 상징을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