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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전홍구 시인 생선의 마지막 향기》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생선의 마지막 향기〉


전홍구 시인


골라 먹고 남은 생선 뼈처럼

한때는 향기로웠던 따끈했던 시간

말없이 식어 가는 것을 바라본다


검고 반짝이던 살점의 기억도

시간의 이빨에 씹혀 사라지면

누가 우리의 오늘을 기억해 줄까


허기진 세월은 끝내 우리를

그릇 한쪽의 뼈처럼 밀어두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온기를 찾는다


비워진 자리에서 비로소 아는 것

사라지는 것도 삶의 일부분이라는 진실

남은 향기로 따뜻하고 싶다는 소망.


*************


생선 뼈에서 시작해 인간의 시간을 비추는 시


전홍구 시인의 시는 평범한 사물 하나에서 인간의 시간을 길어 올리는 힘이 있다.

이 작품에서 선택된 사물은 ‘골라 먹고 남은 생선 뼈’.

이것은 단순한 식탁의 잔해가 아니라,

한때 생생하게 숨 쉬던 시간의 은유이자,

삶의 끝에 남는 ‘향기’와 ‘기억’의 본질을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식어버린 시간 앞에서의 침묵>


“골라 먹고 남은 생선 뼈처럼

한때는 향기로웠던 따끈했던 시간

말없이 식어 가는 것을 바라본다”


첫 연은 매우 절제된 감정으로 시작한다.

생선 뼈는 이미 생명의 온기를 잃어버린 사물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 뼛 속에 ‘따끈했던 시간’이라는 추억을 입혀

사라진 온도, 사라진 생명력, 그리고 식어가는 오늘을 바라본다.


여기에는 탄식도, 과장도 없다.

그저 “말없이 바라본다”는 태도만으로

삶이 식어가는 과정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노년의 지혜가 배어 있다.


<기억의 소멸과 인간의 덧없음>


“검고 반짝이던 살점의 기억도

시간의 이빨에 씹혀 사라지면

누가 우리의 오늘을 기억해 줄까”


여기서 시인은 생선의 ‘살점’을 우리 삶의 풍요로웠던 시절에 비유한다.

그러나 아무리 반짝이던 순간도

“시간의 이빨에 씹혀 사라진다.”


이 표현은 전홍구 시인의 특유의 투박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이다.

시간은 마치 씹는 포식자처럼

기억의 살점을 갉아먹고

마침내는 존재의 흔적까지 사라지게 한다.

“누가 우리의 오늘을 기억해 줄까”라는 물음은

늙음과 소멸 앞에서 누구나 겪는 보편적 두려움을 건드린다.


<버림 속에서도 남아 있는 온기>


“허기진 세월은 끝내 우리를

그릇 한쪽의 뼈처럼 밀어두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온기를 찾는다”


이 연은 매우 인간적이다.

세월은 우리를 그릇의 가장자리에 밀어둔다.

더는 중심이 아닌, “한쪽에 치워진 뼈.”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비관 대신 ‘온기’를 이야기한다.

삶에 남은 마지막 열기, 존재를 지탱해 주는 작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세월에게 버려진 것이 아니라

세월을 견디고 남은 깊이의 증거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마지막 연, 사라짐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통찰


“비워진 자리에서 비로소 아는 것

사라지는 것도 삶의 일부분이라는 진실

남은 향기로 따뜻하고 싶다는 소망.”


시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 마지막 연이다.


전홍구 시인은 생선의 뼈처럼 ‘사라진 자리’를 응시한다.

그러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사라짐 자체도 삶의 진실이라는 것.

그리고 남은 것은

빛나는 성공이나 육중한 흔적이 아니라,

단지 ‘향기’와 ‘따뜻함’이라는 매우 소박한 인간적 가치다.

여기서 시인은 삶의 황혼에 이른 이만이 말할 수 있는

따뜻한 철학을 드러내었다.



<사라지는 것들의 미학, 따뜻하게 남는 삶의 잔향>


〈생선의 마지막 향기〉는

소멸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얼마나 따뜻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라지는 것조차 삶의 일부라는 깨달음.

잔해 속에서 발견한 존재의 온기,

상처 난 시간에서도 피어오르는 희미한 향기를 말한다. 이 시는 화려하게 기억되고 싶은 인간의 욕망 대신

지극히 소박한 한 문장으로 귀결된다.


“남은 향기로 따뜻하고 싶다.”


전홍구 시인의 시 세계는 바로 이 한 문장에 응축되어 있다.

남기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남기고 싶은 향기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다.

*따뜻함의 미학을 아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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