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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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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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광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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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아름다운 세상에서
무엇이 힘들겠습니까.
부처님의 자비로
꿈을 키우세요.
바람에 흔들려도
꽃은 향기를 잃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시련 속에서
빛을 배웁니다.
소망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 안의 자비를 믿을 때,
어둠도 물러가고
눈물도 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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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심장에서 피어난 구원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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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이라는 이름의 자비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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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광스님의 시 〈소망〉은 단 한 편의 시 안에 불교의 핵심 교리인 무상(無常) 자비(慈悲) 연기(緣起)의 정신을 모두 품고 있다.
이 시는 단지 위로의 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삶 속에서 경험하는 모든 흔들림과 어둠을 깨달음의 연료로 삼는 수행의 시이다.
첫 구절 “아름다운 세상에서 / 무엇이 힘들겠습니까”는 세속적 낙관이 아니라, 깨달은 자의 시선에서 발현된 투명한 긍정이다.
세상은 여전히 고통의 바다이지만, 자비의 눈으로 보면 그 바다마저도 자비의 물결이다.
즉, 혜광스님의 시는 세상을 거부하지 않고 세상을 품는다.
그 품음이 바로 자비의 시작이며, 시는 그 자비의 온도를 언어로 옮긴 것이다.
〈소망〉은 한 수행자의 일기이자, 인류를 향한 조용한 찬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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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세상에서” 긍정의 첫 번째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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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첫 연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에서 출발한다.
“아름다운 세상에서 / 무엇이 힘들겠습니까.”
이 문장은 현실 도피의 낙관이 아니다. 고통을 초월한 자의 단정한 미소이다.
이 구절 속에는 “세상은 괴로움이다”라는 석가모니의 제1의 성제를 뒤집는 역설적 자비가 숨어 있는 것이다.
고통의 인식은 변하지 않지만, 그것을 보는 눈이 달라졌을 때 세상은 더 이상 괴로움이 아니다.
즉, 깨달음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일이다.
스님은 그 시선을 ‘자비’라고 부른다.
자비로 세상을 보면, 전쟁조차도 생명의 변주이며, 이별조차도 다시 만남의 한 과정이 된다.
〈소망〉의 첫 연은 그런 자비의 시각으로 “세상의 아픔을 끌어안는 긍정”을 선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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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에 흔들려도” 인간의 불안과 연꽃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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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연으로 들어서면 시는 한층 인간적인 장면으로 내려온다.
“바람에 흔들려도 / 꽃은 향기를 잃지 않습니다.”
이 구절은 불교적 인간학의 요체를 상징한다.
인간은 바람 속의 꽃이다.
바람은 세상의 변화, 운명, 질병, 시련, 그리고 죽음이다.
그러나 꽃은 흔들려도 자신의 본성을 잃지 않는 것은 바로 불성(佛性)이다
혜광스님이 말하는 꽃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수행하는 인간의 표상이다.
흔들림은 피할 수 없지만, 흔들림 속에서 향기를 잃지 않는 자가 진정한 수행자다.
그 향기가 바로 자비이며, 자비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본성이다.
시인은 인간이 무너질 때마다 “잃지 말아야 할 향기”를 상기시킨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따뜻함, 자기 자신을 향한 용서, 세상을 향한 이해이다.
즉, 흔들림 속에서 변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불교적 ‘평정(平靜)’의 상태이다.
이 시의 두 번째 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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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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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도 시련 속에서 / 빛을 배웁니다.”
이 문장은 혜광스님 시의 철학적 정점이다.
‘배운다’는 동사는 중요하다.
빛은 스스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통해 학습되는 것이다.
즉, 깨달음은 어둠을 거부함이 아니라, 어둠을 통과하며 얻게 되는 영적 지혜이다.
이 구절은 또한 불교의 “연기” 사상과 연결된다.
모든 고통은 원인과 조건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변화하면 고통 또한 변한다.
따라서 시련은 파멸의 표지가 아니다. 변화를 위한 기회의 불씨다.
이때 시인은 우리에게 말한다.
고통이 올 때 도망치지 말고, 그 고통 속에서 ‘빛을 배우라’.
그때 인간은 고통을 단순히 견디는 존재가 아니라, 빛을 창조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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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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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연의 첫 행은 시 전체의 중심 문장이다.
“소망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이 선언은 현대 문명의 외적 구원 신화를 부드럽게 부정한다.
우리는 흔히 행복과 구원을 외부에서 찾는다 제도, 신, 타인, 미래의 약속 등에서 찾는다.
그러나 스님은 단호히 말한다.
“소망은 내 안에 있다.”
그 ‘내 안’이란 자아 중심의 자기애가 아니라, 자비의 근원으로서의 자기 발견이다.
즉, 불성(佛性)은 밖에 있지 않다.
스스로의 마음속에 이미 그 빛이 존재한다.
이 구절은 또한 법등명(法燈明)의 정신을 밝혀준다.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는 가르침은 곧, 외부의 의존을 버리고 내면의 자비를 신뢰하라는 뜻이다.
스님은 바로 이 믿음을 “소망”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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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자비를 믿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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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은 ‘믿음’이라는 단어를 불교적으로 재해석한다.
불교의 믿음은 타력(他力)이 아니라 자력(自力)이며, 신앙이 아니라 ‘자각’이다.
즉, 신에게 의탁하는 믿음이 아니라, 본래의 나를 기억하는 믿음이다.
“내 안의 자비를 믿는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깊은 본성을 긍정하는 일이다.
그 믿음이 깨어날 때, 사람은 외부의 혼란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그 믿음은 곧 자비요, 자비는 곧 해탈의 씨앗이다.
혜광스님의 시어는 짧지만, 그 안에 수행의 전 과정이 들어 있다.
기도-자각-변용 -자비로 이어지는 완전한 순환이다.
그 믿음은 결국 모든 존재를 향한 사랑으로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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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도 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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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행은 시 전체의 종지부이자, 깨달음의 장면이다.
“어둠도 물러가고 / 눈물도 꽃이 됩니다.”
이 변용의 순간은 불교 예술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눈물은 인간의 고통, 슬픔, 무상함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눈물이 꽃이 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을 용서한다.
그 꽃은 연꽃이자, 자비의 상징이며, 동시에 깨달음의 형상이다.
즉, 고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의미로 피어난다.
그 피어남이 곧 ‘소망’의 실체이다.
이 구절은 단지 시적 장식이 아니다. 인간 존재의 구원론을 함축한다.
눈물이 없으면 꽃도 없다.
그러므로 슬픔은 삶의 결핍이 아니다. 생명의 또 다른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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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비는 인간 구원의 숨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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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은 단순한 시가 아니다.
한 편의 법문詩이자 구원詩이다.
그 안에는 인간의 근원적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품는 자비의 철학이 함께 흐른다.
스님은 인간에게 “행복하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자비로 세상을 보라”라고 말한다.
그때 고통은 사라지지 않지만, 더 이상 우리를 삼키지 않는다.
그것은 빛이 되고, 꽃이 되고, 다시 생명이 된다.
〈소망〉은 불교적 자비의 시학이자, 인간 정신의 성숙을 노래한 시다.
그 핵심은 단 한 가지이다.
소망은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꽃은, 바로 “자비”라는 이름의 꽃으로 삶을 완성시켜 꽃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