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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박치원-가을이 오면 참사랑을 주자》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가을이 오면 참사랑을 주자〉


박치원 시인, 수필가, 여행작가


삶의 언덕에 올라오면

가슴속엔 애정결핍 빈자리가 생겨나

참사랑을 느끼게 된다.


나이 들어

갈수록

"로맨스"를 제대로 알면

진짜 사랑꾼이다.


마지막 잎새 떨어지면

사랑도 바람 타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사랑하고픈 잎새

있으면 천만 번

그리워 울지 말고

참사랑을 전해보고

살면 최고다...


내 사랑 꽉 잡고

향기 줄 때

행복이다.


향기는 머물러 있을 때 꽃향기 되고

사라지면 형제조차 사라진다.


곧 다가올 가을이 오면

참사랑 준비했다가

마음껏 전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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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문턱에서 건네는 참사랑의 미학〉


박성진 문화평론


박치원 시인, 수필가의 글 〈가을이 오면 참사랑을 주자〉는 짧은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안에는 오랜 세월의 사유와 낙엽처럼 가벼운 슬픔, 그리고 성숙기의 사랑이 조용히 깃들어 있다.

가을이라는 계절은 단순히 풍경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 가을은 인간의 마음이 비로소 ‘돌아보는 자리’이며, 사랑의 본질을 다시 묻는 계절이다.


‘삶의 언덕’이라는 표현은 곧 중년 이후의 삶을 의미한다. 치열한 젊은 날을 지나고 나면, 마음속에는 설명하기 힘든 빈자리가 생긴다. 그것을 수필가는 ‘애정결핍의 자리’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점은 이 결핍이 사랑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사랑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통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수필 속에서 ‘로맨스’는 젊은 사람들의 감정이 아니다. 나이 들수록 더 정확해지는 감정, 더 섬세하게 다루어야 하는 관계의 기술을 말한다. 젊음의 사랑이 불꽃이라면, 중년의 사랑은 은근한 숯불처럼 오래가고 깊어진다. 박치원의 글에는 이 은근함이 배어 있으며, 그것은 경험에서만 나오는 특유의 온기다.


‘마지막 잎새’라는 대목은 자연스럽게 문학적 상징들을 불러온다. 오헨리의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하고, 가을이 지닌 철학적 허무가 느껴지기도 한다. 잎새가 떨어지는 순간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소멸을 예고한다. 수필가는 이 장면을 사랑의 운명과 아름답게 병치시킨다. 붙잡지 않으면, 사랑은 바람처럼 스치고 사라진다는 사실. 계절의 변화가 곧 마음의 변화임을 고백하는 절제된 문장이다.


이어지는 글에서 가장 인상적인 표현은 ‘사랑하고픈 잎새가 있으면 그리워만 하지 말고 직접 전해보라’는 대목이다.

사랑을 감정의 영역에만 두지 않고, 행동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사랑을 전하지 못한 채 가슴속에만 두면 그것은 슬픔이 된다. 그러나 전해지는 사랑은 비록 서툴지라도 타인에게 향기처럼 남는다.


향기에 대한 묘사는 더욱 깊다. 향기는 머무를 때에만 향기이고, 사라져 버리면 이름조차 남지 않는다.

사랑도 그렇다. 향기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사랑 또한 보이지 않지만 존재를 증명한다. 향기의 지속 여부가 관계의 깊이를 결정하듯, 사랑도 서로의 마음에 얼마나 머무르느냐로 가치가 결정된다.


수필의 마지막은 조용한 제안이다.

곧 다가올 가을에 참사랑을 준비하고 마음껏 전해보라는 말. 이것은 단순한 계절의 권유가 아니다. 삶의 후반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보내는 작은 응원이며, ‘사랑은 여전히 늦지 않았다’는 위로의 선언이기도 하다.


박치원 수필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화려한 수사가 없음에도 감정이 단단하고 정직하다는 점, 짧은 문장 속에 인생의 허무와 따뜻함이 동시에 담겨 있다는 점, 그리고 계절의 시간성과 인간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는 점이다. 그의 문장은 독자의 마음속에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그 여운이 바로 이 글의 ‘향기’이다.


결국 이 수필은 한 가지 사실을 말한다.

사랑은 마음속에 오래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실제로 건네야만 참사랑이 된다. 가을은 그 사랑을 전하기에 가장 적절한 계절이며, 인간의 마음이 가장 투명해지는 시간이다.

가을이 오면 참사랑을 주자는 수필가의 요청은,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조용한 삶의 가르침이자, 늦가을 햇살처럼 따뜻한 인간학의 메시지로 남는다.

삶의 언덕--애정결핍의 빈자리--나이 들어

알게 되는 로맨스--마지막 잎새의 은유--

전하고 싶은 사랑--향기의 철학--가을과

참사랑의 관계를 펼쳐나가는 수필의 문체가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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