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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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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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 이인애
별도 달도 사라진 밤
피에 굶주린 이리떼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탐욕을 낚는다
보이스 피싱. 로맨스 스캠
법을 등진 온라인 도박
온갖 부조리의 온상 복마전
황당무계 한 뜬구름 잡기 놀이
양귀비 꽃으로 홀려
정신을 흐려 놓고
'대박'의 꿈을 좇는 이에게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하루아침, 만리장성을 짓고
바벨탑을 쌓으려 함은
도깨비 장단에 춤을 추는
생명의 경계선을 타 넘는
패망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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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평론, 도깨비의 웃음 아래 숨은 탐욕의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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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인간의 욕망을 도깨비의 놀이로 비유한 풍자극이자, 오늘의 사회를 향한 냉철한 우화다. 별과 달이 사라진 밤, 윤리의 불빛조차 꺼진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대박’이라는 신화를 쫓으며 스스로를 유혹하고 속인다. 이인애 시인은 해학과 비판, 현실과 신화를 교차시키며, 우리 시대가 어떤 어둠 속에서 춤추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도깨비는 전통 속의 존재가 아니라, 오늘의 인간 속에 깃든 탐욕의 분신으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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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달이 사라졌다는 구절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다. 그것은 양심이 사라지고, 인간의 내면이 욕망에 잠식된 세계를 뜻한다. 별빛 대신 광고의 불빛이, 달빛 대신 카지노의 네온이 세상을 밝힌다.
피에 굶주린 이리떼는 자본의 냄새를 맡은 사람들의 은유다.
돈을 향한 욕망은 피보다 짙고, 인간은 서로를 미끼 삼아 낚싯대를 던진다. 그 낚싯줄 끝에는 고기 대신 사람의 마음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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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온라인 도박. 시인은 단어 몇 개로 현대의 범죄 생태계를 압축한다. 인간의 고독을 낚고, 외로움을 상품화하며, 절망을 자본으로 전환하는 사회의 초상을 보여준다. 복마전이라는 말은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니다. 이제 그곳은 인터넷 서버 안에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도깨비들이 클릭 몇 번으로 사람의 영혼을 거래하고 있다. 이 시는 그 잔혹한 현실을 단 한 줄의 해학으로 조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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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 꽃으로 홀려 정신을 흐려 놓는다는 표현은 마약보다 더 강한 중독, 즉 욕망의 마취를 말한다. 사람들은 현실의 피로를 잊기 위해, 거짓된 환상의 꽃을 피운다.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은 어린 시절의 동화가 자본의 주술로 변한 순간이었다.
시인은 그 장단 속에서 웃음이 아니라 경고를 들려준다. 웃음은 달콤하지만, 그 리듬은 파멸의 북소리다. 도깨비방망이는 더 이상 행운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의 망치이며, 인간의 정신을 두드려 무감각하게 만드는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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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만리장성을 짓고 바벨탑을 세운다는 것은, 인간이 한순간에 부와 권력을 얻으려는 욕망의 허상을 뜻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패망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라 말한다.
인간이 신의 질서를 흉내 내는 순간, 무너짐은 예고된다. 바벨탑은 오를수록 언어가 흩어지고, 인간은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현대 사회도 같다. 모두가 돈과 성공을 말하지만, 그 언어는 서로를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소통하지만, 아무도 이해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 시의 근원적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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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풍자를 통해 인간의 윤리 회복을 촉구하기 때문이다. 도깨비놀음이라는 제목 자체가 시의 핵심이다. 놀음은 가벼운 행위처럼 보이지만, 그 속엔 심각한 사회적 알레고리가 숨어 있다. 인간은 즐기며 망한다. 축제처럼 웃고 떠들다가, 스스로의 발밑이 무너지는 줄 모른다.
도깨비 장단은 우리의 욕망을 부추기며, 그 리듬은 중독적이다. 사람들은 그 박자에 맞춰 소비하고, 투자하고, 거짓을 믿는다.
그리고 어느 날, 거울 앞에서 자신이 도깨비가 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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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해학은 웃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한국 해학의 본질은 웃음 속에 눈물이 있다는 데 있다. 시인은 웃음 뒤의 눈물을 포착한다. 그 눈물은 인간의 무지에 대한 연민이자, 자기 자신을 향한 회한이다.
“도깨비 장단에 춤을 추는” 것은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모두 한 번쯤 탐욕의 리듬에 몸을 맡긴다.
그 짧은 쾌락의 춤이 끝나면, 남는 것은 공허뿐이다. 시인은 그 허무의 순간을 가리켜 “생명의 경계선을 넘는 길”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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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또한 민속적 상징을 현대적으로 변주한다. 한국의 도깨비는 원래 웃음과 정의의 존재였다.
그러나 현대의 도깨비는 윤리의 탈을 쓴 욕망의 괴물로 변했다.
시인은 이 대전환을 통해 전통과 현대의 단절을 드러낸다. 과거의 도깨비가 인간에게 복을 내렸다면, 오늘의 도깨비는 인간의 정신을 약탈한다. 이것이 바로 문명화된 악의 초상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내면은 더 원시적으로 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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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사회비판을 넘어,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우리를 도깨비로 만드는가? 그 답은 사회 바깥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있다. 시인은 제도나 기술을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든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인간의 탐욕을 겨눈다.
우리가 욕망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언제든 복마전으로 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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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리듬 또한 예리하다. ‘뚝딱’이라는 반복음은 민속 장단의 리듬감을 지니면서, 마치 주문처럼 중독된다.
그 리듬은 현실의 무의식적 반복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실패를 겪고도 또다시 같은 욕망의 장단에 맞춰 움직인다.
리듬은 살아 있는 생명처럼 맥박 치지만, 그것이 향하는 곳은 파멸의 벼랑이다.
이 시는 언어로 리듬을 만들고, 리듬으로 풍자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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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작품은 웃음으로 울게 하는 시다. 해학의 바탕에는 연민이 있고, 연민의 끝에는 인간 회복의 희망이 있다. 이인애 시인의 도깨비는 악의 상징이 아니다. 인간의 어두운 자화상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장단에 춤을 추고 있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시의 진정한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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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놀음은 결국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 모두 그 거울 속에 서 있다. 누군가는 방망이를 휘두르고, 누군가는 그 소리에 맞춰 춤춘다.
하지만 시인은 그 무도회가 끝날 때, 잿빛 새벽을 보게 될 것이라 말한다.
웃음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침묵뿐이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인간이 잃은 것은 돈이 아니라, 마음까지 잃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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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풍자 시이면서 동시에 예언의 시다. 웃음 뒤의 절규, 희극 속의 비극, 그 복합적인 감정의 장단이 바로 이인애 시 세계의 진수이다.
도깨비의 놀음은 끝났지만, 시인은 말없이 일상의 침묵으로 남는다.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시의 등불을 들고, 인간이 문학의 별과 달을 찾을 날을 기다리는 시대에 이인애 시인의 관찰이 세태풍자 문학의 빗장을 새롭게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